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창조주, 그 외 모든 것은 피조물!
* 말씀: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는 단순한 연대기적 출발점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던 영원의 심연에서 시간이라는 새 차원이 열리는 사건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종종 시간의 흐름 속에 가두어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시간 자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을 '만드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나 오직 그분만이 시작이 없으시다.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를 향해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이 엄중한 경계 긋기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 우리 존재를 의지해야 한다는 거룩한 겸손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동시에 피조물(돈, 권력, 자연, 자아 등)을 신격화하는 모든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1. 창조하다(Bara): 하나님의 고유한 행위
‘창조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바라(bara)'는 성경에서 아주 특별하다. 그 주어가 오직 하나님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성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배치하고 변형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세기 1장의 창조는 더 근원적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존재를 불러내신 '절대적 창조'이다. "빛이 있으라"는 말씀 한마디에 우주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단지 우연이 아니라 창조주의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강력한 선언이다.
'하늘과 땅'은 우주의 전 영역을 상징한다. 은하계의 거대함부터 미생물의 미세함까지, 가시적인 물질계부터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까지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단호하게 배제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연장선상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온 우주를 품고 계시지만, 결코 우주의 일부가 아니다.
이 구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붙잡던 작은 신들, 곧 돈, 성취, 인기, 욕망 등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피조물을 사랑하되 숭배하지 않게 하고, 피조물을 돌보되 절대화하지 않게 하신다.
2.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다
시편 기자는 외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피조물은 창조주가 아니지만, 창조주를 증언한다. 하늘은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말없이 선포한다. 이 세계는 창조주의 지문이 선명하게 새겨진 거룩한 증언의 장이다.
신앙과 과학이 서로를 보완하며 같은 창조주를 증언하게 된다. 과학은 창조세계의 문법을 해독한다. 신앙은 그 문법이 누구의 언어인지를 고백한다. 과학이 우주의 팽창과 입자의 신비를 증명할 때, 신앙은 그 정교한 메커니즘 뒤에 숨겨진 창조주의 지혜를 보며 찬탄한다. 신앙은 시편 기자와 함께 찬양한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사람이 무엇이기에”(시 8:3-4).
자연 질서에 감탄하되, 그 질서를 숭배하지 않는다. 모든 피조물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 경이로운 질서 속에서, 인간은 창조주의 마음을 읽어내는 우주의 목격자로 서게 된다.
3. 이 모든 창조의 드라마는 '말씀(Logos)'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요한은 창세기 1장을 메아리치듯 선포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 1:1-3).
창조의 대리자이셨던 그리스도가 친히 '피조물' 속으로 들어오신 성육신 사건은, 창조주가 피조물을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이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존재하며, 그분 안에서 '함께 섰다'(골 1:16-17)고 선포한다. 우주는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로부터 존재의 힘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므로 창 1:1의 창조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2026년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다시 확인해 본다. 우리가 피조물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가장 인간답고 자유로워진다. 피조물의 한계는 절망이 아니라 은혜의 자리이다. 왜냐하면 그 경계선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붙드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에서 시작해서 구원을 거쳐 완성을 향해 나가는 하나님의 거대한 서사 한가운데 서 있다. 2026년을 다시 힘있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 기도문
창조의 하나님,
시간과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 앞에 섭니다.
나 자신 피조물임을 망각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를 다시 세우게 하시고,
돈과 권력과 자연과 자아를 신격화하는 우상숭배에서 해방시키소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026년 올 한 해도 우리 한복판으로 오셔서
그 사랑으로 우리 삶을 새롭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