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두려움, 보이지 않는 하나님”
* 말씀: 창세기 20장 11절
두려움은 종종 사실을 틀리게 하기보다, 진실을 비뚤게 만든다. 그때 거짓말은 대개 새로 꾸며낸 허구가 아니라, 두려움이 잘라낸 반쪽 진실이다.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 앞에 서서 자신이 왜 사라를 누이라고 말했는지 해명한다. 그 두려움이 어떻게 신앙과 윤리를 뒤흔드는지, 그것에 대한 정직한 자화상이 들어 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라"(창 20:11).
실상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외가 결핍되어 있었다. 결국 하나님보다는 권력을 지닌 사람(아비멜렉)이 더 두려워진 것이다.
1. 두려움은 주변 세계를 오해한다
아브라함은 바르게 관찰하기보다 결론부터 내린다. 두려움은 질문을 줄이고, 속단을 늘린다.
"아마 그럴지도 몰라"가 아니라 "틀림없이 그럴 거야"로 바뀐다. 두려움은 마음속에서 재판관처럼 판결문을 작성한다. "여기는 위험하다. 저들은 믿을 수 없다. 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판결문을 그대로 승인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꿈을 통해 아비멜렉을 제지하시고(창 20:3-6), 사라를 보호하시며,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신다. 여기서 우리는 두려움이 만든 '삶의 지도'가 반드시 정확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두려움은 현실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과장하는 습관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인식은 필연적으로 편향된 말과 행동을 낳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인 아비멜렉은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한다(창 20:3-5). 때로 하나님은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신다.
2. 두려움은 진실을 축소하고, 변명을 늘린다
아브라함의 문제는 단순히 거짓말 자체만이 아니다. 그는 진실을 절반으로 축소한다. 사라를 누이라 부른 말에는 부분적인 사실이 있다(창 20:12). 하지만 그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사실의 조각이 아니라 관계의 정직이다.
두려움은 관계를 존중하기보다 자신의 생존을 먼저 염두에 둔다. 그래서 진실을 추기하기보다 '생존의 기술'로 전락시킨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사랑의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고, 위험의 이유로 들이댄다: "내 아내로 말미암아 나를 죽일 것이라." 사랑의 관계가 생존의 변수가 되었다. 두려움이 들어오면 사람은 타인을 인격이 아니라 '리스크'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진실은 더 이상 따뜻한 얼굴이 아니라 차가운 전략이 된다.
3. 하나님의 관심은 '폭로'가 아니라 '회복'이다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사실 아브라함의 실수보다, 하나님이 베푸신 보호와 회복이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경고하시고(창 20:3), "내가 너로 범죄하지 않게 하였다"(창 20:6)고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깊은 은혜가 있다. 죄는 인간의 결심만으로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붙드시는 은혜, 곧 제지하시는 은혜로 악을 막으신다. 인간의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역사의 마지막 안전장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앙의 회복은 수치심을 키우는 폭로가 아니라, 진실을 회복하는 은혜의 초대다.
아브라함은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접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협 앞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길은 ‘살기 위한 거짓’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진실’이었다. 십자가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사랑의 정직이다. 부활은 또한 두려움이 마지막 문장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비뚤어진 진실의 순간에도 역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 오히려 흔들리는 사람을 붙드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신다. 두려움이 진실을 왜곡할 때, 복음은 진실을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할 이유이다. 그 경외심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
** 기도문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리를 억누를 때가 많았습니다.
그 두려움이 진실보다는 우리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주님을 경외함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기게 하소서.
이제 살기 위한 생존의 거짓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진실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입술과 행동 위에 진실의 용기를 부어 주소서.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