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탄식, 사랑 때문에
* 말씀: 창세기 6장 5-6절
세상 만물을 향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축복하시던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창세기 6장에 이르면 그분의 음성은 깊은 탄식으로 바뀐다.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하나님은 ‘마음에 근심’하며 ‘한탄’하셨다. 언뜻 창조의 실패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탄식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철저하고 인격적인지를 드러내는 사랑의 선언문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1. 무감각을 이기는 신적 파토스
우리는 흔히 신의 전능함을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요동함이 없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로 인해 마음이 베이고 아파하시는 분이다. ‘한탄하다’는 단순히 계획을 바꾸는 후회가 아니라, 깊은 신음을 동반한 슬픔을 뜻한다. 하나님의 파토스다. 하나님은 세상의 고통에 무감각한 관찰자가 아니다. 피조물의 비극에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연관시키는 분이시다. 여기서 하나님의 탄식은 악을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함’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대상의 배신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그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시는 ‘사랑의 능력’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탄식하지 않는다. 탄식은 사랑의 깊이가 닿은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그 탄식도 깊다.
2. 골칫덩이 인간을 근심하시는 창조주의 마음
인간 마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고발한다(5절). ‘모든’, ‘항상’이라는 총체적 표현을 사용함으로, 인간의 방향성 자체가 철저히 왜곡되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선한 것을 빚어내야 할 인간의 계획이 악을 제조하는 공장처럼 변질되었다. 이때 하나님은 격렬한 ‘근심’에 빠지셨다. 이 단어는 산통과 같은 극심한 통증을 의미한다. 여기에 분명한 진리가 있다. 고통당할 수 없는 존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탄식은 인간의 악함에 대한 단순한 반응을 넘어선다. 그분의 형상이 파괴된 것에 대한 창조적 애도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휘두르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심장이 먼저 베이는 고통을 겪으셨다. 이 고통은 타락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동시에 상처 입은 사랑만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선포이기도 하다.
3. 탄식의 마침표:
십자가에서 완성된 ‘상처 입은 치유자’
하나님의 탄식은 구약의 노아 시대를 지나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난다. 십자가는 인간이 하나님께 입힌 가장 깊은 상처인 동시에, 하나님이 그 상처를 구원의 능력으로 바꾸신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탄식을 육신으로 입고 오셔서, 우리 대신 비탄에 잠기시고 버림받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과 땀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능동적인 수난이었다. 하나님의 탄식이 능력이 되는 이유는 그 탄식이 멈추지 않고 인간의 고통 곁으로 다가와 함께 아파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고통은 무능함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이다. 그 사랑의 능력 때문에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은혜의 자리에 이렇게 서 있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우리는 때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이런 악한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신 듯하다. '너의 고통과 슬픔에 내가 이토록 아파하고 있는데, 너는 나의 탄식이 들리느냐?'라고 말이다. 오늘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이 아픈 사랑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어디일까? 하나님의 탄식을 듣는 자리에서 우리의 회개가 시작되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파송된다.
** 기도문
사랑과 고통의 신비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보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우리의 거짓과 죄악을 회개합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이 땅 고통의 한 복판에서 우리와 함께 신음하시는 동반자이십니다.
이제 우리도 세상의 깨어진 곳을 향해 주님의 탄식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