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동사의 신앙’: 침묵을 통과한 순종 * 말씀: 창세기 22장 3절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동사들을 연속으로

ree610 2026. 1. 21. 09:01

‘동사의 신앙’: 침묵을 통과한 순종
* 말씀: 창세기 22장 3절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동사들을 연속으로 나열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 나무를 쪼개어… 떠나… 가더니”

이것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행동의 서사이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결단의 언어가 된다. 믿음이란 침묵이 동반된 순종의 첫걸음에서 태어난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창 22:3)

1. 침묵의 무게

우리는 신앙을 ‘이해의 언어’로 방어하려 한다. 납득이 될 때 움직이고, 설명이 될 때 결단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맞이한 새벽은 반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논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침묵은 곧 포기인가? 아니다. 성경은 침묵을 무기력으로 읽지 않게 하려고, 이어지는 동사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침묵은 마음이 비어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너무 무거워 우리 언어가 길을 잃은 순간을 부각시킨다. 그때 믿음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위의 방향으로 증명된다.

아브라함의 침묵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너무 커서’일 수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그는 말 대신 행동으로, 질문 대신 준비로, 항변 대신 걸음으로 응답한다. 침묵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자기 합리화를 세우지 않겠다는 태도이기도 하다. 설명은 줄고, 신뢰는 깊어진다. 다만 남는 것은 순종의 행동이다.

2. 믿음의 몸짓

가장 놀라운 것은 ‘아침에 일찍’이다. 지연이 없다. 미루지 않는다. 여기서 성경은 ‘아브라함이 담대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브라함이 준비했다’고 말한다. 안장을 지우고, 나무를 쪼개고, 사람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이 준비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준비는 순종의 형식이며, 믿음의 몸짓이다.

특별히 “번제 나무를 쪼갠다”는 디테일은 잔인할 만큼 현실적이다. 나무를 쪼개는 순간, 그는 상징이 아니라 실행의 문턱을 넘는다. 우리는 종종 마음으로만 결단하고 끝낸다. 그러나 신앙은 마음속 결의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신앙은 몸을 통과한다. 손으로 만지고, 발로 걷고, 시간을 떼어내고, 생활의 질서를 다시 짜는 구체성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순종은 감정이 안정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흔들려도 하나님께 방향을 고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동사의 신앙’이다. 결단은 실행을 통해 살아난다.

3. 여호와이레의 신앙

창세기 22장은 단지 ‘인간 순종의 영웅담’이 아니다. 신앙이란 윤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역설이다(키르케고르). 성경의 더 깊은 흐름은 ‘대체 가능한 은혜’로 나아간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손대지 말라”고 멈추게 하시고, 다른 제물(숫양: 창 22:13)을 준비하신다. 바로 ‘여호와이레’다(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 이 결말은 하나님이 죽음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시는 분임을 드러낸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데리고 나무를 준비해 오르는 이야기의 먼 끝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는 복음의 역사가 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우리의 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두 가지를 함께 배운다.
첫째, 믿음이란 동사로 나타난다.
둘째, 그 동사는 은혜로 뒷받침된다.
은혜 없는 순종은 율법이 되어 사람을 짓누른다. 그러나 은혜 안의 순종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린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우리가 ‘쪼갤 나무’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도 창 22:3의 새벽이 있다. 다 설명되지 않아도, 다 정리되지 않아도, 믿음은 다음 걸음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한다. 나무를 쪼갤 때에 우리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 때, 아니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제물을 준비하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가능을 대신 짊어지셨기에,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을 연습할 수 있다. 침묵은 이제 더 이상 공포의 무언이 아니라, 은혜를 신뢰하는 고요가 된다. 말은 없어도 동사는 살아난다. 이것이 ‘동사의 신앙’이다.

** 기도문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이미 준비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미루는 습관을 끊고, 오늘 다음 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삶의 동사로 주님께 응답하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우리를 살려주심을 감사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두려움이 신뢰로, 순종이 사랑의 열매로 맺히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