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포럼

두 마리의 요괴 전범, 도널드 트럼프와 네탄야후의 본질과 정체: - 최자웅 신부(시인, 사회학박사)

ree610 2026. 3. 28. 16:37

프롤로그 - 두 마리의 요괴 전범, 도널드 트럼프와 네탄야후의 본질과 정체:
- 최자웅 신부(시인, 사회학박사)

  바야흐로 지구촌에 요괴 한 마리가 배회하고 있다. 그 어이없는 큰 요괴 트럼프는 철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천박한 거래와 거간술로 세상을 살아온 부동산재벌로서 일약 반동적인 흐름 속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온 세계를 요란하게 위험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 곁에 도덕적으로 이미 파탄이 난 이스라엘의 같은 체질의 인간 네탄야후가 수상으로 있으면서 오직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는 트럼프처럼 오직 이웃 없는 극우 이스라엘 만세를 추구하는 도당으로서 세계의 평화를 교란하며 가히 파멸로 이끌고 있다.

신대륙 아메리카는 원래 가장 신앙적이며 도덕적인 인간들이 낡은 구라파라는 대륙을 박차고 그들의 신세계를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 이룩하고자 한 이상향이었다. 그러나 그런 소중한 출발과 가치와 달리 평화의 땅에 원주민으로 살아가던 아메리카 인디언을 무참하게 박멸하고, 낡은 구라파 뺨치게 영혼이 없는 무서운 산업(독점)자본주의 천국이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에 제2차대전의 참전과 승리 이후 전후 체제에서 쇠미한 대영제국에 이어 가히 새로운 세계질서 팍스 아메리카체제로 고착되었는데, 가장 열악하고 추악한 형태가 오늘의 트럼프의 마가(MAGA), 아메리카 퍼스트로 출현했다.

  트럼프의 의식과 정치와 정책에는 정치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공공선과 민주적 가치, 도덕은 찾아볼 수 없다. 인격적인 요소가 아닌 철저한 힘 – 땀을 흘린 댓가로 쌓아 올린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요행과 거래와 술수로 쌓아 올린 재부와 천박한 권력으로 결합한 매우 추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충동과 광기로 세상을 몰아가고 있고, 각국의 지도자들을 대하는 의식과 태도는 시정잡배나 깡패들이 취하는 것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다.

트럼프를 제어할 수 있는 유엔이나 구라파의 교양 높은 각국 지도자들은 없는 것인가. 지금 그가 신경을 쓰는 것은 막강한 수퍼파워 아메리카를 위협하고도 남는 중국과 신중함과 무게로서는 비교되지 않는 지도자 시진핑 정도이다. 합리적인 선의의 경쟁과 현실 속에서 미중 관계와 비중으로 본다면 아메리카는 분명히 지는 해이고, 중국은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막강하고도 새로운 가능성이다.

평화롭고 건강한 세계는 건설하기는 어려워도 일거에 큰 상처를 내고 파괴하기는 쉽다. 전형적인 예가 독일의 나치즘과 아돌프 히틀러였고, 지금은 미국의 트럼프와 동맹 이스라엘의 네탄야후라 할 것이다. 자신의 힘을 과신하는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백주에 납치하여 미국에 구금시켰고, 이란의 지도자들을 교묘하게 가공한 디지털과 AI 초정밀 무기들로 살해하면서 중동과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는 잘못된 정보로 이란의 한 여학교를 폭격하여 무려 160여 명의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한 사망자를 내고도 하등의 반성도 사과도 없이 뻔뻔하게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그의 허풍인지 모르겠으나 다음 순서는 쿠바라고 한다.

1. 반동 복고 아닌, 100년 전의 위대한 희망과 부활을 위하여

위대한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인류의 역사는 반동과 복고의 굴절을 겪으면서도 크게는 진보의 궤적을 걸어왔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인류에게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일찍이 암울한 농노제와 차르 전제의 나라였던 러시아에서는 1917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계의 새로운 개조를 꿈꾸었던 때, 그 이상은 선진 유럽 국가가 아닌, 혁명의 모든 조건이 가장 불비하다 여겨지던 곳에서 블라디미르 레닌과 볼셰비키들이 긴고한 세월 끝에 혁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이후, 새로운 소비에트 사회를 건설하는 한편, 전 세계 피압박 민족들의 해방과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코민테른을 창설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세계 각지의 혁명가들을 후원하였다. 그리하여 거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억압, 수탈에 신음하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가들에게 모스크바는 세계 혁명과 구원의 등불이었다.

