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정치신학:
- 서창원 (감신대 명예교수)
예수 운동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초대교회로부터 신앙과 정치의 관계에서 갈등과 대립과 박해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그러나 현대신학의 용어로 정치신학이란 주제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정치신학 사상은 초창기 교회 이래 존재해 왔다. 교회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고, 교회는 사회관계, 권력관계와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비정치적인 신학도 없고, 전혀 비정치적인 교회도 없다. 교회는 항상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어떤 정치신학을 지니고 있다.
이때 정치는 협의적 의미의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제도적 참여적 행동이 아니고, 기독교 복음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실현”을 위한 신앙과 정치(권력, 국가, 사회질서)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탐구하는 신학적 담론과 밀접하다. 정치신학의 태동은 세속화 신학의 도전으로 혼미해졌을 때, 마르크시즘(Marxism)과 적극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새로운 신학적 응답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극우집단은 ‘탄핵반대’, ‘윤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표상되는 전광훈, 손현보 목사 등과 연계되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의 다윗의 별 깃발을 들고, 정치세력화 되어 한국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는 전쟁을 일으킨 후에는 미국의 극우 복음주의자들과 연대하며 기독교 시온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신학은 보수복음주의적 신학인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의 영향을 받아 요한계시록과 결부하여 ‘휴거’와 ‘7년 대환란’,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의 종말론’ 시나리오를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맹신하는 신앙적 태도를 견지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성서의 역사를 문자적으로 7개의 시대로 나누어 시대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스리는 경륜을 상징이 아닌 실제 사건으로 해석한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매우 독특하다. 이들의 중심적 관념은 휴거(rapture)와 환난(tribulation)으로 신자의 개인적인 기대와 관련되어 있다. 휴거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 그를 영접하기 위해 “구름 속으로 올려진다.”라는 것이고, 환난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질 7년의 기간으로 신자들은 환난의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천년왕국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통치 시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대주의적 복음주의운동이 1920-70년대 미국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미국의 극우적 복음주의자들에게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묵시문학의 해석학적 오독이 공포와 두려움에 휘둘리는 신앙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 ‘프랭크린 그레이엄’은 국방부 기도회(2025년 12월)에서 하나님을 ‘전쟁의 하나님’이라 운운했다. ‘피크 헤그세스’ 미국방장관은 전쟁을 기독교 신앙으로 정당화하며, 이란과의 전쟁을 ‘아마겟돈의 준비’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세대주의 신앙이 패권주의적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을 조장하는 이념이 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미국과의 밀접한 관계 아래 미국 보수개신교로부터 매우 큰 영향력을 받고 있다. 이 세대주의적 신학의 폭력적 정치사상이 한국교회에 끼치는 피해가 심각하다. 식민주의적 극우주의 신학을 무의식적으로 발흥시키고 있다.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것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치사상을 맹종하게 한다. 자본주의와 힘을 통한 강자의 패권주의를 비판없이 동조하게 한다. 이런 점에는 한국교회는 세대주의에서 비롯된 극우주의 신학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심각한 정치신학적 과제를 안고 있다. 근본주의, 반공주의, 친미주의를 무의식적으로 추종하는 한국교회의 정치신학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능한 능력과 무소부재의 전통적인 신이 아니라 탈식민지적인 주체성으로 이해되는 고난과 무능을 체험하는 하나님의 발견이 필요하다.
정치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의 정치신학의 전개를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종교적 사건이 아닌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한다. 로마제국의 권력과 억압, 역사적 현실 속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제국의 형벌방식으로 제국 권력이 체제를 위협하는 예수를 제거한 국가적인 폭력으로 보는 것이다. 몰트만은 그의 저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함께 고통받는 하나님으로서 피억압자, 희생자, 고통받는 자의 편이라는 정치적 해석을 시도한다. 십자가는 종교 권력(유대 지도자)과 정치권력(로마 총독), 대중심리(군중 폭력) 등 3가지 차원의 권력을 비판하는 상징이 된다.
정치신학은 교회가 억압받는 자, 고통받는 자와 연대해야 하는 사회 정치적 실천을 요구한다. 십자가는 죄의 용서라는 구원의 사건인 동시에 억압받는 자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정치적 사건이 된다. 부활은 정치적 저항의 희망으로 십자가 처형의 패배를 전복시키는 희망의 정치적 지평이 된다.
한국의 민중신학은 서구신학의 학문적 종속에서 벗어난 신학이다. 한국교회의 신학으로 탈식민지적 주체적인 신앙에 자리매김하는 신학의 해방선언이다. 민중신학은 예수를 ‘민중 사건’의 실체로 이해하며 정치신학적 전개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근본주의적 신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남미해방신학이 주창한 것처럼 성서를 가난한 자의 시각으로 읽어내는 ‘가난한 자의 해석학적 특권’을 나눌 필요가 있다.
성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윤석열 탄핵 재판에서 부당한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재판도 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제국주의의 패권에 희생된 십자가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제국주의의 패권적 폭력을 극복하고,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향해서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사상을 복원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을 정치사상의 이념적 근거로 삼아 신학적 정치신학을 새롭게 주장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정치신학 이전의 신앙적 태도에서 현대 정치신학이 해석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정치사상의 내용과 해석으로 전이(transfer)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식민지적 극우신학의 정치적 행태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국민주권 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내용인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한 정치신학의 실천에 적극 참여하는 개혁적인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평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