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길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여성 안수, 성경은 정말 금하는가? - 말씀: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ree610 2025. 9. 9. 09:1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여성 안수, 성경은 정말 금하는가? -

말씀: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지금도 주요 보수 교단이 여성 안수(장로·목사)를 거부한다. 수많은 여성 신학도와 성도들의 시대적인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답은 단호하다. “성경이 금하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얽혀 있다. 구약 제사장 직이 남성에게 주어졌다는 사실, 바울 서신의 몇몇 본문이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남성 리더십을 창조 질서로 여기는 신학적 관점과 결합해 있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유교적 가부장 전통과 남성 중심의 교회 정치 구조가 견고하게 맞물려 있다. 물론 교회연합운동(에큐메니칼) 진영과의 차별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보수 신학의 태도도 작용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리더십을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것일까?

1. ‘잠잠하라’는 명령의 문맥: 질서를 향한 요청

여성 안수 반대론자들이 가장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는 본문이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2-14장은 한 가지 큰 주제, 곧 ‘교회의 유익’과 ‘공예배의 질서’를 다룬다. 특히 14장에서 세 차례의 동일한 명령이 등장한다: “잠잠하라”(sigaō)

1) 통역하는 이가 없을 때 방언하는 자(28절)
2) 다른 이가 계시를 받았을 때 먼저 예언하던 자(30절)
3) 그리고 여성들(34절)

이 흐름을 보면, “잠잠하라”는 명령은 특정 성별의 존재 자체를 억압하려는 영구적 규범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상황적’이고 ‘절차적’ 지침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33절)고 선언한다.

은사 경쟁으로 예배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웠던 고린도교회에 바울이 처방한 약은 ‘질서와 절제’였다. 무엇보다 고린도전서 11장 5절에서 이미 바울은 여성이 공예배 중에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14장의 명령을 공동체 안에서 여성 일반에 대한 ‘절대적 침묵 명령’으로 읽는 것은 명백한 오독(誤讀)이다.

2. 바울 신학의 핵심 원리: 사랑 안에서의 질서

바울은 왜 이토록 질서를 강조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랑’ 이다. 바울에게 자유와 은사는 언제나 타인의 유익을 위한 자기 절제 속에서 사용된다. 여성들에게 침묵을 요청하는 것도 그들의 존재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예배 상황 속에서 공동체의 의미 소통을 최적화하여 ‘공공선’을 이루려는 의도였다.

3. 성경 전체에 울려 퍼지는 여성 리더십의 목소리
성경 전체를 넓게 조망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성 지도자들을 세우셨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1) 구약의 증언: 미리암(출 15장)은 선지자이자 찬양 인도자였다. 드보라(삿 4-5장)는 사사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훌다(왕하 22장)는 왕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

2) 창조의 원형: 창세기에서 ‘돕는 배필(ezer kenegdo: 창 2:20)’은 종속적인 조력자가 아니다. 하나님 자신을 가리킬 때도 쓰인 말로 본질적으로 대등한 동역자를 뜻한다.

3) 신약의 증언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이자 ‘사도들의 사도’라 불렸다(요 20:17).
브리스길라는 남성 신학자 아볼로를 가르친 교사였다(행 18:26)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공식 직분자(diakonos)이자 지도자였다(롬 16:1–2)
유니아는 바울이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자’라 칭한 여성 사도였다(롬 16:7)

성령은 아들과 딸 모두에게 차별 없이 부어졌다(행 2:17-18),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갈 3:28)라는 선언은 ‘새 창조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압축한다.

* 마무리하며: 김지철 목사
부분적인 순종을 넘어 온전한 순종으로.

여성 안수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좇는 세속적 타협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증언하는 더 깊고 넓은 진리에 순종하는 길, 곧 ‘성경적 명령’이다. 교회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를 온전히 끌어안을 때, 우리는 더욱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 앞에 설 수 있다.

“사랑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을 위해 멈추라”(Speak and act for love, and pause for love).”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주님은 오늘도 남자와 여자, 어르신과 젊은이들,
남녀와 세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하나되어
기도하고, 예언하며, 가르치고, 섬기는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그 안에서 자유는 사랑으로 제한되고,
은사는 질서 속에서 빛나게 하소서.

사랑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며, 사랑을 위해 멈추는
지혜와 담대한 용기를 주옵소서. 아멘.

추기: 저의 해석학적 관점을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글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김지철, 「여성지도력을 위한 성서해석학적 고찰」, 『교회와신학』,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