우리 한반도에서는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에 이어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지배에 항거한 전 인민적 항쟁은 비슷한 처지에 있던 피압박 민족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에 깊은 충격을 받은 북경에서는 같은 해 5·4운동이 일어났고, 동남아시아에서도 유사한 항쟁들이 전개되었다. 한국에서 주로 종교인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된 3·1독립만세운동은 당시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헛된 기대였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른바 평화적 비폭력 항거는 그 의미가 깊었음에도,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항쟁 자체는 일제의 무자비한 살육과 잔혹한 폭력적 압제 속에서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윌슨의 허울 좋은 민족자결주의와는 달리, 레닌이 내건 전 세계 피압박 민족과 인민들의 혁명과 해방을 위한 강력한 지원은 당시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조선의 수많은 독립지사와 혁명가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고, 한국독립운동의 큰 흐름 또한 사회주의 혁명의 노선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5·4운동 이후 그 진원지였던 북경대학의 잡지 《신청년》을 발행하던 진독수와 중국 최초로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주창한 이대쇄 등에 이어, 모택동과 소수의 전국적 혁명가들이 1921년 상해의 박애 여학교에서 비밀리에 중국공산당을 결성하였다. 그 후 파란과 고난으로 가득했던 중국혁명의 여정은, 그 상징이 된 인간 고난의 서사시이자 20세기 현대적 출애굽으로 불리는 대장정을 거쳐 마침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아울러 1920년대 프랑스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신음하던 베트남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외국 선박에 올라 요리사 등 갖가지 직업으로 살아가며 프랑스와 러시아 등 세계를 배회하던 호지명 역시 모스크바에서 훈련받고 끈질긴 투쟁을 이어갔다. 그는 전후 비록 반쪽에 불과했지만, 북쪽 월맹의 대통령이 되었고, 디엔비엔푸 패배 후 물러난 프랑스를 대신해 들어선 미국과의 간고한 전쟁과 투쟁 끝의 베트남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가족도 없이 평생을 독신과 가난, 그리고 겸허한 혁명가의 삶으로 일관한 호지명은 지금도 베트남 인민과 전 세계 뜻있는 이들에게 영원한 ‘호 아저씨로 깊이 추앙받고 있다.

2. 조선의 엉클 호지명, 지운 김철수 서거 40주년과 그의 부활

지난 3월 16일 전남 광주항쟁의 현장, 1980년 5월 민주시민을 학살한 그 숱한 총탄 중에서도 헬기에 의해서 전일빌딩에 무려 245개의 총알을 난사한, 그 끔찍한 탄흔들이 지금도 생생히 남겨져 있는 전일빌딩, 지금은 새롭게 명명된 <전일245빌딩> 3층에서 매우 뜻깊은 행사와 모임이 있었다. 모처럼의 동안거와 노동에서 벗어나 그 모임에서 축사와 헌정시를 낭송했다. 한국 독립과 혁명운동의 권위자인 반병률 외국어대 명예교수께서 지운 김철수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강연하고, 지운당의 서예와 그 가치에 대해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의 강의와 추모공연이 있었다. 광주의 전설적인 김준태 시인과 유지들께서도 시종 함께했다.

아직 우리 사회와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지운 김철수 선생은 일찍이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일본의 와세다대학을 거쳐 일본과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제3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역임하고 일제하에서 무려 15개 성상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해방 후에 석방된 한국 사회주의운동의 거물급 지도자였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혁혁한 혁명운동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고도 김철수 선생은 보다 젊은 박헌영에게 겸손하게 조선공산당을 잘 이끌어 갈 것을 당부하였는데, 너무나 섹티즘 파쟁으로 당운영이 이루어지자 이를 바꿀 것을 강건 등과 더불어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나, 오히려 반당으로 몰려 뜻을 접고 향리에 은거하여 의제 허백련, 오지호 화백 등과의 교분으로 살다가 1986년에 93세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삶과 정신이 너무도 고매하여 지운 김철수의 서거 40주년을 맞아 선생이 남긴 유무전시회 겸 추모 강연의 자리를 가진 것이었다.

