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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서훈제도의 보완을 희망한다 -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 위원장)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터져 나온 조선 인민의 국권 회복...

ree610 2026. 2. 25. 10:57

독립운동 서훈제도의 보완을 희망한다
-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 위원장)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터져 나온 조선 인민의 국권 회복 열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주권재민 정신을 생각한다. 하지만 삼일절은 단순히 영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는 날이 아니다. 조상의 열망과 정신을 오늘의 우리가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성찰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선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독립운동가 서훈 문제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와 싸우며 민족 앞에 헌신한 선열들을 대한민국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선양하는 일에 얼마나 노력했는가.

2026년 2월 현재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18,664명이다. 1962년 시작되어 육십여 년 이어진 정부의 독립운동가 서훈 결과이다. 하지만 1894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반세기 세월 동안 일제 강점에 맞서 싸운 선열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우리는 작은 것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독립운동 서훈 제도 개선을 위해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독립운동 공적 심사 기준일은 독립운동가의 사망일이거나, 1945년 8월 15일이어야 한다. 우리 독립운동은 광복의 순간인 1945년 8월 15일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투옥된 채 옥중에서 버티던 이들, 해외에서 일제와 싸운 이들, 국내 지하 활동가들이 모두 우리 독립운동가들이다. 그들이 사회주의자였건, 해방 이후 월북했거나 정치 활동에 연루되어 형을 살았건, 그들은 대한의 독립유공자이다. 그들이 사망할 때 독립운동가였거나, 1945년 8월 15일 당시에 독립운동을 했으면 그들의 사상이나 해방 이후 행적과 관계없이 ‘독립운동가’로서 마땅히 서훈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독립유공자를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는 유족이나 지인들의 신청으로 심사 대상이 되는 분들이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으로 발굴해야 할 대상이다. 서훈 신청자 심사 중심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역사 연구자, 시민단체, 후손들과 협력해 자료를 발굴하고 누락 독립운동가를 찾아야 한다. 반민족 부역 행위의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과감히 서훈해야 한다. ‘기다리는 심사’에서 ‘찾아가는 심사’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심사가 더 투명하게 진행되고, 결과에 대한 반론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립운동 공적 심사는 역사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심사에서 거부된 경우 어떤 점이 미흡했는지를 신청자가 구체적으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심사에 예단이나 편견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신청자가 문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의 신뢰도를 높이고 공공성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앞으로 더욱 투명성을 확보하여 후손이나 신청자가 무슨 기준으로 왜 거절되었는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심사 과정과 기준을 당사자들에게 공개하고, 보충 자료를 제출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참여 공간을 열어가야 한다. 이러한 절차적 투명성이야말로 과거를 기리는 일과 미래의 신뢰성 회복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3.1운동 107년이 되는 해를 맞아 독립운동 서훈 제도의 과감한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기억은 정교하게 제도화하며 강화된다. 기억과 성찰이 있는 나라, 그것이 선열들이 꿈꾸던 대한민국일 것이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