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

해방신학은 무엇인가? -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1세기 예수 운동에 두 종류의 글이 있다. 유대교 방식의 이야기와 그리스 방식의 논증이다...

ree610 2026. 5. 4. 00:53

해방신학은 무엇인가?
-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1세기 예수 운동에 크게 두 종류의 글이 있었다. 유대교 방식의 이야기와 그리스 방식의 논증이 그것이었다. 예수와 복음서 저자들이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바울은 철학 강의를 했다. 글자를 못 읽었던 예수가 이야기를 즐겨 했다면, 고학력자 바울은 강의와 설교에 집중했다.

편하게 산책하듯, 독자들과 해방신학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중요한 내용을 쉽고 소박하게 풀어 나가고 싶다. 한 손에 신약성서를, 다른 손에 해방신학을 들고, 신약성서 신학에 조금 부족한 해방신학 관점을 놓치지 않고, 해방신학에 조금 부족한 신약성서 식견을 잃지 않으려 한다.

나는 88년부터 독일 마인즈 대학에서 신약성서를 8년 공부하고, 97년부터 3년을 중남미 엘살바도르 UCA 대학에서 해방신학자 ‘혼 소브리노’ 신부에게 해방신학을 익혔다. 해방신학을 만난 기간과 깊이가 변변치 않아, 독자들에게 송구하다.

해방신학이 언제 생겨났는가 주제보다 해방신학이 왜 생겨났는가 주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해방신학이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지 아닌지,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어떤 점에서 쓸모가 있을지 논의하려면, 우리가 남미 해방신학의 탄생 원인과 배경을 아는 것이 좋다.

1.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등장하다

해방신학은 무엇인가. 해방신학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해방신학의 기초 경험은 무엇인가. 어떤 경험과 사건이 해방신학을 출현시켰는가. 해방신학은 오늘 한국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해방신학은 왜 논란을 일으키는가.

남미에서 신학을 말하는 것은 해방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500년 넘은 남미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생적으로 탄생한 신학이 해방신학이다. 남미 현실과 남미 사람들의 상황에 뿌리를 둔 고유한 성찰이 제시되었다. 남미 안팎에서 해방신학을 태동시킨 여러 자극이 있었다.

해방신학의 탄생 시기를 갓난아이의 출생 신고처럼 정확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 1960년대 남미 신학자들은 남미에서 수많은 사람이 불의하고 비인간적인 가난에 시달리는 상황을 목격했다. 모세가 이집트에 있는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충격이 해방신학자들을 전율시켰다. 가난한 사람들의 노예 상태는 하느님의 뜻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남미의 형제자매들이 강요받는 불의하고 불공평한 가난에 대한 일상적인 경험에서 시작했다. 해방신학은 학술적인 고뇌에서보다는 가난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먼저 나온 신학이다. 가난은 정치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신학 문제라는 사실을 해방신학자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깨달았다.

1962년부터 65년까지 열렸던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해방신학의 탄생을 또한 격려했다. 가톨릭교회를 현대 세계에 개방적인 자세로 변모시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례전으로 이해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무엇인가 주제를 심각하게 논의했고,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복음의 눈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대교회 이후 거의 처음으로, 아마도 루터의 종교개혁 시대보다 더 민감하게, 가톨릭에서 교회론이 진지하게 토론되었다.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과 연결하여 이해하던 신학의 흐름에 교회를 가난한 사람들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새로운 경향이 추가되었다. 교회론이나 기독론에서 부록이나 각주 정도로 취급되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마치 성경 본문처럼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등장했다. 있어도 마치 없는 존재인 듯 교회에서 무시당하던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중심에 우뚝 나타났다. 성경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는 명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는 명제로 확장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의 중심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 이 명제는 2천 년 전 예수가 이미 가르치고 실천하고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리스도교는 2천 년 동안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망각해 왔을까. 독일의 개신교 성서신학자 마르틴 켈러는 그리스도교 역사는 하나님 나라 망각의 역사라고 지적했다.

내 생각에, 그리스도교 역사는 하나님 나라를 망각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을 망각한 역사다. 하나님 나라를 망각했으니 가난한 사람들을 주목할 수 없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망각했으니 하나님 나라를 주목할 수 없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단어 분석은 했지만, 하나님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의 관계를 외면했다. 가난의 성경적 가치를 언급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신학적 가치를 외면했다.

2. 신학자의 회개 없이 신학은 없다

해방신학이 탄생하기 전에도 지독한 가난과 불평등은 남미에 오래 있어 왔다. 그런데, 해방신학 이전에는 신학자들이 가난과 불평등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그럴 리 없다. 가난과 불평등이 분명히 있었지만, 가난과 불평등이 신학 문제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는 말이다. 물론 신학자들의 수준과 깊이가 모든 시대에 똑같지는 않을 수 있다.

가난과 불평등을 본격적으로 목격한 해방신학자들은 가난과 불평등을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이해하기 시작했다. 윤리적 회개에 머물렀던 해방신학자들은 세상을 보는 인식론적 회개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신학적 회개를 했다. 해방신학자들이 회개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와 사회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학자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자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신학자들의 회개는 신학자들 자신의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신학하는 방법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하느님의 눈으로 남미의 가난이라는 현실을 성찰하고 신학자들의 사명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신학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신학하는 사람의 죄뿐만 아니라 비좁은 경험과 식견이 신학의 내용과 품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신학자의 회개 없이 신학은 없다. 신학자의 신학적 회개 없이 올바른 신학은 불가능하다.

아쉽게도 교회와 성당이나 신학대학에서 신학자의 회개라는 주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목사와 신부의 회개도 신학자의 회개에 당연히 포함된다. 해방신학을 말할 때, 아니 모든 신학을 말할 때, 신학자의 회개라는 주제는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3. 가난한 사람들과 신학자의 관계는 무엇일까

예수는 어디에서 신학을 배웠을까. 네 복음서 저자들은 어디에서 신학을 배웠을까. 예수와 복음서 저자 자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가난한 예수와 가난한 복음서 저자들이 가난한 동료 인간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그 풍경은 오늘날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의 풍경과는 상당히 다르다. 오늘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은 예수와 복음서 저자들처럼 가난하게 사는가.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은 가난이 무엇인지 아는가.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세계를 아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모르는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이 가난한 예수와 가난한 복음서 저자들에 대해 설교하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학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학을 배워야 한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기 전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학을 먼저 배웠다. 복음서 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생각에, 가난한 사람들은 1차 신학자이고, 목사와 신부, 신학자들은 2차 신학자에 불과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목사나 신부, 신학자가 될 수 없다. 대체 무슨 말일까. 가난한 사람들은 목사나 신부, 신학자가 되기에 필요한 긴 과정에 필요한 학비를 감당할 수 없다. 드문 방식으로 학비를 조달한 가난한 사람들이 목사나 신부, 신학자가 되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망각하듯, 자신의 과거를 거의 잊고 만다. 목사나 신부, 신학자가 되어 누리는 돈, 명예, 지위 탓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목사나 신부, 신학자가 될 수 없고, 목사나 신부, 신학자는 가난하지 않다. 이러한 현실이 지금 그리스도교를 망치고 있는 최대 모순 중의 하나다. 이 모순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의 현재와 미래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관건 중 하나일 것이다. 해방신학자들은 이 주제를 고뇌할 뿐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삶으로 겪고 있다. 오늘 한국 그리스도교에 주는 불편한 도전일지 모른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