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다” - 모세의 중보기도 -
* 말씀: 신명기 9장 19절
신명기 9장 19절에서 모세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기서 중요한 말은 “그 때에도”이다. 그때는 평안한 시간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타오르던 시간이었다. 말할 자격도, 변명할 근거도 없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모세는 고백한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들으셨다”. 이것이 은혜의 신비다. 기도는 상황이 좋을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붙드는 생명의 호흡이다.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신 9:19)
1. 두려움 속에서 드린 중보
모세는 여호와의 분노 앞에서 “내가 두려워하였다”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죄의 무게를 아는 사람의 떨림이다. 모세는 백성을 사랑했지만 죄를 변명하지 않았다. 참된 중보는 죄를 축소하지 않는다. 죄를 죄로 보면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거룩을 잃은 사랑은 감상이고, 사랑을 잃은 거룩은 냉혹함이다. 모세는 그 사이에서 무릎 꿇은 사람이다. 두려움은 은혜를 향한 진정한 첫걸음이다.
2. “그 때에도” 들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향해 치닫던 그 흐름이 멈추는 순간이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모세의 중보였다. 하나님은 모세의 말을 지나가는 소리로 듣지 않으셨다. 무너진 백성을 위한 중보의 절규를 들으셨다. 이것은 죄를 가볍게 넘기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만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중보의 길을 열어 두신다. “이제 끝났다”고 절망이 탄식할 때에, “아직 하나님이 살아계셔!”라고 기도는 우리를 격려한다.
3. 중보자는 공동체의 마지막 숨이다
모세는 백성의 실패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심판은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십 주야를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과 묶어 던졌다. 그는 냉소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심판받을 자들 위에 자기 운명을 포개는 지도자였다.
모세의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를 향해 열린다. 모세는 산 위에서 백성을 위해 엎드렸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모세는 “멸하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했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모세의 중보는 일시적이었지만, 예수님의 중보는 완전하고 영원하다. “그 때에도” 들으신 하나님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언제나 들으시는 하나님이 되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그러므로 실패는 마지막 문장이 아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한, 절망은 최종 판결이 아니다.
절망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지만, 기도는 ‘아직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말한다.
오늘 교회에도 이런 중보기도와 중보자가 필요하다. 공동체는 정죄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죄는 밝혀야 하지만, 사람은 회개와 회복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중보는 영적 방관자의 말이 아니라 영적 책임자의 눈물이다.
“그러나...그 때에도 들으셨다.”
그러므로 다시 엎드리자. 다시 기도하자.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무너진 때에도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주님의 거룩 앞에 떨게 하소서.
모세처럼 공동체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게 하소서.
정죄보다 중보의 눈물을 먼저 배우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소서.
그 때에도 들으신 하나님께 오늘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