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과 의회를 국민 마음속에 세운 신익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개헌의 문을 열겠습니다:
존경하는 해공 신익희 선생님, 오늘 저희는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민주공화국 수립, 의회 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는데 헌신하신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 재현 행사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이곳에 함께하고 계십니다만, 그날 제가 선생의 손자께 꽃목걸이를 걸어드렸습니다.
국회의장으로서 참석한 자리이기도 했지만 임시정부 법무국 초대비서국장을 지낸 제 외조부 김한 선생의 후손으로서도 각별한 자리였습니다.
제 외조부께서는 환국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셨고, 그래서 선생과 제 외조부 두 분이 해방된 조국에서는 함께하지 못하셨지만, 독립운동 동지들의 뜻이 계승되고 이제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오늘을 하늘에서 함께 지켜보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중앙홀, 많은 분이 로텐더홀로 아는 그 공간에는 세 분의 신익희 선생이 계십니다.
하나는 스물다섯 앳된 얼굴의 청년 신익희입니다. 우리 국회의 뿌리이자,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제6회 회의 폐회 기념사진 속 모습입니다. 이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헌법이 의결되었고, 당시 임시헌법을 기초한 인물이 바로 신익희 선생이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헌의원 신익희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해 나라의 기틀을 세운 제1대 제헌국회 의원들의 모습을 담은 부조입니다. 선생은 환국 직후에 발족한 행정연구회를 통해 헌법 초안을 마련함으로써 제헌헌법의 기틀을 구성하는 데 이바지하셨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국회의장 신익희입니다. 나비넥타이에 중후한 정치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동상입니다. 광복 후 선생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장, 제헌국회 후반기 의장, 제2대 국회의장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의회 민주주의 확립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이렇게 독립운동가에서 의회 지도자로 나라와 국민에 헌신한 선생의 한평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특별히 헌법과 함께 선생의 뜻을 되새깁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설계도를 그린 임시헌장 제정에서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선생은 임시헌법과 제헌헌법까지 헌법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온 힘을 다하셨습니다.
폭력과 편법을 동원해 헌법을 훼손한 이승만 정권에 맞서 선생은 헌정 수호와 반독재 민주주의의 길에 앞장서셨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된 선생의 유세장에 수십만이 모이고 선생의 서거를 애통해하며 추모 투표를 한 국민이 185만. 선생은 의회와 정당, 헌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둥을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세우셨습니다.
저는 또 선생의 애국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 선생께서 의장으로 선출된 2대 국회는 원 구성 6일 만에 전쟁을 맞았습니다. 선생은 피란길에서도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방송을 했고 피난 국회를 이끌며 전후방을 누비셨습니다.
전방부대를 위문하고 전황과 치안을 살피면서 입법과 예산이라는 국회의 일을 해나갔습니다. 선생께서 남기신 단성보국(丹誠報國)이라는 휘호 그대로 선생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정성으로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과 독재로 이어진 그 격동의 한 가운데서 위기에 처한 나라와 국민의 삶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선생의 영정 앞에서 저는 오늘 우리가 다짐하고 새겨야 할 선생의 말씀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선생께서 제헌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후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은 한 사람, 두 사람의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우리 전체가 다 같이 공동하게 노력하는 데에서만 우리 일은 성취되는 것입니다.”
선생의 이 말씀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엄중합니다. 우리 앞에 많은 과제가 있습니다. 국민의 삶이 더 편안해지고 국민의 미래가 더 나아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개헌은 지금 우리 국회가 국민 앞에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헌법은 국민의 삶을 지키는 약속,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의 설계도입니다.
39년 전에 정리된 낡은 헌법을 시대에 맞게 바로 세우기 위해 개헌의 문부터 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누구도 시대적 요구와 책임을 비켜설 수는 없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신 공동의 노력, 더 나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그 책임과 사명을 국회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저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의 마음을 바쳐 해공 신익희 선생의 영전에 깊이 머리숙입니다.
- 국회의장 우원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