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기도

‘일곱 문장의 비움 기도’ - 지형은 나는 매일 말씀묵상을 하면서 처음 시간에 ‘비움 기도’를 드린다. 묵상 노트에 ‘일곱 문장의 비움 기도’

ree610 2026. 7. 2. 07:53

‘일곱 문장의 비움 기도’ - 지형은

나는 매일 말씀묵상을 하면서 처음 시간에 ‘비움 기도’를 드린다. 묵상 노트에 ‘일곱 문장의 비움 기도’을 날마다 쓴다. 이러저러하게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이 문구가 기본이다.

나의 하늘 아버지,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저를 충만하게 하옵소서.
저를 비웁니다.
말씀을 갈망합니다.
말씀하심으로써 임재하여 현존하시는 아버지, 지금 말씀하옵소서.
제가 겸허(謙虛)를 배우며 온몸으로 듣겠습니다.
순명(殉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1) “나의 하늘 아버지,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주신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다. 이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시다.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는 표현은 나의 존재와 실존이 늘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있다는 고백이다. 말씀묵상을 할 때는 특별히 더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는 나를 기억하며 다시금 고백한다.

(2) “아버지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저를 충만하게 하옵소서.”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지금 여기에 늘 내 안에 계신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영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성령의 비추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다. 무엇보다, 거룩한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성경 저자들에게 감동을 주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주신다. 66권 성경의 주인공이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의 충만하심을 구하는 까닭이다.

(3) “저를 비웁니다.”

말씀묵상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체험하는 시공간, 존재와 삶의 지성소다. 그 문은 나를 비워야 열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 중심적이다. 자기 성취를 추구한다. 신앙은 자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뜻이 계시된 말씀이 내게 채워지려면 나를 비워야 한다. 자기 비움은 성령의 이끄심으로야 가능하다. 성령의 충만을 먼저 구하고 나서 나를 비운다고 고백하는 까닭이다. 내 삶의 번잡한 생각과 할 일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주님께 집중한다. 생각나는 죄를 회개한다.

(4) “말씀을 갈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그 뜻을 드러내시는 것을 계시(啓示)라 한다. 계시는 역사와 사회의 사건으로, 자연 만물을 통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기록된 말씀인 66권 성경으로 사람에게 다가온다. 성경의 중심이 성육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다. 성서의 이 본문이 교회 공동체의 설교와 개인의 말씀묵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선포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중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 기록된 말씀, 성육하신 말씀, 선포되는 말씀이다.

(5) “말씀하심으로써 임재하여 현존하시는 아버지, 지금 말씀하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오신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있는 나의 존재를 다시금 고백하면서 지금 말씀해 달라고 간구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깨닫는 통로가 많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통로는 말씀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래 수많은 방법으로 말씀하셨는데, 결정적인 섭리의 시간에 말씀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말씀묵상의 시간에 그 결정적 사건이 다시금 발생하도록 간구한다. 말씀하심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행동하며 그 복을 누린다.

(6) “제가 겸허(謙虛)를 배우며 온몸으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의 심장이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명령이 성경에 수없이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기록된 말씀을 듣고 깨달아 살라는 것이다. 말씀을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만난다. 경청은 삶에서 최고의 예술이다. 경청의 근본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말씀을 들으려면 겸허를 배워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결코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겸손이 은혜의 길이다. 말씀은 온몸으로 들어야 한다. 온몸이란 표현은 사람 존재 전체를 실존적으로 대표하는 말이다.

(7) “순명(殉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삶의 실천을 ‘순명(殉命)’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따라 죽을 순(殉), 목숨 또는 말씀의 명령을 뜻하는 명(命)이다. 이 두 한자로 된 ‘순명’은 국어사전에는 없다. 내가 한자를 조합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삶과 죽음까지 바치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신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에서 끝나면 결국에는 신앙이 망가진다. 인식이 개인과 사회와 역사에서 삶의 변혁으로 작동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