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겉으로는 예배, 속으로는 자기 계산 * 말씀: 창세기 17장 17-18절 우리는 데이터와 확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일상도

ree610 2026. 1. 16. 07:21

겉으로는 예배, 속으로는 자기 계산
* 말씀: 창세기 17장 17-18절

우리는 데이터와 확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일상도 철저히 계산된 수치 안에서 움직인다. 이처럼 가장 차가운 현실 앞에서 속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한 사람,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마주해 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지극히 경건한 예배의 자세(‘엎드려’)를 취한다. 몸으로는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그 엎드린 사람의 내면에서 조용하지만 요동치는 독백이 흘러 나온다. 예배의 자세는 갖추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도 종종 그렇다. 예배는 드리는데, 마음은 다른 자리에서 분주하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창 17:17-18)

1. 계산하는 마음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하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17절) 아브라함은 지금 거룩한 시련 속에 있다. 예배하는 몸과 계산하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 그의 머리는 100세라는 생물학적 종말을 계산한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주님의 약속 앞에 엎드려 있다. 이것은 단순한 불신은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 압도당한 인간의 신앙적 모험을 준비하는 진통이다.

2. 불신앙적 냉소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불완전한 웃음을 언약의 증거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웃다’는 행위는 훗날 ‘이삭’(그가 웃는다)이라는 이름이 된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꾸시는 언어 유희적 반전이다.
아브라함에게 등장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하나님은 그대로 용인하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흔들림을 비웃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흔들림 위에 더 큰 약속을 새기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을 파괴하기보다, 그 계산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3. "이스마엘이나…" : 진짜 대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뢴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8절) 이 기도는 얄팍한 궤변이 아니다. 한 아버지의 간절한 심정이다. 이스마엘은 이미 손에 잡히는 현실이며, 이미 사랑으로 묶인 존재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가 계산한 '대안'을 붙들고 싶어한다.

우리가 흔히 드리는 기도도 이와 비슷하다. "주님, 주님의 약속이 너무 크니, 제가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복을 주시면 안 될까요?" 신앙의 시련은 바로 여기서 온다.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미래를 내 현실의 크기로 축소하려 한다.

아브라함의 100세 된 몸이 죽은 같았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선물로 주셨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인간의 모든 절망적 계산을 부수어 버리셨다. 십자가는 인간의 가장 처참한 ‘웃음거리’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인류 최대의 ‘기쁨’(이삭)으로 바꾸셨다.
오늘도 위기와 문제 속에 갇혀서 허우적 거리는 우리가 그렇게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죽음이 끝이라고 계산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된다. 믿음은 생명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를 지배하는 불안의 숫자들을 하나씩 내려 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란 의심과 계산을 품고도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리는 관계의 용기다.
지금도 주님의 약속 안에서 거룩한 모험을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는 초대받고 있다.

** 기도문

약속의 하나님,
우리는 겉으로는 예배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의 조건과 상황, 나이와 가능성을 먼저 계산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고, 우리가 계산한 대안을 붙들고 싶어합니다.

불가능의 자리에서 새 길을 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의 신실하심 안에 한 걸음씩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