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서부터 늘 내 곁에서 나를 지켰던 딸,
작년 말에 나는 은퇴했지만 자기마저 그만두면
교인들이 너무 허전할 거라고
가족은 남대문으로 다 교적을 옮기면서도
자기는 새 목사님 오셔서 안정될 때까지 있어야겠다고...
생각과 마음이 큰 따님. ㅎ
어제, 마침내 왕중교회에서 사임을 했습니다.
그리곤 페북에 글을 올렸네요.
공유하고 싶었는데 공유할 줄을 몰라 제가 이렇게 길게... 양의섭 목사
『작년 12월,
아빠의 은퇴를 기점으로 가족들은 더이상 나오지 않지만
예배를 이끌어가는 오르가니스트의 한사람으로
갑자기 그만둘 수 없어 6개월을 더 남아있었다가
오늘 드디어 사임하였다.
정신없이 바빴던 그 시기에 하지 못하고
미루고 미루던 정리를 이제 하는 기분이다.
아빠의 사역지마다 이사하느라
초등학교를 4군데 다녔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왕십리중앙교회 교인이었다.
음악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예배 반주를 하였고
중학생 시절 예배당에서 새벽 1,2시까지 연습하며
예고 진학의 꿈을 키웠다.
이후 대학 진학까지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교회에서 연습하며 울고 웃었던 그 시간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재능과 은혜가 채워진 때였음이 분명하다.
귀국 후 2012,13년,
아빠의 목회 19년 즈음
교회와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던 그들에 대한 미움은
아직도 남아있다.
우연히 마주치면 어른이기에 예의상 인사하는 나를
날 선 눈빛으로 노려보고 무시하던
어른이 아닌 그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뜨거워진다.
그 때의 스트레스로
아빠는 위출혈,엄마는 갑상선암, 동생은 결핵,
나는 원인 모를 두드러기로 온 몸을 긁으며 지냈고
신촌세브란스까지 가서 조직검사까지 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상하고 화가 난다.
당시 문제를 일으킨 원인이었지만
지금도 멀쩡히 목회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비방글을
여기저기 퍼뜨릴까 수십번 썼다 지우며 고민하던 적도 있었다.
목회자는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나님이 심판하실거라고 날 말리셨던 아빠를 보며
누가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정의를 가리다가 교회를 분열시키기 보단
온가족이 교회를 떠날 생각도 하며
너무 분하고 속상해 울면서 반주하던 그 시기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시지요‘ 하며 참았던 그 시기가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더욱 여호수아와 같이 단단해진 계기가 된것 같다.
그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도 하나님께 그저 뒷감당을 맡겼기에
그나마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30여년이 넘는 그 시간동안
실수가 많아도 ‘잘한다’ 격려해주시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기도로 중보해주신 분들
왕십리중앙교회 어른들 덕분에
이젠 후학을 양성하는 어른이 된 것 또한 분명하다.
유학시절 잠시 반주를 멈추었으나
기도의 빚을 갚겠다고 남대문교회 반주제의를 거절했던 나를
’양선생‘이라며 꼬박 존대해주신 믿음의 어르신들.
특히 미래의 나를 알아보시고 칭찬과 쓴소리 아끼지 않으시고
힘껏 악보와 자료들을 제공해주셨던 고 표재명 장로님.
지금의 나를 보시면 참 기특하다고 하실텐데…
천국에서 들어야겠다 🙂
결혼 이후
온 가족이 성장했던 이 곳,
은혜와 사랑이 가득했던 이 곳을
오늘부터 떠난다.
대학교 1학년부터 시작했던
교회음악가의 길은 이제 다른 곳에서 이어지겠지만
이곳에선 또다른 귀한 교회음악가들이 키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왕중교회,
참 감사합니다.
2026.06.28 주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