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좋은 설교

어느 교회당 헌당식에 초청받아 설교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 "이 집에서 다시 길을 떠나다." - 대하 6:2, 18; 요한 1:14 -

ree610 2026. 6. 30. 17:44

어느 교회당 헌당식에 초청받아
설교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

"이 집에서 다시 길을 떠나다."
- 대하 6:2, 18; 요한 1:14 -

1. 솔로몬은 성전 헌당식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백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머무실 집을 지었습니다”(대하 6:2)라는 고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모실 수 없습니다”(대하 6:18)라는 고백입니다.

이 두 고백 사이에 긴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지만, 어떤 건물 안에도 갇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이름을 두시지만, 성전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역설적 긴장입니다.

2. 게다가 솔로몬의 성전 헌당식에서 이상한 장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성전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언약궤는 광야의 천막 안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안에 안치되었습니다. 이동의 시대가 끝나고 정착의 시대가 시작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굳이 이렇게 말합니다.
   · “그 채가 길어서 궤에서 나온 채 끝이 내소(지성소) 앞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궤가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대하 5:9)
   ·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지성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왕상 8:8)

왜 이 세세한 내용을 기록했을까요? 언약궤를 메고 다니던 채가 아직도 궤에 꽂혀 있다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25장 14~15절에서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그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라.”

** 이동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단순한 언약궤 운반 규정이 아닙니다. 매우 신학적 상징입니다. 언약궤는 본래 광야의 하나님, 곧 자기 백성과 함께 이동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성전 안에 안치된 뒤에도 그 채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는 것은, 성전이 세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을 고정된 장소 안에 가둘 수 없다는 신학적 암시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념하는 거룩한 장소이지만,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건물에 붙잡히거나 감금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을 한 곳에 묶여 둘 수 없습니다. 그분은 자유롭게 여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솔로몬 자신도 헌당 기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 8:27)

   ·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대하 6:18)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 길을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시다가 잠시 멈출 때마다 그곳에 성막(천막, 회막)을 치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앞서가시고, 머무시면 백성도 머물고, 움직이시면 백성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언약궤의 채는 일종의 “거룩한 기념물(기억)”입니다. “하나님은 여기 계시지만, 여기에 갇히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집에 임재하시지만, 이 집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이 집에 가둬두지 말라” 요즘 말로 하나님을 길들이지 말라, 하나님을 가축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주님이 머무실 집을 지었습니다”(대하 6:2)라는 솔로몬의 고백처럼,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눈물과 헌신과 기도와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드리는 것은 건물만이 아닙니다. 이 건물 안에서 살아갈 공동체를 하나님께 드리는(봉헌)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집을 통해 하나님을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이 집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마음으로 당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당식은 “이제 다 끝났다”라는 행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다시 길을 떠난다”라는 출발식입니다.
   · 이 집은 정착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순례의 표지입니다.
   · 이 집은 머무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보냄을 받는 장소입니다.
   · 이 집은 예배하는 집이지만, 동시에 세상 속으로 파송되는 집입니다.

언약궤의 채가 보였다는 것은, 성전 한복판에 남겨진 광야의 흔적입니다. 백향목과 돌로 지어진 웅장한 성전 안에도 여전히 광야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잊지 말아야 할 오래된 기억입니다.

“우리는 본래 광야의 백성이었다. 하나님이 앞서가시면 가고, 하나님이 머무시면 머무는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이 성전도, 이 교회당도,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따라가는 순례자의 장막이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 이 집이 하나님을 가두는 성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우리 이름을 남기는 기념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는
     거룩한 장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 언약궤의 채를 빼지 마십시오.
   · 우리 마음의 채도 빼지 마십시오.
   · 언제든 주님이 “가자” 하시면 갈 준비를 하십시오.
   · 언제든 주님이 “머물라” 하시면 머물 준비를 하십시오.
   · 교회는 건물에 정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 오늘 이 집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집보다 먼저,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 장막 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이 교회가 다시 믿음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온전한 성막, 온전한 성전

다시 반복합니다. 솔로몬은 성전 헌당식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백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머무실 집을 지었습니다”(대하 6:2)라는 고백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모실 수 없습니다”(대하 6:18)라는 고백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두 고백 사이에는 긴장이 있습니다. 주님이 머물 집을 지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 집에 감히 주님을 모실 수는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긴장을 해소할 최종적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성막에서 하나님은 광야의 백성 가운데 장막 치셨습니다.
   · 성전에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두시고 백성을 만나셨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자신의 육신 안에 장막 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居, 천막을 치다)하시니”(요 1:14)

예수님이 성막이고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돌과 백향목으로 지어진 집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구름과 영광 가운데만이 아니라, 눈물과 피와 살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자신이 성막이고 그 안에 거하게 된 우리 역시 성막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living stone)인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벧전 2:4~6)

[참고, 벧전 2:5의 헬라어 핵심 동사 οἰκοδομεῖσθε는 형태상, 현재 중간/수동태 직설법 2인칭 복수형과 현재 중간/수동태 명령법 2인칭 복수형 둘 다 문법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먼저 명령하기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의 새 신분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중간/수동태 직설법 2인칭 복수형, 즉 직설법, 곧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있다”가 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교회당 헌당식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최종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은 교회가 이제 성령의 성전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을 가두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회막, Meeting Place)고 정하신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마지막 말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말은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 하나님은 마침내 돌집이 아니라 사람의 몸 안에, 성전의 지성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자기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헌당하는 이 교회당은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 건물이 성전의 완성은 아닙니다. 이 집은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만 참된 교회당이요 성전/성막입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누어지고, 하늘 아버지께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가 세워질 때, 이 집은 비로소 하나님께 드려진 집이 됩니다.

“길 되신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이 집이 마지막 목적지는 아닙니다. 이 집은 그리스도를 향한 표지판입니다. 이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고, 그분의 복음이 선포되고, 그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 이 집이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 집에서 그리스도가
     아름답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오래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 집에서 선포되는
     복음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기를 바랍니다.
   · 이 집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오늘
     이 집 가운데, 그리고 이 집에 모이는 성도들의 삶 가운데 은혜로
     머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 집에서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던 예수를 따라 다시 길 떠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마지막까지 천성을 향해 순례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하시는 하나님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님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신앙공동체, 순례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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