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12:34~43 빛이 있을 동안에
찬송가 532장 주께로 한 걸음씩
5. 그가 말씀하신 것에 대한 백성들의 이의(34)
그들은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반박하고 비난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인자라고 불렀으며(23절) 그들은 이것이 메시야의 칭호 중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그는 또한 `인자가 들리우리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들은 이 말을 그의 죽음으로 이해했다.
(1) 그들은 메시야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자신들의 추론에 입각하여 메시야의 영속성에 관해 언급한 구약 성경을 인용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가 말씀하신 것을 반박하는 그들의 부당성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즉 그들이 메시야의 영속성 고찰해 보기로 하자. 즉 그들이 메시야의 영속성을 입증하기 위해 성서를 보증으로 삼았을 때, 그들은 메시야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언급한 성서 분문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사 53:12)라는 말씀과 특히 그의 손과 발이 관통당하리라는 말씀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그들이 이 말씀을 읽었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인자의 들리움을 이상하게 생각했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인자의 고난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박했을 때 그들은 그가 자신의 영광과 환희에 대해 말한 것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 그들은 `이 인자는 누구냐`(34절)고 물었다. 그들은 "네가 인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메시야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네가 어찌하여 메시야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던 것이다.
6. 이 이의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 (35,36)
그들이 자신들의 이의에 대해 스스로 답했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즉 "인간은 죽지만 불멸의 존재로 영원히 거한다. 인자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들이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신중한 주의를 주지시키신다(35,36)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라`
(1) 인간의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심과 그들의 구원에 대한 그의 소망: 자신을 모함하고자 하는 자들까지도 좋은 말로 권면하시는 그리스도는 얼마나 친절하신 분인가! 이 반대자들에 대하여 취하신 그의 대처 방안: 그는 `거역하는 자를 온유하게 징계하셨다`(딤후 2:25).
(2) 우리가 본문에서 특히 살펴야 할 점들.
1)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모시는 즐거움을 향유하는 혜택을 입었으나. 그 즐거움의 향유는 짧고도 불명확한 것이었다.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을 동안(35절). 그리스도는 바로 이 빛이시다. 태양이 매일 저녁 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영속하는 것처럼 십자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도 그의 `영원한 거하심`과 일치하는 것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빛과 함께` 살았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시간은 짧고, 기회도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2)그리스도는 그들이 그 빛을 향유하고 있는 동안 이러한 특권을 최대한 선용할 것을 경고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믿으라(36절).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목표와 여행의 목적지에 이르기도 전에 우리의 날이 끝나지나 않을까하는 즉,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을까 하는(35절)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기회를 선용하는 데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3)복음을 떠나 죄를 범한 자들의 슬픈 상태: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들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는지 모른다. 기독교 교회의 가르침을 제쳐놓고 보라. 그러면 우리는 전혀 선악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 교의의 가르침을 팽개친 자는 파멸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위험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함정의 가장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춤을 추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4)우리 모두의 막중한 의무와 권리는 그리스도의 이 모든 말씀으로부터 온 것이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36절). 이 말씀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들에게 주어지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하나의 경고이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복음의 빛을 믿는 것`과 그 빛이 밝혀 주는 진리에 순응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 복음의 빛이 우리 눈의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빛의 인도에 따르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왜냐하면 그 빛이 우리 발의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빛이 있는 동안 이 빛을 믿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자들은 빛의 자녀들이다.
7.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물러나심(3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36절).
(1) 예수는 그들 회개와 각성을 위해 떠나가셨다. 만약 그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대적하는 자들로부터는 즉시 은총의 수단을 거두어 가신다.
(2) 예수는 자신의 보존을 위해 떠나가셨다. 그는 그들의 분노와 광란으로부터 자신을 숨기셨다. 그의 말씀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사악해졌던 것이다.
Ⅴ. 무리들의 불신 (요 12:37-41)
우리는 본문에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우리 주 예수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그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불신을 예언했고, 또 그것을 애통해 했다. 본문에서는 이 완고한 사람들에 관한 두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으며, 이 두 가지는 복음적 예언자인 이사야에 의해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즉 그들은 믿으려 `하지 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믿을 수도 없었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2: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함(12:42, 43)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출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관원들 중에서 믿는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여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12:42; 9:22). 이들 중에는 아리마데 요셉이나 니고데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19:38, 39; 3:1, 2) 예수님을 믿되 드러내놓고 믿지 못하는 자들을 ‘니고데모주위자’ (Nicodemian)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이들이 이렇게 행동한 근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인간이 가지는 어두움(12:35, 36)
첫째, 인간은 무의미의 어두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종국에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모를 때 겪는 고통입니다.
둘째, 죽음의 어두움이 있습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죽음이 내 삶의 문을 두드릴 때 느끼는 두려움을 가리킵니다.
셋째,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다가올 그 심판에 대한 공포인 것입니다.
* 주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동안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수 있사오니 밝히 복음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