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선 원로목사님의 분리 개척을 위한 40억 요구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뉴스앤조이에 실린 박영선 목사님의 40억 요구 관련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보도된 발언과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박영선 목사님이 이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한번 추론해 보았다. 그분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의 핵심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후임목사가 바꿀려고 하는 '남포교회의 정체성'과 자신이 주님께 받은 '설교 사명'일 것이다.
“나는 평생 설교자로 살아왔다. 남포교회는 내가 단순히 고용된 목회지가 아니라, 내 신앙과 사명이 축적된 자리다. 나는 이 교회를 세웠고, 수십 년 동안 말씀으로 공동체를 세워 왔다. 은퇴는 했지만 설교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내 연륜은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후임 목회자와의 갈등은 개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설교 사명과 교회 정체성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다. 내가 계속 설교하고 있는 것도 교회가 원했고, 내가 감당할 책임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아들 설교를 들어봐라. 내 설교를 가장 잘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 아들이다. 나보다 시대에 맞게 더 잘 전하고 있다. 이것은 혈연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다. 분리 개척을 말한 것도 사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설교 사명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요청한 것이다. 교회 자산 규모를 고려할 때 내가 요청한 금액은 과도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세습이나 사유화로 몰아가는 시선은 나의 사명과 헌신을 왜곡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나는 협박한 것이 아니다. 내 진의는 왜곡되고 있다. 모르니까 나를 공격하는 것이다. 나는 권력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지키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과거의 영화를 누렸던 고령의 노인들 가운데에는 자기 생각과 다르면 쉽게 섭섭해하고 고집은 더 세지는 경우가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자기 시대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이며, 노화 현상의 일종으로 두뇌의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관점에서는 누구나 옳다. 문제는 관점이 달라졌을 때이다. 시대는 변했고 다른 관점이 요구된다. 과거의 공로와 헌신이 현재의 권한으로 자동 전환되던 시대는 지났다. 이 사안을 한 지도자의 도덕적 일탈이나 판단 착오로만 이해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사건은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제도, 권력 구조, 그리고 왜곡된 신앙관이 한 지점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 나온 사례로 보인다.
1. 후임 목회자에 대한 불만과 ‘거취 압박’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원로목사님의 눈에 후임 담임목사의 목회 방향이나 리더십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인간적으로도, 목회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후임 목회자의 거취는 당회와 교인 공동체가 논의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이지, 원로목사님이 “나가라”거나 “내가 나가겠다”는 방식으로 압박하며 주도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박영선 목사님은 ‘정체성 투표’를 요구하며 사실상 후임 목사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이는 교회를 둘로 갈라놓을 위험을 감수한 태도였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개인 간 인격 충돌이 아니라, 교회의 공적 의사결정 구조를 사유화한 방식이다.
2. “내 지분”이라는 표현이 드러내는 신학적 위험
보도에 따르면 박영선 목사님은 자신이 설립자이며 수십 년간 목회했고, 교회 자산이 1500–2000억 원에 이르니 그에 상응하는 ‘내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나는 그분이 이 표현을 기자에게 직접 했다는 점에 놀랐다. 보통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사용하는 절제된 방식과 달리, 정말 자신의 원하는 바를 위선 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요구는 신앙적·신학적으로 볼 때 문제가 심각하다. 이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이해하는 언어라기보다, 공로에 따라 지분이 형성되는 조직으로 이해하는 사고에서 나온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교회는 누구의 헌신이 컸는지를 따져 지분을 배분하는 곳이 아니다. 목회자의 장기 헌신이 교회의 법적·재정적 소유권으로 전환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신학적 공동체가 아니라 한 개인의 생애 프로젝트가 된다.
