
[김병로 대법원장의 거울에 비추어보면....현재의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처신을 둘러싼 옳고 그름이 논란될 때마다 법조계에서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입니다. “김병로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은 자주 소환되지만, 꼭 적절한 물음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다른 만큼, 김병로를 오늘날의 대법원장 자리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당시에 김병로 대법원장이 보여준 모습을 되새겨보면, 대법원장과 사법부는 어떤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귀중한 비교 기준이자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1949년 김병로는 초대 대법원장이자, 동시에 반민특위 재판부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고 이를 무력화하려 했습니다. 친일경찰이 반민특위 특별경찰대를 습격하고, 이승만이 공개적으로 이를 두둔하자, 김병로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경찰의 불법행위를 지적하며 기자회견까지 열었습니다.
2. 1952년에는 부산 정치파동과 계엄령 선포, 발췌개헌이라는 이승만의 헌법 파괴 행위가 잇따랐습니다.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일으키려는 책동에 대해 김병로는 국회에 출석하여 헌법적 근거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반이승만 세력의 선봉장이던 서민호 의원이 체포되었을 때, 안윤출 판사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근거로 석방을 명했습니다. 그는 “석방 결의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중대한 결단이었습니다. 이승만이 불만을 드러내자, 김병로는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시오”라며 일축했고, 나아가 안 판사의 신변과 직책을 지켜내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3. 1954년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위한 소위 ‘4사5입 개헌’ 개헌 시도가 있었습니다. 203명 중 135명의 찬성으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었음에도, 이승만은 억지 해석을 동원해 국회 통과로 몰아갔습니다. 이에 김병로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4. 1956년에는 이승만이 사법부를 공격하면서, 마치 대법원장이 행정부와 협의해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왜곡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김병로는 단호하게 반박했습니다. “나는 단언하노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재판이든 사법 운영이든 양심과 소신을 저버린 판단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5. 김병로는 시종일관 국회를 존중했습니다. 그는 취임할 때 국회에 가서 취임인사를 했고, 퇴임시에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임인사를 했습니다. 그만큼 존경받았고, 사법부의 위상을 높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 이후 대법원장이 국회에서 취임, 퇴임인사를 한다는 관례도 초청도 없었습니다.) 기본법률의 초안을 들고 국회에서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해 국회 요청이 있으면, 국회에서 발언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성채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국회와 행정부와 적극적으로, 당당하게 소통했습니다.
이상은 몇가지 예시일 뿐입니다. 현직 대법원장이 정치 현안에 직접 발언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김병로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직접 침해하는 정도에 이를 땐, 헌법 수호자로서 법해석을 통해 확고한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미스터 헌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권력 남용이 헌법 질서 자체를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자, 그는 단호히 헌법의 방패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의 발언 방식도 주목할 만합니다. 원칙적으로는 판결을 통해 입장을 드러냈지만, 때로는 언론 인터뷰로 견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회가 대법원장의 의견을 청취하고자 초청할 때는 직접 국회에 출석하여 법리적 근거에 기반한 정론을 내놓았습니다. 형식은 법리적이었지만 실제로는 권력 남용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한 것이었습니다.
김병로 이후 역대 대법원장들은 거의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권력의 시녀’ 노릇한 대법원장도 적지 않았고요. 언론 인터뷰도, 국회 출석도 거의 없었고, 그것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초대 대법원장은 달랐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헌법 유린과 권력 남용 앞에서, 그는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헌법 수호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던 계엄 정국에서 보여준 사법부의 태도, 그리고 김병로의 모습은 지금 다시 크게 대비됩니다. 내란계엄 앞에는 모든 공직자가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것인데, 거기에 사법부가 예외의 보신성역이 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 한인섭 명예교수
(이 글의 내용은 필자가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가인 김병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성찰하는 독자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