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래도 되는건지 묻고 싶습니다.
* 제목 : '속도'라는 우상과 '기름 부으심'이 없는 설교에 대하여
저는 매주 설교를 준비하며 '기도의 골방'과 '성경'이라는 두 기둥을 붙들고 씨름합니다.
설교는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목회자의 인격과 기도의 눈물이 말씀과 함께 녹아들어서 성도들의 영혼을 적시는 성령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시간 절약'과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AI가 작성한 설교문이 강단을 잠식하는 현상을 보며, 저는 목회자로서 깊은 슬픔과 함께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낍니다.
이를 행하고 계신 목회자님께 묻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실한 설교의 본질에 부합하는 행동입니까?
첫째, 설교는 AI 데이터의 산물이 아니라, '생명의 통로'입니다.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요 1:14).
진정한 설교는 하나님과 씨름한 설교자의 삶이 말씀과 만나 회중에게 전달되는 '인격적 사건'입니다.
AI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조합해 그럴듯한 신학적 문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에는 성령님의 탄식도, 목사의 애끓는 기도도, 죄인 된 인간이 겪는 영적 고뇌도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설교는 그저 논리적인 '강의'에 불과하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통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둘째, '기름 부으심'을 대신할 그 어떠한 기술이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했다고 고백했습니다(고전 2:4).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목회자가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찢고 엎드리는 기도의 시간에서 나옵니다.
반면, AI 설교는 '효율'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장 편하고 빠르게 준비하겠다는 발상은 제사장이 자신의 몸을 성결케 하는 과정을 생략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남의 불로 제사를 드리는 나답과 아비후의 죄(레 10:1)'와 결코 다르지 않은 영적인 나태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의 영적 빈곤을 초래하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설교자가 기도를 건너뛰고 기계의 도움을 빌릴 때, 그 피해는 성도들에게 돌아갑니다. 성도들은 AI가 조합한 정교한 문장을 들으러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영혼을 아는 목회자의 진실한 목소리, 하나님을 경험한 자의 뜨거운 고백을 갈망합니다.
기계가 써 내려간 설교에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성령의 깊은 감동이 담길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효율성을 따라갈수록, 영적으로는 점점 더 가난해질 뿐입니다.
저는 목사가 기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효율만을 좇는 행위가 강단을 무너뜨리는 성경적이지 않은 타협이라고 단언합니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복음의 능력은 똑같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을 통로로 삼으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설교 작성법이 아니라, 더 많이 무릎 꿇는 목회자,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걸고 씨름하는 거룩한 고집입니다. 설교는 목회자의 영혼을 깎아 만들어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 지금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우리의 강단이 다시금 기도의 눈물로 젖어 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양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지금 바로 기계에 의존하는 사역을 멈춰주시고, 설교 어플을 홍보하는 자들의 유혹에 넘어기지 않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평강하셔요!! - 목사 윤요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