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asah): 거룩을 빚는 예배적 노동
* 말씀: 출애굽기 37장 1-29절
출애굽기 37장은 겉으로 보면 성막 기구 제작의 기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장을 천천히 읽으면, 반복해서 들려오는 하나의 동사가 있다. 바로 “만들다”는 뜻의 “아사”(asah: 1/10/17/25절 등)이다. 이 반복은 단순한 기술 보고가 아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뜻을 손으로 빚는 순종의 기록이다.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출 37:1)
1. 정밀한 순종, 거룩을 빚는 손
브살렐은 자기 감각을 과시하지 않았다. 자기 취향으로 새롭게 꾸미지도 않았다. 그는 보여진 모형대로 만들었다. 여기서 거룩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정밀한 순종이다. 신앙은 뜨거운 마음만이 아니라 정확한 손끝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님은 막연한 열심보다 당신의 뜻에 대한 섬세한 응답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성막의 기구들은 금으로 만든 물건이기 전에, 순종으로 빚어진 형상이다.
2. 성령의 손끝에서 드려지는 예배
이 노동은 단지 인간의 기능이 아니다. 출애굽기의 큰 흐름 속에서 브살렐의 손은 성령께 붙들린 손이다(출 31:3). 성령은 사람을 측량하고, 새기고, 다듬게 하신다. 한 치의 오차를 줄이며 거룩을 세우게 하신다. 그러므로 예배는 제단 앞의 찬양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 뜻에 맞게 만들고, 세우고, 돌보고, 감당하는 모든 충실한 노동 안에도 있다. 노동이 예배가 될 때, 손은 기술을 넘어 기도가 된다.
3. 작은 창조에 참여하는 사람
이 “아사”는 창세기의 창조 언어인 ‘바라’(하나님만이 주어)와 함께 등장한다(창세기 2장 3-4절에서는 ‘바라’와 ‘아사’가 동시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사용된 동사가 성막 건축에도 사용된다. 이는 성막의 노동이 단순한 제작이 아니라, 무질서 속에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는 작은 창조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여기서 창조주께 순종하며 그 질서에 참여하는 동역자이다. 이것이 예배적 노동의 존엄성이다.
이 모든 것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법궤는 임재의 자리이신 그리스도를, 진설병 상은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등잔대는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분향단은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37장의 “만들다”는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준비의 동사이다. 브살렐의 손끝은 아직 오지 않은 복음의 형체를 빚고 있었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가르치는 일, 돌보는 일, 준비하는 일, 기다리는 일, 공동체를 세우는 일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아사”가 될 수 있다. 성령께 붙들린 손으로, 정밀한 순종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바로 그것이 창조질서에 참여하는 예배적 노동이다.
출애굽기 37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의 신앙은 말로만 뜨거운가? 아니면 손으로 순종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감동으로 시작해 습관으로 사라지는가? 아니면 정밀한 순종으로 형체를 얻고 있는가?
이 반복되는 동사(“아사”)는 오늘도 우리를 초청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하여 보이는 거룩을 만들라고!
** 기도문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손과 삶이 뜨거운 열심만이 아니라
정밀한 순종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브살렐의 손을 붙드신 성령께서 우리 손도 붙들어,
오늘 우리의 노동이 예배가 되게 하소서.
무질서한 삶의 자리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질서를 세우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거룩함으로 증언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