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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이 장엄하다면 영녕전은 온화하다. 영녕전이 주는 평온함에 더 오래 머문다. 정전과 영녕전은 재임기간이 짧은 왕과 추존된 왕과 왕후의

ree610 2026. 3. 23. 07:35

종묘 정전이 장엄하다면 영녕전은 온화하다. 영녕전이 주는 평온함에 더 오래 머문다.

정전과 영녕전은 재임기간이 짧은 왕과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가 있다. 왼쪽 첫 째 칸은 재위기간 2년2개월인 2대왕 정종과 정안왕후의 신위가 있고 둘째 칸은 세자 29년 왕  재위기간 2년3개월인 세종의 아들 문종과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사망한 현덕왕후의 신위가 있고 세 째 칸은 재위기간3년 1개월인  단종과 정순왕후의 신위가 있다.

세종의 아들로 세자 29년 동안 국정을 살피고 효를 다한 문종의 병을 얻어 짧은 왕위로 생을 마감한 문종과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난산으로 사망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그 옆에 단종 그리고 14살에 왕후가 되어 폐위되어 64년을 단종으로 그리워하며 81세를 살은 정순왕후의 한 많은 신위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니 아련함이 밀려온다.

숭인동 청룡사에 폐서인이 된 17세인 정순왕후는 16살 단종과 청계천 영도교에서 생이별을 한다. 영도교란 이름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뜻이다. 신숙주과 정순왕후를 몸종으로 삼고자 기획을 하자 정순왕후는 머리를 깍고 비구니 승이 되어 청룡사에서 승려생활을 한다.


한양 도성 밖 4대 비구니 도량이 있었다. 보문동에 위치한 보문사,  숭인동에 위치한 청룡사, 옥수동에 위치한 미타사,서관동에 위치한 청량사다.

이들 사찰들이 비구니 사찰이 된 것은 정순왕후처럼 권력을 놓아야 하는 여인들이 자신을 지키는 선택 때문이기도 했다.

청룡사(靑龍寺)는 고려 태조 때 도선국사의 유지로 창건되었다. 제1세 주지로 혜원이 절을 맡은 이래로, 줄곧 비구니들만이 있었다. 그 예로 조선 건국 이후 공민왕비인 혜비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스님이 되어 이 절에 있었고 1차 왕자의 난 뒤에는 세자 이방석의 누나인 경순공주가 머물렀고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를 떠난 정순왕후 송씨(宋氏)가 머무르며, 날마다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았다.


정순왕후는 세조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81세까지 그녀가 앙가슴을 치며 흘렸을 원통한 눈물과 부처님에게 귀의하며 진리에 정진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지난 토요일 몇 분과 종묘 라운딩을 하며 종묘는 나에게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부모님이다! 바로 답이 나온다. 자주 종묘를 가지만 다녀오면 늘 맘이 좋다 부모님을 뵙는다는 것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은 없다. 기억은 치유이고 미래다 이런 생각에 감사하게 나의 전두엽은 늘 숨 쉬고 있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할머니가 또 올랐다. 10살 때부터 외국인선교사가 미국유학을 권유하자 완고한 할머니의 부친을 유학 보내는 것을 반대하며 만 12살에 시집을 보냈다.

시 조부가 돌아가셨는데  시어머니인 나의 증조할머니는 황해도 최고의 강신무라 황해도 전역을 다니셨기에 연락이 닿지 않았고 한량인 나의 조부는 서울 기생집에 있어 연락이 되지 않아 12살 소녀가 장례를 맡았다고 한다.

형이 27살 사망할 때 할머니의 애통한 모습이 기억난다. 할머니는 나중에 형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하셨다. 두 아들을 먼저 보낸 할머니는 늘 스스로 죄인이라고 자책을 하며 교회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주일아침 7시 1부 예배를 드리셨다.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늘이 준 생명이기에 끊을 수는 없지만 죽고 싶다.  죽어야 하는데 삶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앙가슴을 치시던 모습이 새삼 기억난다. 장수한 정순왕후의 삶도 그러셨을 것이다.
- 지승룡 (민들레영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