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음 너머의 이해와 연대: 소외된 이들이 말하는 사회를 위하여>
- 유정현 목사 (치유상담학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성찰하는 데 있어서 힘 있는 이들의 외침보다 소외된 이들의 낮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절박한 소명입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의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는 지향점 또한 낮은 곳을 향한 진정한 경청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여전히 공고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는 구조적 배제 속에서 의미 있는 담론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이들을 대변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정치적 수사나 공허한 공약으로 흩어지기 일쑤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고도성장의 이면에서 경제적 양극화,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소외, 젠더와 세대 단절, 그리고 잇따른 참사로 인해 말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아픈 집단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또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 앞에서 사회의 도덕적·지적·정치적 등불이 되어야 할 성직자와 지식인 그리고 정치인이 마땅히 견지해야 할 태도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1. 대변자를 넘어 환대와 동행의 성직자
상처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성직자의 본질적 과업은 진리를 관계의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입니다. 진정한 성직자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을 대언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향해 인간의 고통을 대변하는 자여야 합니다. 단, 시혜적 태도로 타인을 구제하려는 영웅적 대변자의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교화나 구제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신하려는 행위는 도리어 그들의 주체성을 거세하고, 종속적 존재로 고착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대언이나 대변이 아니라 환대와 동행입니다. 타인의 목소리를 가로채거나 대신하려 하지 말고, 그들이 고통받는 현장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분석·지도·지시라는 권위적 오류에서 벗어나 숨죽인 이의 고통에 깊이 집중하고 세심하게 공감할 때 비로소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치유의 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종교 공동체는 소외된 이들이 자신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 성직자는 다음의 두 가지를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첫째, 지배적 프레임의 경계입니다. 그들의 침묵과 비명을 우리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듣는 행위 자체가 지배적 권력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은밀한 의도를 지닌 행위의 지양입니다. 선한 의도라는 미명 아래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공유하거나 퍼 나르는 행위는 결코 치유가 아니며, 이는 신의 뜻에 대적하는 기만적 태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국 성직자의 소명은 높아진 교리의 문턱을 낮추고, 사회적 배제 속에 있는 이들을 조건 없이 포용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종교적 언어로 매끄럽게 포장하는 대신 침묵 뒤에 숨겨진 구조적 모순을 함께 아파하며, 그 곁에 묵묵히 머물러야 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신음을 온전히 듣는 것이야말로 성직자가 자신이 전하는 신의 음성을 듣는 방식입니다. 올바른 경청이야말로 아픈 이에게 억압과 상처를 덧입히지 않고 진실을 지켜내는 가장 숭고한 노력입니다.
2. 지식의 권력성의 성찰과 자기 비판적 자세
감정의 표현이 억압될 때 치유가 지연됩니다. 그러므로 타자를 향한 연구와 담론 또한 그 안에 담긴 권력관계를 직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얻습니다.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학문적 행위 자체가 지닌 권력성을 우리 지식인 사회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지식 사회가 혹여 그들의 고통을 학술적 담론의 소재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련된 이론과 개념으로 그들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이 도리어 그들이 스스로 내는 생생한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그들의 신음을 덮어버리는 보호의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지식인은 대중을 가르치고 계몽해야 한다는 선민의식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의 삶이 머무는 낮고 깊은 자리로 다가가야 합니다. 정형화된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그들이 사용하는 삶의 언어를 겸손하게 배우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도권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요구를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들의 말을 못함 속에 깃든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려는 정교한 경청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은 진정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 채 익숙한 엘리트 의식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제도권의 질서 안에서 승인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를 지배 담론의 언어로만 재단하려 한다면, 그들이 안고 있는 고통의 실체는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지식인이 스스로의 언어적 특권과 제도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산하는 담론은 결국 우리만의 리그를 맴도는 공허한 외침에 그칠 것입니다.
3. 말할 수 있음과 들림의 틈 사이에서 정치인의 책무
2026년 6월 25일,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국회와 국민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국민의 삶과 현장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이고’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 내고, 말보다 성과로 평가받도록 하겠습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목소리가 크고 조직화된 집단의 언어만 수용하는 관성을 지닙니다. 이 거대한 관성 아래 정치적 자원이 박탈된 미등록 이주민, 청소년, 불안정 노동자, 그리고 진정한 사과를 기다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일본에 의한 강제징용 피해자, 크고 작은 재난과 참사의 유가족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말을 못하는 이들의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정치권은 이들의 고통을 시간이라는 기억의 여과장치에 가두어 배제해 왔습니다. 선거철마다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정략적으로 소비하는 행위는 그들을 단순한 시혜의 대상으로 박제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두 번 지우는 폭력을 가하곤 합니다. 진정한 정치는 단순히 듣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말을 못하는 이들이 신음소리를 낼 때, 그 소리가 지배 담론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듣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정치인의 핵심 책무입니다. 현재의 정치는 소외된 이들이 극단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겨우 증명할 수 있는 폐쇄적인 구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정치인의 사명은 그들의 파편화된 외마디 비명을 주류의 문법으로 번역하여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해도 사회적 실재가 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발언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결국 정치인의 바람직한 자세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의 위계적 간극을 허물고, 말을 못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규정하고 대변할 수 있도록 그 통로를 구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민주주의의 중재자가 되는 길에 있습니다.
4. 소외된 이들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공동의 연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말을 못하는 상태에 놓인 것은 그들에게 언어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배 담론의 견고한 체계 안에서 그들의 절박한 아우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채 늘 소음이나 비명으로 치부되기 때문입니다. 지배 구조가 공고할수록 약자의 고통은 구조적으로 삭제됩니다. 특히 성직자와 지식인, 그리고 정치인은 그들을 대신해 말해주겠다는 오만한 구원자 의식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시혜적인 태도로 그들의 목소리를 가로채거나 자신의 학술적·정치적 잣대로 그들의 삶을 재단하는 행위는 오히려 그들의 신음을 덮어버리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연대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첫째 대변자를 넘어선 조력자로 나서는 것입니다. 소외된 이들을 분석의 대상이나 시혜의 객체로 박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그 주체적인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실재로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통로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책무입니다. 둘째 경청의 윤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을 못하는 이들의 침묵을 의미 없는 상태로 규정하지 말고 그 침묵 속에 깃든 구조적 모순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체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머무는 낮은 곳으로 다가가 그들의 언어를 겸손히 배우는 정교한 경청이 모든 실천의 선행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구조적 변화를 향해 끈기를 지니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대는 일회성 사건이나 공허한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소외된 이들의 아우성이 우리 사회의 담론 체계 안에서 온전히 들리고 응답받을 때까지 끈기 있게 그 곁을 지키며 사회적 시스템을 변화시켜 나가는 실천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결국 소외된 이들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스스로 세상과 대면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주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겸손한 경청과 구조적 연대의 장을 여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우리 시대가 염원하는 진정한 대동세상은 시작될 것입니다. 평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