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목소리를 듣다, 말씀을 놓치다! * 말씀: 창세기 16장 1-2절 성경은 때로 죄를 '손'보다 '귀'로 묘사한다. 무엇을 했는가만이 아니라,

ree610 2026. 1. 15. 07:44

목소리를 듣다, 말씀을 놓치다!
* 말씀: 창세기 16장 1-2절

성경은 때로 죄를 '손'보다 '귀'로 묘사한다. 무엇을 했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최종적으로 들었는가가 인간을 규정한다. 창세기 이야기(아담과 아브람)는 그 사실을 놀라울 만큼 동일한 문장으로 알려준다.

"네(아담)가 네 아내(하와)의 목소리(qol)를 듣고…"(창 3:17).
"아브람이 사래의 말(목소리:qol) 들으니라"(창 16:2).

여기서 '듣다'는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그 말에 내 삶의 키를 맡기는 복종에 가깝다. 창세기는 두 번의 "그 목소리를 들으니라"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미루고 다른 음성을 최종 규범으로 삼았는지 고발한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라의 말을 들으니라.”(창 16:2)

1. 아내의 말을 들으면 위험한가?

오늘 말씀을 "믿음 없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 망한다"로 단순화하면 본문을 오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후에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을 들으라"(창 21:12)고 직접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방이 아니라, 관계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는 순간이다.
약속의 지연이 불안을 낳을 때 그 불안은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목소리를 마치 하나님처럼 신성시한다. 죄는 종종 먼 곳에서 오지 않는다. 가까운 곳, 익숙한 말투, 현실적인 논리를 타고 온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2. 탄식이 불안에 머물고 기도로 나아가지 못할 때

사래는 남편 아브람에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막으셨으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창 16:1-2) 이 고백은 가슴 아픈 탄식이었다. 하지만 탄식이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면 추측으로 변질된다. 하나님이 늦으시니 내가 방법을 만들겠다고 앞서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약속은 '기다림'이 아니라 '조작'의 대상이 된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 조작이 대개 약자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여기서 여종 하갈은 인격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으로 호출된다. 불안은 미래를 통제하려고 사람을 도구화한다. 반면 믿음은 사람을 도구가 아니라 인격으로 본다. 성과와 결과를 앞당기려는 조급함이 누군가의 삶을 소모재 비용으로 처리해 버린다.

3.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성경의 서사는 ‘나는 그저 들었을 뿐’이라는 수동적인 변명을 면죄부로 허락하지 않는다. 에덴에서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부르시고 꾸중하신 이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자가 그 말씀을 망각한 책임에 대한 고발이다. 창 16장에서도 아브람은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사래의 말을 듣고 그것을 자기 삶의 결론으로 삼았다. 영적 리더십은 주변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독단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목소리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지 않는 분별력에서 나온다.

아브람은 사래의 목소리에 굴복하여 약속을 훼손했다. 하지만 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매혹적인 목소리를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아브람은 하갈을 ‘비용’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우리 죄의 값비싼 ‘비용’이 되셨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귀를 고치신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 우리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엄중하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를 최종으로 듣고 있는가?" 관계의 압력인가, 불안의 논리인가, 아니면 신실하신 약속의 하나님인가? 우리의 귀가 바뀌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뀐다. 사람의 목소리에 매몰되어 정작 따라가야 할 생명을 말씀을 놓치는 어리석음에 놓여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약속의 자리로 초청하신다. 경청의 하나님께서 경청의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고 계신다.

** 기도문

경청의 하나님,
우리 귀가 세상의 불안에는 민감해지고 주님의 말씀에는 둔감해졌음을 고백합니다.
가까운 이들의 목소리를 핑계 삼아 책임을 미루고, 주님의 약속을 망각했습니다.

우리 안의 조급함을 다스려 주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최종 권위로 모시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귀와 새 길을 열어주소서.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우선하는 경청의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