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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0월,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도형이 창간한 월간지 ‘한국논단’은 ‘대선후보 사상검증 토론회’를 열고 김대중을 불러 토론하면서..

ree610 2025. 9. 25. 18:36

1997년 10월, 조선일보 논설위원 출신 이도형이 창간한 월간지 ‘한국논단’은 ‘대선후보 사상검증 토론회’를 열고 김대중을 불러 토론하면서 참여연대, 경실련, 정의구현사제단 등을 ‘친북단체’로 매도했습니다. 김대중을 ‘친북’ 또는 ‘친북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로 몰기 위한 정치공작이었습니다.

1998년 10월, 조선일보는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의 논문 일부를 왜곡하여 그를 ‘친북학자’로 매도했습니다. 역시 김대중 정부를 ‘친북정권’으로 몰기 위한 정치공작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시민사회는 히틀러의 게쉬타포나 스탈린의 KGB처럼 ‘사상 보안관’ 노릇을 하려 드는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 안 보기 운동, 조선일보에 광고하는 회사 제품 불매운동, 조선일보 인터뷰와 기고 거부 운동 등이 벌어졌는데, 그 와중에 김어준이라는 젊은이가 조선일보에 딴지 거는 ‘딴지일보’라는 인터넷 신문을 창간했습니다. 그는 ‘똥꼬 깊수키’라는 사시(社是)를 내걸고 ‘총수’를 자칭하며 조선일보를 꺾겠다고 선언했지만, 당시에는 ‘가소로운 일’조차 되지 못 했습니다. 나우누리 게시판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저도 참신과 황당, 발랄과 유치의 경계선상에 있는 한 젊은이의 객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조선일보와 사실상 합체하여 ‘조중동’이 되었고, 이들은 이명박의 도움으로 종편까지 장악했습니다. 그 사이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 대다수는 조중동 기사를 베껴 쓰고, 조중동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며, 기회만 되면 조중동으로 이직하려 합니다. 1998년 당시 안티조선 운동의 선두에 섰던 사람 일부는 지금 조선일보 기고자나 TV조선 방송 진행자가 되어 있습니다. 안티조선 운동의 초심을 지키는 사람은 김어준 외에 ‘개인적으로 소심하게 실천하는’ 사람들 정도만 남았을 뿐입니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어준은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언론비평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는 조중동 등 주류 언론이 숨기는 사실들을 찾아 들춰냈고, 왜곡하는 사실들을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처음부터 ‘조선일보에 딴지 거는’ 걸 목표로 했기에, 그의 ‘말’들은 조선일보의 ‘편파성’과 대척점에 놓였습니다. 그가 보이는 '편파성'은, 조중동과 그 아류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편파의 세계' 중 극히 일부를 반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침몰 직전에 있는 배를 바로 세우려면, 반대쪽에 무게를 실어줘야 합니다. 김어준은 한 번도 자기가 ‘균형 잡힌 언론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편파적’이라고 인정합니다. 언론지형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상태에서는, ‘균형 잡힌 언론’보다 ‘균형 잡는 언론’이 더 소중합니다. 이른바 ‘진보언론’들조차 ‘안티(ANTI) 조선’이 아니라 ‘낫(NOT) 조선’에 만족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극우세력이 급증하고 준동하는 이유 중 하나도, 조중동이 ‘주류 언론’의 지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어준과 그 팬덤들 때문에 한국 사회의 언론지형이 왜곡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심하게 기운 배의 ‘기계적 중심’에 서서 자기 덕에 배가 균형을 잡는다고 자랑하는 멍청이들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도, 반대편으로 옮겨가 진짜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학자 전우용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