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을 붙들고, 예수님을 놓치다!”
* 말씀: 요한복음 5장 39-40절
종교개혁자 루터는 단호하게 말한다. 구약은 결코 폐기될 수 없다고. 그 이유는 그 안에 이미 그리스도가 누워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1523년 『구약성서 서문』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여기서(구약) 당신은 그리스도가 누워 있는 강보와 구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강보는 비록 허름하고 보잘것없으나, 그 안에 누워 계신 보화, 곧 그리스도는 존귀하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향한 이유는 구유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구유 안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이 이야기는 성경 읽기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성경은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니다. 그리스도를 담은 자리다. 문제는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문 채 만족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계신 분께로는 나아가지 않는 데 있다.
1. 성경을 연구하지만, 예수님께 나아오지는 않는다
성경을 읽는 일이 언제나 우리를 예수님께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성경을 사랑하고 연구한다고 자부하던 당대의 종교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이 말씀은 성경 연구 자체를 꾸짖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 앞에 서 있던 이들은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던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연구의 방향이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그 성경이 증언하는 분께로는 기꺼이 오지 않는 역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깊은 탄식이다.
2. 연구는 길이 아니라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연구의 대상이지만, 그 목적은 증언이며, 그 증언의 종착지는 예수님께 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했지만, 그 연구는 자기 확신과 종교적 안전을 강화하는 데서 멈추었다. 이것이 모든 신학 연구가 지닌 위험성이기도 하다. 언어, 역사, 교리적 분석은 풍성하지만, 그 한가운데에 예수님이 부재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학문적 전문성은 깊어졌으나, 그 전문성이 오히려 예수님을 만남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이때 성경은 연구자 자신을 지키는 도구가 되고, 자기 세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멈춘다.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에게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통제하고 타인을 정죄하는 무기가 되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하나의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자기 실존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만남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지식의 성벽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이다.
3. 영생은 책 속이 아니라, 한 분 예수님 안에 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영생은 언제나 예수님 자신과 연결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요 3:36),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정보를 소유하는 상태가 아니라, 인격적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사건이다. 그래서 ‘오지 않음’은 무능이 아니라 거부다. 예수님께 온다는 것은 자기 통제의 포기이며, 자기 의의 해체이고, 자기 이미지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말한다. "너는 스스로 설 수 없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품는다." 예수님께 오는 길은 자격의 길이 아니라 은혜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성령의 역사 안에서 열린다. 성령은 말씀을 단순한 분석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만남의 사건으로 바꾼다. 그때 성경 연구는 자기 완성과 자랑을 향한 작업이 아니라, 영생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향한 거룩한 순례가 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신학은 상아탑의 학문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갖고 씨름하며 기도하는 '무릎의 학문'이다. 책상 위에서의 씨름이 끝나는 지점이, 바로 주님 발 앞에 엎드려야 할 시작점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서재에 파묻힌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그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보라. 내가 바로 그 책이 말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성경 연구의 목적은 얼마나 많이 아는가에 대한 만족감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는 경탄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성경 연구가 살아계신 주님의 숨결을 느끼는 복된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성경 연구에서 출발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 사랑하기까지, 그것은 평생을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이다.
** 기도문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성경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우리 마음을 열어 ‘오라’하시는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지식이 신뢰로, 신뢰가 순종의 걸음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며 동행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