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라, 오늘이다” -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 말씀: 신명기 11장 26절
광야 사십 년을 지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문턱에 섰다. 모세는 풍요를 누리기도 전, 그들의 폐부를 찌르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참된 복인가? 광야를 벗어났다고 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삶 앞에 놓인 두 길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운명론적인 협박이 아니라 언약적인 초대이다.
"(보라),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신 11:26).
* 개역개정에는 생략되어 있으나, 새한글 번역에는 히브리어 첫머리의 “보라”(‘레에’)를 “보세요”라고 번역하여 그 느낌을 살렸다. 동사 ‘레에’는 단수이지만, “너희 앞에”는 복수이다. “너 한 사람아 보라, 그러나 너희 모두 앞에 놓였다.” 이 단수와 복수의 교차는 공동체적 책임 안에서의 개인적 결단을 명령한다. 신앙은 결코 익명의 군중 속에 숨을 수 없다.
1. 오늘: 언약의 현재
“오늘"(‘하욤’)은 신명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언약적 현재이다(신 6:6; 29:10; 30:19 등). 신앙은 오늘 응답하는 현재성이다. 그래서 복과 저주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이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마주 보듯, 갈림길은 매일 새롭게 펼쳐진다(신 27장). 어제의 순종이 오늘을 보장하지 않으며, 선택은 날마다 갱신된다. 신명기를 읽는다는 것은 옛 이야기를 듣는 일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이름의 시내산에 다시 서는 일이다.
2. 그리심과 에발 사이에서
"오늘"의 자리에 선 자에게 모세는 두 길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두 길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두 개의 실제 산으로 형상화된다.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신 11:29)
이 두 산은 세겜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전통적으로 그리심은 푸르고 비옥한 산으로, 에발은 황량하고 메마른 산으로 기억되어 왔다. 한 골짜기 안에서 두 산은 서로 다른 길을 증언한다. 한 산은 생명으로 향하는 순종의 길을, 다른 산은 하나님을 떠난 삶의 황폐함을 상징한다.
3. 참된 복: 소유가 아니라 관계
흔히 우리는 복을 소유의 문제로 이해한다. 더 넓은 땅,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공, 그러나 신명기가 증언하는 복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다. 하나님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2)는 언약 안에서 복을 약속하셨다. 가나안의 젖과 꿀은 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선물일 뿐, 복 그 자체가 아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신 11:27).
모세는 다른 신들을 따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저주라 부른다(신 11:28). 저주가 단지 가난이나 재앙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저주는 모든 것을 가졌으나 하나님을 잃은 상태, 곧 하나님 없는 풍요다. 모세는 미리 경고한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삼가라”(신 8:12~14). 풍요는 종종 우리의 시선을 선물에 묶어두어, 정작 그 선물을 주신 분을 잊게 만든다. 손에는 가득하나 영혼은 텅 빈 삶, 그것이 저주의 실체다.
인간은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켜 복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친히 짊어지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에발 산의 저주를 그분이 대신 받으심으로, 그리심 산의 복이 우리에게 흘러왔다. 이제 참된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분을 영접함이 복이요, 거부함이 저주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모세의 첫 명령이 “보라”였듯,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도 “보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옛 이스라엘과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가 있다. 이미 우리를 위해 에발의 저주를 짊어지신 그리스도가 옆에 서 계신다는 사실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오늘”(지금)은 단순한 시간의 좌표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임하는 은혜의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 안에서 생명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오늘도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이다.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풍요를 좇다 주님을 잊는 어리석음에서 우리를 건지소서.
손에 가득한 것보다 주님과의 동행을 더 사모하게 하소서.
이 시대의 우상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소서.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선택 앞에서 생명을 택하게 하소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짊어지신 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하소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