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믿고 아는가? 알고 믿는가?” - 지혜 인식론 - * 말씀: 요한복음 6장 69절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열광하던 무리와 제자들이...

ree610 2025. 12. 16. 07:06

“믿고 아는가? 알고 믿는가?”
- 지혜 인식론 -
* 말씀: 요한복음 6장 69절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열광하던 무리와 많은 제자들이 흩어졌다. 그들이 원한 것은 배불리 먹을 '떡'이었지, 마음을 뒤흔드는 '생명의 진리'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어려웠기'(거북했기) 때문이다(요 6:60). 예수님은 남아 있는 열두 제자에게 묻는다.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베드로가 대답한다. 그의 고백은 아주 단호하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이 짧은 고백 속에 신앙의 가장 깊은 비밀이 숨어 있다.

1. 홀로 있을 때도 당당한 신앙고백

제자들은 지금 무엇을 느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따를 때는 쉬웠다. 그러나 모두가 등을 돌릴 때, 홀로 남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만 이상한 건 아닐까?" 우리는 홀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틀릴까, 손해볼까, 외로울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 순간 '용기 있는 홀로 있음'을 선택한다. 모두가 ‘No’라고 외칠 때, 말씀 앞에서 ‘Yes’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베드로를 ‘군중이 아닌 제자’로 만든다. 진리는 단순히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의 결단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2. 믿고 아는가? 알고 믿는가?

베드로의 고백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부분이다. .
"우리가...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9)
순서를 주목하면 믿음이 먼저이고, 앎은 그 다음이다. 우리는 보통 "충분히 이해되면, 그때 믿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순서를 뒤집는다. "먼저 신뢰했기에,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비슷한 신앙의 딜렘마를 토로한다. 믿음을 먼저 말하면 ‘잘못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두려움이 생기고, 이해를 먼저 말하면 ‘무한하신 하나님을 내가 언제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가?’라는 한계에 부딪친다. 하지만 그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관찰 대상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을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격은 신뢰 없이는 결코 알 수 없다. 교회 전통은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안젤무스)고 말해 왔다. 이것은 맹목적 믿음이 아니다. 인격을 신뢰할 때 비로소 열리는 인식의 길이다. 바로 지혜 인식론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그렇다. 신뢰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의심의 눈으로 누군가를 해부하면, 그 사람을 영원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신뢰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보게 된다. 인격적인 앎은 ”믿고 알며, 또 알기에 더 믿는“ 과정을 반복한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3.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베드로가 깨달은 예수님은 누구인가? 군중이 원한 '떡을 주는 왕'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라고 부른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속한 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신중한 고백이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의 본질을 고백하고 있다. 이 고백은 안전한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민중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는 고독의 자리에서 나온 소중한 고백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무엇이라 부르는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분, 마음의 평안을주는 분, 성공과 축복을 보장하는 분.
물론 이런 고백 자체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는 군중과 다를 바가 없다. 축복을 주실 때는 아멘하다가, 이런 축복이 멈추면 가차 없이 떠나고 만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할 마음이 있는가? 신뢰가 이해의 문을 연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더 깊은 앎으로 가는 관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기도도 필요하다. "주님,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믿으면 더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더 믿게 된다.“
이 인식론적 지혜를 오늘도 경험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기를 기도한다.

** 기도문

거룩하신 예수님,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아직 흔들립니다. 도와 주소서.

완벽한 확신이 아니더라도,
흔들리면서 신뢰를 터득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제 우리에게 믿음으로 주님을 더 알게 하시고,
주님을 앎으로 더욱 주님을 신뢰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