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
지식과 사랑의 온전한 만남 -
* 말씀: 고린도전서 8장 1절
나는 종종 나 자신이 차가운 지식주의자는 아닌지 돌아보곤 한다. 목사와 교수라는 정체성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내가 지금껏 쌓아온 신학 지식은 과연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가? 남보다 조금 더 안다는 생각에 교만이 고개를 들다가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 앞에서는 열등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책을 읽고 공부할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는 이 ‘지식 업적주의’의 그림자는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1. 부풀리는 지식?, 세우는 사랑?
사랑 없는 지식의 위험을 바울만큼 뼈저리게 고백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자신의 탁월한 지식이 방향을 잃었을 때, 얼마나 교회를 핍박하는 냉혈한으로 자신을 만들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서야 그 지식의 궤도가 비로소 온전히 수정될 수 있었다.
이러한 자기 성찰이 있었기에, 바울은 지식(gnosis)과 사랑(agape)을 날카롭게 대조하며 공동체의 핵심 원리를 일깨운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이 선언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심오한 통찰이다.
‘교만하게 하다’는 본래 ‘부풀리다’라는 뜻이다. 속은 텅 빈 채 겉만 부풀어 오른 공허한 ‘자아 팽창’을 보여준다. 반면 ‘덕을 세운다’는 ‘집을 짓다’라는 의미다. 사랑은 흩어진 벽돌 같은 개별 지식을 강력한 시멘트로 묶어 공동체라는 집을 견고히 세우는 창조적 힘이다.
2. 지식과 사랑의 두 날개
신앙의 여정에서 지식과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그 본질을 잃고 위험에 빠진다.
1) 사랑 없는 지식: 사람을 살리는 빛이 아니라 상처 주는 칼이 된다. 바리새인의 모습처럼 차가운 교리주의나 무정한 율법주의로 흐르며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2) 지식 없는 사랑: 복음적 분별력(지식)이 결여된 사랑은 맹목적인 ‘값싼 은혜’나 모든 것을 쉽게 용납하는 방임주의로 변질된다. 이는 인간의 죄성과 왜곡된 가치관마져 끌어안는 심각한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3.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
해답은 사랑과 지식을 분리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지식의 동기, 방식, 그리고 목적을 재정립하는 데 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사랑이 우리의 앎을 이끄는 동기이자 표현하는 방식이 되며,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 우리의 지식은 비로소 사람을 살리는 참된 빛을 발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는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Ama, et fac quod vis: Love, and do what you will)
모든 언행의 기준이 ‘사랑’이 될 때, 우리의 모든 길은 결국 가장 선한 목적지로 이어진다는 위대한 확신이 담긴 말이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한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곧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연결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지식은 사랑에 이끌릴 때 공동체를 세우는 덕이 되고,
사랑은 지식에 뿌리내릴 때 역동적 생명력을 발휘한다.
(When guided by love, knowledge becomes a virtue that builds community; when grounded in knowledge, love unfolds with dynamic vitality)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지식이 사랑을 떠날 때 교만으로 부풀고
사랑이 지식을 떠날 때 값싼 위로로 전락합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지식을 사용하게 하소서.
십자가에서 진리와 사랑을 하나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 안에서 우리 지식이 회심하고,
참된 사랑이 빛을 발하여,
공동체가 새 힘을 얻어 바로 서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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