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과 진리의 충돌” – 십자가의 명패
* 말씀: 요한복음 19장 19-20절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쓴 명패는 아주 뚜렸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INRI -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은 로마 제국과 하나님 나라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적 권력과 신앙적 진리의 대결이다. 십자가 위에 게시된 이 명패는 범죄자의 죄목을 알리는 죄패였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가장 역설적인 복음 선포였다. 골고다 언덕에서 2000년 교회사의 핵심 질문이 울려퍼진다. 누가 진정한 왕인가?
1. 십자가 명패의 정치학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이 반역자를 처리하는 가장 공개적이고 잔인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형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였다: "로마에 대항하는 자는 이렇게 된다." 빌라도가 명패를 쓴 일차적 동기는 명백하다. 유대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복수였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라고 외친 그들을 향해, 빌라도는 조롱 섞인 메시지를 던진다: "보라, 너희 왕이 십자가에 달렸다!"
그러나 빌라도 자신도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세 번이나 선언했다(요 18:38, 19:4,6). 그는 진리를 알았다. 그러나 정치적 두려움이 도덕적 용기를 압도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요 19:12)라는 협박 앞에서, 빌라도는 무릎을 꿇었다. 권력을 지키려다 진리를 팽개친 역사 속에서 비겁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요한복음의 신학적인 역설이 드러난다. 빌라도가 조롱으로 쓴 명패가 가장 정확한 복음 선포가 되었다. 로마의 정치적 처형 도구였던 십자가를 하나님은 구원의 도구로 역전시키셨다.
2. 삼중 언어: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요 19:20)
삼중 언어 명패는 당시 세계를 향한 복음 선포의 표지였다.
히브리어는 종교적 권위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 종교가 얼마나 부패했는가! 대제사장들이 "가이사가 우리 왕이니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종교는 정치의 시녀가 되었다. 그러나 명패는 선포한다. 나사렛 예수가 참된 왕이시다.
헬라어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상징한다. 헬라 문화는 보편성을 주장했고, 철학과 지혜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헬라 지혜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는 어리석음의 극치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이 모든 인간 지혜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지혜임을 선언한다(고전 1:18-25). 복음은 헬라 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품으며 초월한다.
라틴어는 정치적 패권의 언어다. 로마 제국의 공식어이며, 법과 질서의 언어였다. 그러나 골고다의 십자가는 처형 도구가 왕좌가 되는 순간, 제국의 논리는 전복된다. 이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를 선포하는 상징이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는 당대의 종교, 문화, 정치의 삼중 상징 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예언적 표징이다.
3. 오늘의 십자가 정치학
오늘날 교회는 엄청난 유혹에 직면해 있다. 권력에 야합하는 종교의 유혹이다. 어떤 교회는 정치 권력과 결탁한다. 때로는 문화적 트렌드에 영합하여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한다. 또는 경제적 논리로 번영신학만을 향해 마구 달린다. 이 모두가 현대판 빌라도의 길이다.
십자가는 저항의 상징이다. 그러나 폭력의 저항이 아니라 사랑의 저항이다. 불의한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되, 증오가 아닌 십자가의 방식으로 맞선다. 빌라도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책임 회피의 ‘손 씻기’가 아닌 묵묵히 ‘십자가 지기’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복음적 당위성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교회는 당파적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십자가의 길, 그것은 모든 권력을 상대화하면서도 모든 인간을 품는 사랑의 길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골고다 언덕, 빌라도가 쓴 명패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것은 조롱이었으나 복음 선포가 되었다. 수치였으나 영광이 되었다. 죽음이었으나 생명이 되었다. 권력과 진리가 충돌한 그 자리에서 십자가라는 가장 역설적인 방식으로 승리한다.
우리는 매일 빌라도의 선택 앞에 선다. 진리를 알면서도 권력을, 편안함을, 세상의 인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를 질 것인가? 명패는 여전히 묻는다: 누가 너의 왕인가? 우리의 대답이 우리의 신앙이고, 우리의 삶이다.
"내가 쓸 것을 썼다"(요 19:22)고 한 빌라도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으로 신앙 고백을 쓴다. 그 고백이 세상의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화가 복으로 바뀌는 십자가의 신비가, 오늘 우리 삶에서도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 기도문
진리이신 예수님,
우리 안에도 비겁한 빌라도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권력을 택하고,
옳은 것을 보면서도 두려움에 굴복합니다.
우리 삶으로 신앙고백을 새롭게 쓰게 하소서.
매일 매 순간 주님을 향한 결단과 선택을 하며,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다”라고 기록하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