필자는 30대 초반에 청운의 뜻을 안고 독일 유학을 떠나기 전에, 숨 가쁜 상황 속에서 작심하고 당시로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으셨던 지운 선생을 찾아뵈었다. 왜냐하면 당시 이미 구순이던 선생님을 뵙지 아니하면, 유학을 마치고 고인의 묘소에나 방문하여야 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불문곡직하고 어느 날 무작정 전북 부안의 백산면 대수리 생가로 찾아 뵈었던 것이다. 1983년 광주항쟁과 전두환의 위세가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 마을 곳곳에 “때려잡자 공산당, 신고하고 색출하자 간첩”이라는 붉은 글씨들이 즐비하던 상황에 일급 사찰 대상자인 지운 선생을 찾아가는 것도 각오해야 했다. 묻고 물어서 대수리 댁으로 가서 선생님 계십니까 하고 부르니, 지운 선생님이 뉘시오 하고 나오셨다. 선생님은 원래는 부안에서도 떵떵거리는 재산을 지닌 집안이었으나 평생 혁명운동을 하느라고 모든 것을 다 잃고 마지막에 선영 옆에서 손수 손으로 황토 흙집을 마련하여 이만하면 족하다는 작고 소박한 거처에서 살고 계셨다. 방으로 들어가서 길고 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쥐들도 오고 가는 그런 궁벽한 방이었다. “쥐가 있네요”라는 필자의 말에 선생님은 ‘괜찮아’ 하며 미소로 넘기셨다.

노혁명가의 방에는 일어로 된 사상관계의 책들과 작은 앉은뱅이 책상 위에 자신이 만고의 혁명가였음을 암시하는 오래된 흑백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은 히틀러의 베를린 제국의사당 꼭대기에 나부끼던 나치의 깃발을 베를린에 진주한 러시아 적군 군사들이 내리고 붉은 기를 새로이 꽂아 세우는 역사적인 순간의 사진이었다. 무작정 찾아뵌 방문이었지만, 선생님은 젊은 청년 사제와의 대담이 만족스러우셨는지 서울로 떠나는 필자를 배웅해 주시면서 방문에 대한 답방을 서울로 가서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도 기뻤던 필자는 그날을 기꺼이 준비했고, 선생님께서는 손자인 소중 씨를 데리고 답방하셨으며, 그날에는 이미 양해된 녹음기로 하루 종일 강행군한 귀한 대담을 수록했다. 구순의 높은 연세로서 피곤해하지 않으셨고 수많은 사항에 대한 살아있는 역사를 매우 총기있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필자가 독일 유학 중인 3년 후에 선생님은 세상을 뜨셨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선생님은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복권과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인정받아서 지금은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지운 선생님의 또 다른 호는 초봉이었다. 그것은 신익희를 위시한 동경 2.8 독립선언의 주인공들이, 그리고 상해 임정과 독립운동 동지들이 선생님께 붙여드린 아호였다. 언제나 가장 불의한 곳에서, 가장 의로운 곳에서 첫 봉우리처럼 우뚝 피하지 아니하고 맞서고 일어서는 청년 지사의 초상, 그런 존재로 지운 선생은 소박한 민족독립운동에서 보다 심도깊은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운동에 투신하시고 삶을 살아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놀랐던 것은 지운 선생의 인격과 도량이었다. 좌파 혁명가였지만 매우 폭넓은 이른바 민족 우파 노선의 인물들까지 인간 됨됨이가 그릇되지 아니하면 포용하는 어쩌면 몽양 여운형과도 같은 그릇이었다.

3. 지운 김철수와 호지명과 모택동 – 풍우당년의 새로운 동지들

지운 김철수는 조선공산당 투쟁에서 이른바 투쟁경력으로만 한다면 널리 알려진 남로당의 박헌영이나 해방 직전 옥사한 가히 투쟁경력으로 자타가 인정할 경성 콤그룹의 전설적인 이재유에 못지않았다. 지운 선생은 마오와 같은 1893년생이었다. 필자에게는 두 번의 상면과 대담을통하여 느낀 지운선생의 그릇과 사상은 가히 호지명(1890년생)과 마오급이셨다. 지운 선생의 일생에서도 그는 젊은 날에 이른바 신아동맹을 결성하신 적이 있었다. 일본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아시아의 헛된 꿈이 아니라, 낡은 지배와 모순에서 해방되고 혁명된 희망의 아시아를 염원하는 그런 동맹이었다. 실제로 김철수 또한 그의 혁명가로서의 반경은 호지명처럼 온 아시아와 시베리아 만주 모스크바를 망라한 것이었다. 상해 시절에는 아직 때를 얻지 못하고 중국공산당의 간부이면서도 생활은 상해의 허름한 세탁소의 잡부로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던 마오와도 직접 상면하고 동지애와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

