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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21 목숨을 내어 주는 사랑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Ⅰ. 삯군 목자와 선한 목자 (요 10:1-18)

ree610 2026. 3. 3. 17:58

요한복음 10:1~21 목숨을 내어 주는 사랑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Ⅰ. 삯군 목자와 선한 목자 (요 10:1-18)
1. 비유를 말씀하심(1-5)

  (1) 이 비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1) 절도와 강도:절도와 강도는 양떼를 해하기 위해 들어가 그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자들이다(1절). 절도 또는 강도는 우리 속에 들어갈 타당한 합법적인 이유도 없으므로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며 어떤 다른 길로 기어 들어간다.

2) 합법적인 주인을 부끄럽게 생각해야만 한다. 합법적인 주인을 구별시켜주는 성격: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2절).

3)목자는 즉시 문으로 들어감: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3절).

4) 목자가 하는 보살핌: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리고 더욱 분명한 것은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는 사실로 목자는 매우 정확히 자기 양들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양우리에서 그 양들을 꺼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3절).

5) 낯선 목자의 개입: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2) 착한 사람들이 양에 비유되는 것은 적절하다. 인간은 자기들의 창조주께 의존하는 피조물로서 그의 목장의 양떼로 일컬어진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양의 우리`로서 널리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곳으로 불러 모아들여지고 또 절도며 강도들 즉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하나님은 크신 목자이시다(시 23:1).

2. 유대인들의 무지(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6절).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지식에 대하여 상당히 깊은 자만에 빠져 있었으나, 실상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이해할 충분한 식견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사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그 사람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들이었다.

3. 그리스도의 상세한 설명(7-18)
  (1) 그리스도는 그 `문`이시다. 하나님의 유일한 양떼들이라고 여겨졌을 법한 유대인들에게와 그 양떼들의 유일한 목자들이리라고 생각되었을법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양우리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문이신 그리스도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무리에 들어가는 첫 번째 허락을 받는다.

   2)구체적인 의미. 그리스도는 목자들의 문이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오지 않은 자들의 성격:그들은 도적이요 강도이다(8절).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시다: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9절).

  (2) 그리스도는 `목자`이시다(11절 이하). 하나님께서는 그 관계를 거듭 밝히신다. 그는 목자들이 초장에서 양떼들에 대해 가졌던 여러 관습을 취하고 계시다.
   1)그리스도는 도적이 아니라 목자이시다. 도적의 해치려는 속셈: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10절). 도적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초장에서 신자들을 훔치며 영적으로 죽이고 파괴시킨다.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 사기치는 자들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자들이다.

   2)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시며 고용된 목자 즉 삯군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부르시고 또 14절에서 다시 그렇게 부르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목자이시며 그 어느 목자도 그분처럼 그렇게 능수 능란하거나 성실하거나 온화하지 못하다. 그분은 다른 모든 고용된 목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그러한 분이심을 입증하신다(12-14절). 신실하지 못한 목자의 부주의함에 대한 묘사(13,13절): 고용된 삯군은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12절).

  Ⅱ. 유대인들의 분쟁 (요 10:19-21)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견해. 사람들 가운데 분쟁, 분열이 있었다. 이번과 같은 소동은 이미 앞에서도 일어났었다(요 7:43 ; 요 9:16). 한번 분쟁이 일어났던 곳에서는 조그마한 일에 의해서도 분쟁이 재발되게 된다. 째진 틈은 꿰매는 시간보다 더 빨리 찢어져 나간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론으로 왈가 왈부하며 나누어지는 편이 죄 아래서 일치단결되는 것보다는 더 좋은 일이다.
  (1) 이번 경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나쁘게 말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예수를 귀신 들린 자로 몰아 부친다. 그들은 그를 미친 사람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그의 말을 듣는 것을 정신 병원에 갇힌 병자가 쓸데 없이 지껄이는 것을 듣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곧이 듣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필수적인 양식에 대해서는 비웃음 당해도 참아 버린다.

  (2) 그러나 그를 변호하여 나선 다른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들은 비록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많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사실은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정신이 올바로 된 사람이요, 감정이 풍부하며 자비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음을 보여 준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생명을 내어주신 목자

* 목자의 목양 자세 (10:1-15)
부득이함으로 하지 않고 자원함과 기쁨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요21:15, 16; 벧전5:2). 그리고 보수나 권리를 생각지 말고 그들의 본이 되어 앞서가야 하며,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11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양들을 위해 자신의 권리조차 다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 양의 문이신 예수님(10:7-9)
이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요14:6; 행4:12; 히10:20).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영의 양식을 얻고 생명을 얻어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10절). 즉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요8:51; 벧전1:9).

주님!
나의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심으로 나의 참목자이심을 고백하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