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길

교수 아파트에서 출애굽하다~ 미국서 돌아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평생을 교수 숙소에서 살았다. 포항에서 연변에서 평양에서, 다시 포항으로..

ree610 2025. 9. 3. 18:00

<교수 아파트에서 출애굽하다~>

미국서 돌아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평생을 교수 숙소에서 살았다. 포항에서 연변에서 평양에서 그리고 다시 포항에서 ... 이번에 포항공대 교수아파트에서 살다가 효자시장 앞의 승리빌라로 이사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포항공대 교수아파트가 있는 지곡동은 돌아가신 박태준 회장님의 미래 구상 속에 한국 최초의 산학연 단지를 세우고 우수한 교수진들과 박사 연구원들을 해외에서 유치하기 위해 만든 특별한 단지였다. 그 당시로는 한국사회에서 처음 등장한, 카트를 끌고 쇼핑을 할 수 있는 쇼핑센터를 단지 안에 만들고 최신 시설의 제철 초중고등학교 (1990년대 초 우리 아들이 다니던 체철초등학교에는 학급마다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를 만들어 아름다운 조경을 갖춘 주거 단지를 구성했다.  

그 무렵 포항북부교회(지금의 포항기쁨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미국서 오신 목사님께서 포항공대 한동대 교수들을 묶어 교수-과학자 선교회라는 것을 만들어 특별대우를 해 주셨고, 일반 포항시민들이 보기에는 지곡에 사는 사람들은 별세계 사람들처럼 보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교회 안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적 층차와 계급이 있는 것만 같아서, 그것이 싫어서 나와 아내는 포항 시내에 사는 젊은 집사들과 유난히 친하게 지냈고, 고등부와 성가대에서 더 열심히 섬겼다.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참 사랑을 많이 받았다.

우리 가정이 그 특별한 곳을 버리고 중국으로 떠난 일은 그 당시 교수아파트 단지를 떠들썩하게 만든 큰 사건이었다. 우리 이삿짐 컨테이너가 중공(그때는 다들 그렇게 불렀다)을 향해 출발하던 그날, 동네 사모님들이 모두 찾아와 아내를 얼싸안고 눈물로 위로했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서 인생의 큰 결단 가운데 장도를 떠났다. 마치 출애굽을 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그 당시 가기 싫어하던 아내를 설득(하나님이 설득하셨지만..)하여 떠나면서 우리 부부에게 주셨던 말씀이 신명기 8장이다.

(신명기 8:2 - 4)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이 광야길을 걷게 하신 40년의 목적은 뚜렷했다.
1)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
2)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요, 여호와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줄을 알게 하심

그 여정 가운데 여전히 우리는 놓여있다. 중국과 북한을 향해 출애굽한지 31년이 되었으니, 어쩌면 아직 9년은 광야길이 더 남은 셈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포항으로 다시 부르셔서 원래 살던 교수아파트 5동의 같은 집에 살게 하셨다. 30년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가자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넓은 거실과 큰 아파트에서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그렇게 살다가, 마침내 그곳을 떠나게 하셨다. 비록 40년 오래된 아파트라 낡았지만, 교수아파트는 큰 수목으로 둘러쌓여 생태적 환경이 좋았고, 항상 친절하게 인사하는 경비 아저씨들과 환경미화원 선생님들이 맞아주는 무엇인가 여전히 대접받는 듯한 환경에서 그렇게 3년을 지냈다. KTX역에서 내려서 택시를 타도 교수아파트로 가자고 하면 오래된 기사 아저씨들은 태도가 달라진다. 지곡 단지의 교수 아파트는 그만큼 특별한 곳이었다.

더 낡고 오래된 효자 시장 앞의 승리빌라 4층에 17평 월세를 얻어 이사하는 날, 더위에 지치고 힘에 부친 아내가 저녁때 나에게 화를 냈다. 작은 집으로 이사가는 것이 뭐 자랑거리라고 그런것까지 페이스북에 써서 자신을 당황스럽게 만드냐고? 나라고 큰 집에서 사는 것이 왜 싫겠냐고? 우리가 중국으로 가지 않았으면 지금쯤 아마도 자기 친구 선배들처럼 서울 강남에 큰 아파트 몇채씩 가지고 있는 권사가 되었을 터인데, 이 나이에 월세로 이사가야 하는게 그렇게 자랑이냐고?

아내도 가끔씩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다... 그러나 잠시 기다리다 보면, 금세 수그러져 본질로 돌아온다. 화를 내던 아내가 불쑥 고백했다. 사실은 오늘 이사하면서 왜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걸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처음 교수아파트에 살던 시절, 드러내지 않았지만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우월감, 승리빌라에 사는 아이들에 비해 교수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지녔던 그 우월감이 자기에게도 있었다고. 하나님이 마지막까지 내면에 남아있는 모든 것을 다 드러내시고 다스리시기 위해 이곳으로 보내신 것이라고. "너를 낮추시고..." 이 말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우리에겐 아직 출애굽 해야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우리가 아무리 숨기고 있어도 하나님은 다 들여다 보신다. 새벽기도 시간에 흥해 교회 목사님께서 때마침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서초동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던 시절, IMF가 터지자 사업이 어려워진 어느 권사님이 교회에서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열심히 교회를 섬기던 분이라 이상하여 청년부 아들을 통해 수소문하여 그 권사님을 찾았다. 그랬더니 분당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서초동에서 분당으로 이사간 것이 너무 챙피해서 교회를 못나왔다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님의 오래전 설교가 생각났다. 우리가 자칫 본질을 못찾으면, 평생 아파트 평수 늘이고 화장실 몇개 있는 아파트에 사는지 그것 자랑하다가 인생 종친다는 것. 그런 인생에서 탈출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아내는 정리의 달인이다. 그 초라하고 지저분했던 그당시 연변의 아파트에서도 싣고 간 짐들을 가지고 연변과기대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모두 초청하여, 안식할 수 있는 미션 홈을 만들었었다. 승리 빌라 좁은 공간도 아내의 마이더스의 손을 거치니 금세 아름답고 세련된 공간으로 변했다. 집 앞을 나서면 큰 마트가 바로 있고, 효자 시장 안에 온갖 채소 과일이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먹거리 안경점 미용실 구두점 모두 한 걸음에 닿을 곳에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곳, 며칠 지나니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오직 아침에 화장실이 문제라 나는 새벽기도 다녀오다가 헬쓰를 하고 그곳에서 샤워를 하고 들어온다. 그러면 사랑스런 아내가 벌써 아침 식탁을 차려놓고 있다. 이게 웬 복인가?

31년 만에 교수아파트에서 출애굽 하게 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정진호 교수

(추신) 처음 경험하는 편안한 침대, 그리고 세탁기 건조기를 보내주신 귀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