세 사람, 지운 김철수와 호지명과 모택동은 젊은 날 이후 특히 그들의 장년과 민족의 독립 이후에 다른 삶을 살았다. 호지명은 간고한 시련과 과정을 거쳐서 조국에 귀국하여 보구엔 잡을 비롯한 젊은 후배 혁명가들을 양성하여 결국 불란서를 물리치고 독립에 이르렀으나, 분단된 조국에서 불란서에 이은 미국의 야욕과 전쟁으로 불굴의 싸움을 벌이다가 통일을 보지 못하고 전설적인 월남의 국부와 호 아저씨로 영면했다. 호지명이 애독했다는 책 중에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호지명은 한학에 능하여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모택동처럼 한시를 즐겨 썼다.

모택동은 손문이라는 걸출한 그릇과 국공합작도 하고 농민강습소장도 하며 활약하였으나 이후에 장개석의 잔인 무비한 공산당 소탕전에 궤멸된 중국공산당과 잘못된 지도 노선으로 말미암아, 특별히 추수폭동에 크게 실패한 이후 한 줌의 초라한 패잔병들을 이끌고 장개석 군대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의 산악으로 들어갔다. 유명한 1927년의 정강산 투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맑스-레닌주의 전략의 기본인 혁명의 주동 세력을 도시노동자가 아니라 중국의 특수성에 맞춘 거대한 농민대중을 주동 세력으로 상정하면서, 교조적인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현실과 특수성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유연한 이념과 전략 전술을 창안하고 구현시켰다. 그리하여 매우 중국적이고 동양적인 혁명 원리인 모순론과 실천론을 제시하며 중국혁명을 지구전과 대중노선과 통일전선으로 이끌면서 홍군과 농민의 결합을 통한 강고한 힘과 더불어 고난의 장정을 끝내고, 황량한 섬서성 작은 연안의 동굴도시에 미래의 중국혁명의 축소판과 원형을 만들면서 일본군과 장개석 군대와 맞서며 중국혁명을 이룩했던 것이다.

우리 한국이 냉전적 사고와 가치관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오가 사망한 시점에 지운 선생은 그의 고향 대수리에서 붓을 들어 마오의 서거를 추모하는 서정적인 시를 썼다. 풍우당년에 젊고 고귀한 뜻으로 같이했고, 세월이 흘러 동지가 세상을 뜬 것을 들으면서 진정으로 그 우정을 새기고 애도하는 그런 시의 내용이었다.

우리가 모택동을 카리스마적인 중국의 제왕과 권력자의 이미지로만 생각한다면 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매우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었고, 비범하고 창조적인 정신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고 탐독한 인물이었다. 특히 역사와 철학과 문학에 나름대로 정통한 심도있는 인문학자였다. 그런 그를 호남사범의 스승이자 훗날 장인이 된 양창제가 아끼고 사랑했다. 그는 매우 창조적이며 낡은 기득권이나 틀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자유로운 반항적 영혼이었다. 그가 좋아한 말이 거대한 흐름에 거스르라는 ‘조반유리(造反有理)’였다. 그것이 중국공산당의 진독수를 비롯한 수많은 초기 지도자와 이른바 모스크바와 스탈린을 추종하며 중국혁명을 온전히 기계적인 전략노선으로 추구하던 이들과 당내 투쟁을 통해서 소외당하고 배척당하면서도 끝내 성공할 수 있었던 창조적 힘이었다.

