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제란 무엇인가? - 존재 전체를 드리는 예배 -
* 말씀: 레위기 1장 1-17절
올해 고난주간 첫날에 레위기 1장을 읽게 되었다. 뜻깊은 은혜의 복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왜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밖에 없는지를 깊이 묵상하게 한다.
출애굽기의 마지막에서 성막은 세워졌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 가운데 임했다. 그러나 거기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이 저절로 그분 앞에 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가까이 오실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깊이 묻게 된다. “나는 어떻게 그 앞에 설 수 있는가?” 레위기 1장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레 1:1)
1. 출애굽의 끝에서 시작되는 예배
레위기는 출애굽기와 깊이 연결된다. 출애굽기가 구원의 사건을 기록한다면, 레위기는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친다. 해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구원은 목적지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레위기 1장은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배는 인간이 먼저 시작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부르시고, 인간은 그 부르심에 응답한다. 은혜가 먼저이고, 예배는 그 다음이다.
2. 흠없이 올려 드리는 제사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olah)이다. ‘올라가다’는 뜻이다. 제물이 불살라져 하나님께 올려 드려지는 데서 온 이름이다. 그러나 번제의 핵심은 불이 아니라 전적 봉헌이다.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전부를 드리는 제사이다. 그래서 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다. 또한 예배자는 그 머리에 안수해야 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것이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안수는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이 제물이 나를 대신합니다”라는 고백이다. 예배자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나의 죄가 제물에게 전가되고, 이 제물의 운명이 곧 내 운명이다”라는 고백이 담긴다. 그것은 예배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재가 되는 죽음을 상징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이다.
3. 남김없이 나 자신을 드리는 예배
우리는 자주 일부만 드리려 한다. 시간도 조금, 마음도 조금, 순종도 조금. 정작 드렸다고 하지만, 정작 삶의 깊은 자리에서는 여전히 “이것만은 내 것”이라고 붙들고 산다. 그러나 번제는 그런 예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제물의 피는 뿌려지고, 각을 뜨고, 전부 불살라진다. 그것은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사건이다. 제물의 전부를 불태우듯, 번제는 삶의 가장 깊은 자리까지를 요구한다.
번제란 드릴 것을 골라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드리지 않을 것을 남기지 않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남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이 번제의 온전한 성취이시다(히 9:14; 10:10).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억지 헌신이 아니다. 먼저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번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 삶 전체를 남김없이 드리는 예배이다.
오늘도 우리는 많은 것을 붙들고 산다. 성공, 명예, 권력, 자존심이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끝내 내어놓지 못하는 영역을 남겨 둔다. 그러나 번제는 조용히 묻는다. “너는 무엇을 드렸는가?”가 아니라, “너 자신을 드렸는가?”라고. 이 질문 앞에 서는 것, 그것이 번제의 시작이다.
**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먼저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흩어진 우리의 마음을 주님 앞에 모읍니다.
부분이 아니라 중심을 드리게 하소서.
남은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을 보고 닮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 삶이 향기로운 산 제물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