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바 버스
- 최성수
시내를 벗어나자 안내방송조차 없었다.
횡성을 거쳐 안홍, 계촌, 물골로 가는 버스 안에는
여나믄 촌노들이 무뚝뚝한 겨울나무처럼 앉아 있었다.
자꾸만 땅으로 가자앉는 어둑발초자 막막한 길
뒷자리에 혼자 앉은 사내는 누군가와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연신 ‘씨바’를 섞는 그의 말은
분노보다 체념에 가까웠다.
읇어씨바
일년내내 세빠지게 농사져봐야빈털터리여 씨바
논두렁에 심근쥐눈이콩두쭉쟁이여씨바
아씨바전수망쳤다니까거데비할게하나두읎어씨바
원주씨바허긴병원갔다오지씨바
미간에 꺽쇠 표시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의
눈빛은 쥐눈이콩처럼 검고 맑았다.
씨바 소리는 자꾸 어스름에 묻혀가고
급할 것도 없다는 듯 버스는
이 마을에서 서고 저 마을에 쉬며
바람만 가득 싣고 천천히 움직였다.
창밖으로 제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허깨비처럼 서서 한겨울보다 추운 바람을 맞고 있었다.
돌투바니를 지나자 서너 사람마저 다 내리고
버스 안에는 졸고 있는 씨바 사내와 나만 남았다.
세상 모든 것들을 다 삼켜버릴 것처럼
막막한 어둠이 버스 안으로 쳐들어왔다.
쥐눈이콩조차 거둘 것이 없다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사내는 가끔 잠꼬대를 하고
나는 그만 내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조차 잊고 말았다.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시골 버스 안
우리는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차 창 밖 어둠 속 멀리 씨바 사내와 나만 버려져 있었다.
씨바, 첫 눈이라도 모질게 퍼부을 것 같은 날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