3. ‘정체성 투표’는 교회를 권력 선택 게임으로 만든다
후임 목사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정체성 투표’를 요구한 행위는 교회의 분별 구조를 무너뜨리고 교회를 권력 선택 게임의 장으로 만든다. 이는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다. 공동체를 분열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태도다. 교회의 정체성은 투표를 통해 지도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4. ‘개척’이라는 언어와 ‘권력 행사’라는 현실
박영선 목사님은 “같이 나가 개척하는데 무슨 세습이냐”고 말씀하셨다. 형식적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자리를 물려받느냐의 세습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교회 자산을 담보로 아들의 사역 기반을 마련하고, 본인은 그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요청이 ‘갑질’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는 박영선 목사님의 요청이 공동체의 자율적 결정을 넘어선 권력 행사로 읽혔다. 자신의 장점인 설교 외에는 할 줄 모른다는 목사님의 부드러운 호소나 겸손한 부탁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임 목사와 현직 장로들까지 훈계하는 방식은 ‘갑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령 작은 규모의 분리 개척이라 하더라도, 그 결정과 규모, 방식은 교회 공동체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원로목사가 요청을 넘어 영향력을 행사할 사안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분의 요청은 형식은 개척일 수 있으나, 실질은 권력의 연장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물론 해석의 여지는 있다. 한국 대형 교회만의 독특한 권력 구조와 문화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이 요구가 순수한 요청을 넘어선 압박으로 보일 소지는 충분하다.
5. 반복되는 주어 ‘나’가 드러내는 인식 구조
보도된 발언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어는 ‘교회’가 아니라 ‘나’다.
“내가 설립자다.”
“내가 40년 이 교회를 목회했고, 이만큼 성장시켰다.”
“내 요구를 안 들어주는 것은 교회가 나에게 나가라고 한 것이다.”
이 논리가 계속될 경우,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한 목회자의 생애 서사에 종속된 조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박영선 목사님은 자신의 요청에 관해 객관적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교인들의 문제 제기를 오해로, 비판을 악의로, 구조적 질문을 신앙 공격으로 치환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과 태도로는 공동체적 대화가 성립되기 어렵다. 대화가 어려울 수는 있다. 그러나 교회 자산에 대한 지분 주장, 교회 분열을 사실상 담보로 한 보상 요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남포교회 당회의 판단은 오히려 건강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6. “교회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박영선 목사님은 아마도 “교회를 위해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후대를 위해서”라는 말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목표라도 권력 남용, 과도한 재정 요구, 구조적 압박, 후임 리더십 흔들기를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7. 아름다운 퇴장이 어려운 이유: 개인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한국 교회에서 아름다운 퇴장이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결단 부족만이 아니다. 본인이 원해도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원로목사의 리더십과 상징성에 익숙해진 구조, 그리고 그것을 사랑과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떠받쳐 온 교인들의 문화 역시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박영선 목사님이 오해받는 부분도 많으리라고 본다. 오해를 다 풀 수도, 다 설명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후대가 판단할 것이다.
박영선 목사님은 한국 교회에 독보적으로 사랑받아 온 설교자 중 한 분이었다. 원로목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후임 목회자의 사역을 어렵게 만들 때, 원로목사님의 지교회에서의 절제와 퇴장은 선택이 아니라 덕이자 책임이 된다.
원로목사님에게 필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능력 있는 지도자, 헌신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교회에서 침묵과 물러남이 마지막 사명일 수 있다는 신학적 성숙이다.
은퇴한 목사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역했던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아니다. 저명한 목회자라 할지라도, 후임 목회자가 열정과 자유를 가지고 사역할 수 있도록 조용히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곳에서 자신이 받은 은사로 섬기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오늘 한국 교회가 거의 보지 못했지만 가장 강력한 증언이라고 생각한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 그 사실 자체를 정죄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설교는 다른 교회와 다른 사역지에서 이어 가시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같은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 일에 대해 분명하게 회개하시는 모습을 보이신다면, 개인적으로는 모든 것을 덮고 기꺼이 환영할 마음이 있다. 회개는 관계를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영광이 아무리 위대했어도 그의 마지막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경고다.
나는 박영선 목사님의 최후가 그렇게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름답고 은혜가 남는 은퇴, 그것이 지금 박영선 목사님께 가장 잘 어울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최근 필립 얀시의 불륜과 회개소식을 들었다. 걸려서 재빠르게 대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명성에 걸맞는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인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서양 기독교 지도자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웬만해서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록 교인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문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만약 박영선 목사님께서 이 사안에 대해 회개의 모습을 보이신다면, 그것은 단지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한국 교회 후배들에게 큰 모범이 될 것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설교가 되고, 가장 깊은 가르침이 될 수 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목사님, 실수를 인정하시고 교회를 떠나 주세요. 그 길이 살 길입니다.” - 이민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