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리!", 하나님의 새로운 문법
* 말씀: 요한복음 7장 52절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이 말은 정보가 아니라 판결이다. 질문이 아니라 단정이며, 탐구가 아니라 배제다.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들은 묻지 않는다. "그가 누구인가?"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갈릴리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이 낙인을 찍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바로 '성경'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을 찾아 보라." 이 말은 진리를 향한 초대가 아니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는 언어다. 성경은 여기서 진리를 여는 열쇠가 아니라, 질문을 봉쇄하는 자물쇠가 되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 7:52)
1. 변방의 지리학
주후 1세기 갈릴리는 로마제국과 헤롯 안티파스의 이중 수탈 아래 놓인 농민 지역이었다. 예루살렘 엘리트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은 토라 준수조차 의심받는 땅이었다. 그들에게 갈릴리는 신학적으로 불결한 공간이었다. 당시 예루살렘 중심 엘리트들에게 갈릴리는 무시당하는 땅, '이방의 갈릴리'(사 9:1)였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어디서 왔는가'로 판단했다. 하지만 복음은 '누구에게서 왔는가'를 묻는다.
하나님은 늘 중심을 비켜 일하셨다. 막내 다윗, 유랑자 아브라함, 포로된 이스라엘, 이름 없는 선지자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그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고, 예루살렘에서 배척당하셨으며, 성문 밖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갈릴리는 단지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드러내는 자리다. 하나님께서 변방이라고 낙인찍힌 자리에서 곧 아무 것도 아닌 곳에서 새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2. 성경을 들고 하나님을 거절하다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성경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으로 하나님을 거절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지만, 성경이 증언하는 분은 보지 못했다. 지식은 있었으되 지혜는 없었고, 열심은 있었으되 분별력은 결여되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성경'과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가? 학벌, 출신, 언어, 배경을 기준 삼아 우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이 처음 부르신 사람들은 학식 없는 어부들, 매국노 세리, 정치 종교적 변방인들이었다. 그들은 중심 세력의 기준으로 보면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3. 십자가 신학과 변방의 문법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영광의 신학"에 대항해서 "십자가의 신학"을 외쳤다. 영광의 신학은 하나님을 영광과 성공의 중심에서 찾지만,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을 낮아짐과 고난의 자리에서 만난다. 갈릴리는 바로 이 십자가 신학의 출발점이다.
예수님은 중심에서 환영받는 왕이 아니라, 구유에 누인 어린 아기로 오셨다. 성문 밖에서 처형당한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 살다 가셨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포로된 사람들에게, 병든 사람들에게, 억눌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눅 4:18-19).
이것이 복음의 방식이다. 낮아짐으로 시작하고, 배척 속에서 드러나며,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는 문법이다. 당대의 바리새인들은 갈릴리를 거부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다시 만난 곳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였다. 중심이 아니라 변방,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자리, 그곳에서 새로운 구원의 복음이 시작되었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갈릴리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문법이다.
낮아짐으로 시작하고, 배척 속에서 드러나며,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는 구원의 문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어느 갈릴리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는가?
쉽게 지나쳐 온 그 갈릴리에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는 않는가?
** 기도문
변방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중심의 안전함을 붙잡느라
갈릴리를 쉽게 변두리로 낙인찍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외면한 그곳에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낮고 작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갈릴리의 복음처럼
우리도 그 하나님 나라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