4. 트럼프가 미구에 침공과 붕괴를 공언하는 쿠바와 어네스토 체 게바라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이어 공공연하게 침공과 붕괴를 공언하는 쿠바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젊은 날 쿠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던 시절, 필자는 선구적인 박형규 목사님이 지니신 하바나에서 출간된 영문판 <Three Continental>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었다. <들어라 양키들아>라는 쿠바혁명 관련 책은 뜻있는 청년 지식인들을 감동시켰다. 이 책은 젊은 사회학자가 진솔하고 명쾌하게 분석한 미국의 양심과 학자가 살아있음을 세계에 과시한 명저였다. 이 책의 도전으로 필자는 개인적 삶의 유장한 강물 위에서 정치학도로서의 학문적 출발을 신학과 종교학, 문학을 거쳐서 사회사상과 종교사회학 전공의 사회학까지 공부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쿠바혁명 직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의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전형적인 식민지였고 미국인들을 위한 환락과 매음굴이었다. 그러한 쿠바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법학도이자 젊은 변호사였던 피델 카스트로가 소수의 동지들과 더불어 그란마호를 타고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은 바티스타 정권 타도와 역사적인 쿠바혁명을 감행한 것이었다. 여기에 세기의 혁명아 어네스토 체 게바라가 자신의 조국이 쿠바가 아닌데도, 아르헨티나 출신으로서 직업과 안정된 삶과 출세가 보장된 의사의 삶을 박차고 국제적 혁명의 전범으로 가세했다. 게바라는 혁명의 성공 후에 지도자로서 보장된 모든 권력과 영광을 박차고 세계 혁명을 위하여 떠돌다가 볼리비아 계곡에서 영원한 빠르티잔으로 죽었다.

이렇게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에 이어 제3세계 혁명의 영웅적 전범이 된 쿠바를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가 전복시키기 위해 침공을 감행했으나 실패했다. 보스턴 지역의 아버지가 재벌이었던 가문에서 젊은 대통령이 된 케네디도 그의 사상적이며 역사적인 본질과 차원에서는 매우 반동적인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케네디의 발밑에도 못 가는 천박한 트럼프가 오직 막강한 아메리카 자본과 군대의 힘만을 과신하면서 라틴 아메리카를 자신의 속국들로 여기며 다음은 쿠바라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대는 것은 희극에 가까운 심각한 비극이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 에필로그- 새로운 인내천의 인간형과 세계의 희망을 위하여

칼 맑스는 일찍이 유대인 중에서도 신앙과 정신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중심적인 랍비 가문이었다. 이러한 맑스가 자신의 정신과 지성이 성숙하여 가면서 자본이라고 하는 거대한 흡혈귀와 모순 속에서 현대의 수많은 인민이 노예화되는 것을 못 견뎌 하면서 새로운 해방과 혁명을 꿈꾸며 자본론을 쓰고, 엥겔스와 더불어 맑스-레닌주의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또한 그의 부친은 영국의 맨체스터와 독일에 공장을 가지고 경영하면서 큰 부를 이룩한 전형적인 부르죠아였다. 그런데 대단한 부와 부친의 가업을 승계한 젊은 엥겔스는 자기 일신의 소시민적인, 경영인들이 취하는 막대한 부와 이윤을 위한 삶이 아니라, 맑스와 더불어 자본의 노예가 아닌 인간과 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다가 죽은 지 131년이 되었다.

같은 독일계인 트럼프는 부동산재벌로서 젊은 날로부터 오직 일신의 부와 탐욕과 사치와 부박한 가치를 위하여 살아온 인간이다. 미국인들을 우리가 경멸할 때 양키라고 부르는 데에는 뿌리없고 교양없는 천박한 아메리카 가이들을 가르킨다. 물론 미국 사회에도 올곧고 아름다운 인간과 의로운 지성의 인간들이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금 세계의 수퍼 강대국으로서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고의 정점에서 움직이는 대통령이 트럼프와 같은 전형적인 천박한 카우보이와 양키 가이인 한에 있어서 그 파장과 비극은 대단히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야말로 수운이 설파한 인내천이 아닌 인내충 - 마치 인간을 짐승이나 벌레로 바라보는 자가 아닌가. 그는 거대한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전쟁을 아이들의 장난감 놀이처럼 즐기는 작자가 아닌가. 그러기에 그의 보턴을 누른 참화가 이란의 무고한 160여 명의 꽃 같은 여학생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 아닌가. 그것이 사실로 나타났는데도 그는 사죄하지 않은 채로 짐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진심도 최소한도의 연민도 없는 작자는 사실상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 트럼프와 미국을 교묘하게 추동한 것이 네탄야후와 이스라엘이다. 이들의 종교는 유대교이고, 근본적인 보수 기독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칼을 쓴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그의 가르침은 너무도 위선적인 이들의 안중에 전혀 없는 듯이 보인다.

