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라는 이름의 부채질"
- 손주환 목사(걷는교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레이더는 엉뚱한 곳을 향해 가동 중이다. 국가의 미래를 가를 거시적 담론이나 민생 현안에는 미적지근하면서도, 온라인상의 자극적인 가십거리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봉합해야 할 정치권이 도리어 대중의 말초적 분노와 갈등에 편승해 말을 얹으며 논란을 키우는 기이한 풍경이 일상화되고 있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의 해결자가 아닌 ‘부채질꾼’으로 전락한 시대다.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군 두 가지 사건은 정치인들이 어떻게 일상의 이슈를 갈등으로 끌고 들어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하나는 배재고등학교의 소위 ‘조롱 응원’ 논란이었다. 물론 해당 학교 학생들의 조롱 응원은 단지 미성년자의 치기 어린 행동이나 유치한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타인에게 깊은 모욕을 준 무거운 잘못이다. 마땅히 엄격한 교육적 훈육과 성찰이 선행되어야 했을 사안이다. 그러나 여기에 정치인들이 숟가락을 얹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청소년들이 야구장에서 벌인 행동은 순식간에 진영 간의 역사관 전쟁이나 세대 갈등, 혹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혐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황당한 주장의 땔깜으로 소비되었다. 교육적 해법이 들어설 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청소년들의 잘못은 어느새 거대한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다른 하나는 아이돌그룹 리센느의 멤버 원이가 사용한 ‘무섭노’라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 역시 정치권의 저급한 기회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해당 발언이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 표현인지,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일베식 밈’인지를 두고 진위 공방이 벌어지던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고인을 모독하는 혐오 말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동체의 윤리를 해치는 명백한 문제이며 단호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대중문화 영역과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 표현의 맥락에 대해 따져 묻고 자정해 나가야 했을 바로 그 시점, 정치인들이 냉큼 말을 섞기 시작하자 사태의 본질은 순식간에 오염되었다. 정치인들은 사실관계가 명확히 가려지기도 전에 한쪽 편에 서서 저격과 비난을 일삼았다. 순식간에 아이돌 멤버를 일베로 낙인찍는 분위기도 형성됐다(일베식 표현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1020 세대의 언어 소비 분위기상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해서 모두를 일베로 규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원이가 쓴 말이 일베용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특정 세대 하위문화 속에 침투한 고인 조롱 문화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지역 갈등, 세대 갈등의 프레임으로 뒤틀어버렸다. 대중의 할 수 있을 법한 비판과 우려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 한 정치인들의 말 얹기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던 불씨를 거대한 사회적 분열의 불길로 키워낸 셈이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사회적 사안에 무분별하게 말을 섞는 행위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켜 교육적 지도가 필요한 일은 정치적 숙청의 대상으로 변하고, 언어사용의 오해는 사상 검증의 단두대로 올라간다. 나아가 사회적 피로감을 극대화한다. 국민들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치권의 사나운 말 잔치 속에서 극단적인 진영 논리를 강요받는다. 안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일상에서 품격이 사라진 말의 홍수는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연대와 통합은 이들의 말 잔치 속에서 서서히 파산하고 있다. 물론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때, 정치인의 말을 통해 대안을 제시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인들의 말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그들의 언어에는 갈등을 중재하려는 책임감은 없고, 오직 표 계산과 팬덤을 자극하려는 기회주의만 가득하다.
성서는 이러한 말의 공해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언어에 대해 경고한다. 잠언 26:20은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조언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갈등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정치를 업으로 하는 말쟁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잠언 10:19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권면한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모든 사안에 입을 열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할 것이 아니라, 언제 침묵할지를 알아야 한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스스로 정화되고 해결될 수 있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지켜보는 인내, 즉 “입술을 제어하는 지혜”가 시급하다.
정치인들이 말을 얹어 문제를 키우는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라인상의 자극적인 밈을 쫓아다니며 분노의 화력발전소를 돌리는 정치인이 아니다. 말의 품격과 절제를 통해 사회적 갈등의 온도를 낮추는 정치인이다. 정치의 본질은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공동체의 평화를 도모하는 말에 있다. 정치인들이 얄팍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갈등의 불씨마다 찾아가 ‘정치적 부채질’을 해대며 판을 키우는 기회주의를 멈추면 좋겠다. 갈등을 키우는 혀의 정치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손과 발의 정치를 보고 싶다. 평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