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십일조: 맘몬니즘에 대한 거룩한 저항
* 말씀: 창세기 14장 19-20절
십일조는 자주 오해를 낳는다. 십일조는 신앙의 점수표가 되기도 하고, 교회가 부과하는 종교 세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십일조는 기쁨의 언어가 아니라 부담의 언어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십일조를 의무의 제도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일조를 예배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얼마를 드릴 것인가”보다 “누가 주권자인가”를 먼저 묻는다. 십일조는 단지 헌금 항목이 아니라, 재물이 신이 되려는 시대에 드리는 신앙의 저항이다.
“그(멜기세덱)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 14:19-20)
1.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멜기세덱을 만난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며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는 아브람을 축복하며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로 부른다. 이 고백은 내 삶의 주권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신앙은 하나님을 내 계획의 조력자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왕좌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일이다. 십일조는 바로 그 왕좌 교체의 표지로 등장한다.
2. ‘재물 얻을 능력’도 은혜다
멜기세덱은 이어서 말한다.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승리의 해석권이 하나님께 돌아간다. 그렇다고 아브람의 수고와 용기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수고의 뿌리가 은혜 안에 놓였다는 뜻이다. 승리가 내 공로의 훈장이 되기 전에, 승리는 하나님의 주권의 선물이 된다. 전리품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전에, 예배가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 이 순서가 무너지면, 승리는 축복이 아니라 우상이 되기 쉽다.
이 장면은 신명기의 경고와 맞닿는다.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고 말씀한다(신 8:17–18). 여기서 능력은 몸의 건강, 마음의 집중, 관계의 기회, 보호하심, 버티는 인내까지 포함한 삶의 힘이다. 재물은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우리 마음의 왕좌에 앉기를 원한다. 그래서 십일조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는 예배다.
3. 하나님의 것을 다시 하나님께!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다. 이 드림은 거래도, 세금도 아니다. 이 드림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다. 여기서 십일조의 복음적 회복이 드러난다. 사실은 ‘십분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인간은 소유자가 아니라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을 맡기시며, 그 맡기심 안에서 살아갈 몫도 주신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만 드리면 아홉은 마음대로’라는 면허가 아니다. 십일조는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아홉까지도 거룩하게 사용하라”는 초대다. 십일조는 10%의 규정에 머물지 않고 100%의 삶을 예배로 정렬하는 훈련으로 나아간다. ‘돈이 신인 세상’(Mammonism)에 대한 ‘거룩한 저항’이 곧 십일조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이때 가장 중요한 태도는 ‘기꺼움’이다. 복음은 강요로 사람을 세우지 않는다. 복음은 은혜로 사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억지로 떠밀리는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 드리는 감사가 된다. 우리는 ‘드림’으로 하나님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미 붙들린 삶이기에 드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은 일부를 드리신 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다. 우리의 십일조는 그 사랑에 대한 작은 응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소득을 자기 우상으로 삼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기꺼이 하나를 드리며, 맡겨진 아홉을 거룩하게 사용한다. 이것이 첫 십일조의 복음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이다.
** 기도문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인생의 소득과 승리가 내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습니다.
재물 얻을 능력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십분의 십이 다 주님의 것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억지와 두려움이 아니라, 기꺼움과 감사함으로 드리게 하소서.
그리고 남은 아홉도 청지기의 마음으로 사용하게 하소서.
십자가로 맘몬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