다시 어네스트 체 게바라로 돌아가 보자. 게바라는 진정한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은 참된 크리스챤과 맑시스트의 결합에 있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말이 매우 의미깊은 우리 시대와 미래의 문제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중대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굳이 게바라가 명시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 참된 크리스챤들이 역동적으로 출현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크리스챤들은 이웃 종교와 이웃 민족들을 진심으로 자신처럼 대하고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가히 기독교를 비롯한 기존 종교들의 혁명적인 화해와 일치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맑스와 엥겔스 이래 무수한 고난과 장구한 희생과 시련을 거치며 흘러온 인류의 평등과 진정한 자본에서 해방된 인간의 공동체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숭고한 흐름은 강물처럼 도도히 흘러가 마침내 평화의 바다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게바라가 천명한 참 맑시스트들의 자기 혁명이 필요하다. 맑시즘은 인류를, 혹은 민족을 해방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열린 인간 공동체와 사회를 이룩하는 데는 혁명의 수단이었던 공산당이라는 철의 조직과 규율을 지닌 조직과 권력을 절대화함으로써 현실사회주의는 1980년대 말에 붕괴했다. 아직 중국과 쿠바와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겉으로 유지하고 있어도 모두가 각양각색인 현실이다.

미국의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과 언급을 자제하며 유난히 대한민국에 대해서 불구대천의 증오를 보이는 북한은 비이성적으로 과장된 상태에 있다.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아닌 비극적 코미디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사회주의적 기본 철학과 가치가 아닌 백두혈통을 체제의 최고 가치로 우상화한 북한은 역사적 진실과 열린 사회의 기본을 철저히 망각하고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라는 비극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인 지 오래되었다. 사회주의 왕조의 있을 수 없는 네포티즘은 오늘 성년에도 이르지 못한 소녀 김주애의 화려한 등장과 권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역시 백악관 최고의 권력과 정책 결정에 자기 딸과 유태계 사위 등을 거리낌 없이 내세우고 있다. 아마도 유태계 사위는 네탄야후와 트럼프를 전쟁발발 등 커다란 정책 결정에 이권적으로 매개하는 촉매제의 하나였을 것이다. 너무도 천박한 네포티즘의 전형이다. 미국을 지배하는 유태계 자본 세력과 근본주의적 보수 극우기독교가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것이다.

모택동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모안영을 주변의 많은 혁명동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두게 했다. 연안 시절에는 초기 기독교공동체처럼 혁명적이며 금욕적인 시대였지만, 북경의에 의용군으로 기꺼이 보냈고, 조선전선에서의 폭사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모안영의 묘소를 조선에 중남해 거처의 동방홍이 된 가히 제왕적 모택동보다 더 철저히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호지명이다. 그는 혁명을 위하여 자신의 조국 베트남의 독립과 행복을 위해 일생 독신으로 청빈하게 지냈다. 지운 김철수 역시 수많은 혁명가가 살았던 것처럼, 해방 후에 누릴 수 있는 혁명가와 애국지사로서의 영광과 권력을 멀리했다. 그는 선비적 혁명가였고, 모택동과 호지명처럼 시인이기도 했다. 광주에서 유묵전으로 전시된 그의 서예작품 중에 마음을 크게 끈 작품이 있었다.

“창밖 깊은 삼경에 비는 내리는데,
등잔 앞의 나의 마음은 만리를 서성이네.”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지금 세계를 배회하는 천박한 양키 요괴 지도자 말고, 플라톤이 그의 국가론(Politeia)에서 주창한 온전한 정치가는 마땅히 철인왕(Philosophischer Herrscher/Koenig)이어야 한다는 당위적 존재와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너무도 어려운 이상적 타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진정한 인간 어네스토 체 게바라가 세계혁명을 위하여 지구촌을 배회하면서 꿈꾸고 대망한 새로운 혁명적 인간형, 진정한 크리스챤과 진정한 맑시스트들의 부활을 기다린다. 낡은 세기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암흑의 시대에 맞서서 일어선 젊은 독수리들, 1920년대의 메시아적 희망에 불타던 그 젊은 영웅들과 인간들의 부활을 기대한다. 트럼프와 네탄야후의 천박한 야합과 공수, 신성동맹에 맞서는 지구촌의 새로운 전투적 동맹이 절실하다. 우리는 브라질의 소년공 룰라와 한국의 비참했던 장애인 소년공 이재명이 브라질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인간 승리를 경험했다. 1950년대와 60년대, 거대한 수퍼파워에 맞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비동맹 지도자들과 이념이 세계의 희망으로 동터 오르던 <반둥회의>처럼, 지구촌에 진정한 평화와 인간혁명을 실현시킬 새로운 창조적 사상과 혁명적 인간들이 만들어 낼 역동적 에너지와 희망에 다시 직면하고 싶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