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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추앙’과 ‘혐오’를 넘어] 유시민은 한국 현대 정치에서 보기 드문 역활들을 경험한 인물이다

ree610 2026. 7. 18. 07:41

[유시민, ‘추앙’과 ‘혐오’를 넘어]

※ 글이 다소 깁니다.
바쁘신 분은 패스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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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한국 현대 정치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작가·언론인·공적 지식인’의 네 역할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평가는 어느 한 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는 ‘열렬한 추종’과 ‘강력한 반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극화 자체가 오늘날 한국 정치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의 한계
유시민은 뛰어난 논객이었지만, 뛰어난 정치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에 입문했을 때 그는 ‘논리’를 정치보다 더 신뢰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언제나 논리에서는 강했지만, 정치에서는 약했다. 정치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력을 묶어 현실을 움직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논리적으로 ‘굴복’시키려는 태도를 자주 보였다. 그 과정에서 정치의 본질인 ‘공존의 기술’보다 ‘논쟁의 승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를 논리적으로 제압하는 ‘투쟁력’은 높았지만, ‘포용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 결과 “옳지만 함께하기 어려운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정치인으로서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DJ 필패론’이다. 그는 김대중 총재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며 기존 야권의 전략을 비판했고, 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의 역사적 역할에도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7년 김대중은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그의 예측은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명분은 있었지만, 시대를 읽는 안목은 부족했다.

문제는 예측이 틀린 데 있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그는 DJ 정부의 햇볕정책, 인사, 국정 운영 등 여러 사안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정부와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비판 자체는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후일 자신이 바로 그 민주개혁 진영의 핵심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궤적은 정치적 일관성에 대한 짙은 의문을 남긴다. 그러나 비판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정세를 읽고 연합을 형성하는 정치적 감각’에서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는 ‘시류를 분석’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시대를 조직’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음을 드러냈다.

- 언론인·공적 지식인으로서의 한계
유시민은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공적 지식인이다. 그러나 공적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권력과의 거리’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지지자였지만 동시에 비판자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의 비판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때 ‘비판적 지지’라는 태도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정책 실패, 조국 사태, 부동산 정책, 인사 문제 등에 대해 이전만큼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가 권력을 감시하는 공적 지식인이라기보다 ‘진영을 방어하는 편향지식인’의 역할에 가까워졌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이 스스로 고백한 ‘어용 지식인’이라는 비판적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민주 정부에 대한 정당한 방어라고 해석하지만, 비판자에게는 권력을 향한 이중적 비판 행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 시기의 유시민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 보여주었던 비판적 거리감을 충분히 유지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 엘리트 운동권의 한계, 선민의식이라는 오래된 그림자
유시민은 서울대 출신이며 1980년대 학생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의 지적 능력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뛰어난 지성이 때로는 엘리트 의식으로 비쳐 왔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그의 화법은 상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논리적으로 ‘해부’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논쟁에서는 압도적일지 모르지만, 정치에서는 사람을 얻는 일보다 사람을 잃는 일이 더 많았다.

특히 민주당 내부의 비주류 정치인이나 기존 운동권 주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정치인들에 대해 거리감을 보인다는 인상을 준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재명에 대해서도 그의 평가와 태도는 시기에 따라 변화했지만, 초기에는 이재명을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이나 정치적 품격이라는 기준에서 낮게 평가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는 엘리트 운동권 출신이 가진 문화적 우월감으로 읽히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 대해 반론도 있다. 유시민은 특정인의 출신보다 정치적 행태와 역량을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그의 실제 발언 역시 시기와 맥락에 따라 달라졌다. 따라서 이를 단정적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비판자들은 그의 언행에서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중심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평가하는 경향을 읽어 왔으며, 이것이 비주류 정치세력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는 태도로 비쳤다고 평가한다.

- 유시민의 가장 큰 강점
그럼에도 그의 장점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만큼은 독보적이다. 철학·경제·역사·정치·문학·헌법 이 모든 분야를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는 공적 지식인은 흔치 않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읽은 것을 ‘사회적 언어’로 바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이 점은 한국 민주주의에 분명한 기여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 지식인은 영향력이 커질수록 스스로 자신의 논리를 의심해야 한다. 오랫동안 높은 신뢰를 얻으면, 자신의 판단이 곧 객관이라고 믿기 쉬워진다. 이것은 유시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유명한 지식인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볼테르도, 사르트르도, 촘스키도, 이 함정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 추앙의 심리와 혐오의 심리
유시민을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사실 유시민보다 그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태도이다. 일부는 그의 말이면 모두 진실이라 믿는다. 반대로 일부는 그가 하는 말이면 모두 거짓이라 여긴다. 둘 다 사고를 멈춘 상태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상이 아니라 ‘우상을 만드는 시민’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책’보다 ‘인물’을 소비한다. 정치는 축구 응원처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뉜다. 그 결과 사람은 ‘증거’보다 ‘진영’을 믿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정치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진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유시민은 이러한 현상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 지식인의 가장 큰 적은 ‘의문’이 아닌 ‘확신’
유시민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적 해설자 가운데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뛰어난 지성은 때로 자신의 논리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위험에 빠진다. 정치인은 틀릴 수 있다. 평론가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인은 무엇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

지식인의 가장 큰 덕목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는 능력’이다. ‘의문’은 사유를 낳지만, ‘확신’은 사유를 멈추게 한다.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은 미래를 단정하는 ‘예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냉정한 관찰을 통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시’하는 일이다.

유시민은 평생 ‘타인의 오류’를 예리하게 지적해 온 인물이었다. 하지만 공적 지식인의 마지막 시험은 타인의 오류를 비판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진영’과 ‘자신의 확신’까지도 비판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그 점에서 그의 삶은 민주주의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에도, 동시에 ‘비판적 지성’에서 ‘진영의 지성’으로 이동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성숙한 관찰자의 시선
한 사람을 평가할 때는 ‘빛’만 보아서도 안 되고, ‘그림자’만 보아서도 안 된다. 유시민은 분명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었고, 동시에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었지만, 때로는 자신의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좁혔다’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그를 영웅으로 신격화하는 것도, 악인으로 단죄하는 것도 모두 역사 앞에서는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한 인물은 공과가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온전한 모습으로 이해된다. 민주사회가 성숙하려면 인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적대의 대상’으로 고정하기보다, 주장과 근거를 ‘사안별로 평가’하는 시민적 태도가 필요하다. 유시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의 말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말했고, 그 근거가 얼마나 타당한가를 따져보는 일이다.

성숙한 시민은 우상을 만들지 않고, 적을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사람’보다 ‘원칙’을, ‘진영’보다 ‘사실’을, ‘열광’보다 ‘성찰’을 앞세운다. 민주주의는 뛰어난 정치인 한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이다.
~ 霞田 박황희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