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불균형을 정당화하는 조선일보의 개소리에 대한 통렬한 반박….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호남반도체투자에 대하여]
- 장하석 (런던대학교 교수)
산업인프라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후공정을 넘어 전공정 팹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투자 규모는 향후 5~6년간 수백조 원, 10년 기준으로는 1,000조 원을 웃도는 국내 최대 규모다. 팹 1기 건설에만 30조 원에서 60조 원이 들어가고 최대 5기까지 들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자 야당과 일부 보수언론, 그리고 증권시장 일각의 관계자들이 일제히 반대논리를 펴고 나섰다. 전력이 모자라고, 용수가 부족하며, 인력을 끌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야당 인사는 태양광이 해가 지면 멈추고 구름이 끼면 발전을 못 하는데 최신 팹은 100분의 1초의 정전도 견디지 못한다고 지적했고, 영산강 유역은 지금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가 빠듯하다고 주장했다. 이 비판들은 겉으로는 냉정한 현실론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공통된 전제가 깔려 있다. 인프라란 그 땅에 이미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주어진 조건'이며, 그것이 없는 곳에는 산업도 없다는 전제다. 바로 이 전제가 틀렸다. 산업입지의 역사가, 마추카토가 정립한 국가의 본질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세계 주요국이 벌이고 있는 반도체 쟁탈전의 숫자들이 그 전제를 통째로 반증한다. 인프라는 입지를 결정하는 상수가 아니라, 국가가 전략적으로 입지를 정한 뒤에 뒤따라 만들어내는 변수다.
반세기 전 영일만의 숫자가 말하는 것
비판의 성격부터 정확히 규정해보면, 그것은 기업이 알아서 따질 문제를 정치가 압박한다는 관치론과, 반도체 같은 첨단 제조는 모든 여건이 완비된 곳에만 들어설 수 있다는 입지결정론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이 사고방식이 한국 산업사의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를 보면, 그것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어 온 회의론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말, IBRD의 한국 담당이던 영국인 자페는 종합제철소 계획을 두고 경제성이 없다고 단언했고, 대한국제제철차관마저 무산되었다. 모래바람만 날리던 영일만은 누가 보아도 일관제철소가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다. 당시의 입지결정론은 명백히 그곳을 부적격지로 판정했다. 그러나 국가는 대일청구권 자금 1억 3,000만 달러를 전용해 1970년 4월 착공에 들어갔고, 1973년 7월 그 황량한 모래밭 위에 조강 연산 103만 톤의 일관제철소를 세웠다. 그것은 한국 중화학공업의 척추가 되었다. 비단 포항만이 아니었다. 1974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으로 지정된 창원·여천·온산·옥포·구미는 국가기록원의 기록이 증언하듯 하나같이 한가한 어촌이거나 이름조차 생소한 농촌이었다. 인프라가 있어서 산업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산업을 들이기로 결정한 뒤 인프라를 만들어 넣은 것이다. 1970년에 제정된 지방공업개발법은 개발지구를 지정하면 정부와 시·도가 용지 정리와 진입도로와 용수를 지원하도록 국가의 의무로 못 박았다. 경부고속도로 역시 1968년부터 1970년까지 경제성이 없다는 비판 속에 강행되었다. 다시 말해 한국 산업화의 출발점에서 산업입지는 시장이 고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전략으로 정하고 인프라로 떠받친 것이었다.
오늘날 호남을 향해 던져지는 "전력도 용수도 인력도 없는 곳에 무슨 반도체냐"는 물음은, 반세기 전 영일만을 향해 던져졌던 "기술도 자본도 시장도 없는 곳에 무슨 제철이냐"는 물음과 문장 구조가 똑같다. 그때 그 회의론이 옳았다면 한국에 포항제철은 없었을 것이고, 그 위에 올라선 조선도 자동차도 전자도, 나아가 그 전자산업의 후예인 오늘의 반도체 강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기업가형 국가론
이 비판의 전제를 이론적 차원에서 해체해 주는 것이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기업가형 국가론이다. 그의 통찰은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흔히 사람들은 혁신과 가치 창조는 민간기업이 담당하고 국가는 그저 시장이 실패한 자리를 메우거나 규제로 훼방을 놓는 존재라고 여긴다. 마추카토는 이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누구도 수익을 장담할 수 없어 민간자본이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위험한 영역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이는 행위자는 역사적으로 국가였다는 것이다. 그가 즐겨 드는 사례에서, 오늘날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들, 곧 인터넷의 골격과 위성항법과 음성인식과 손끝으로 화면을 다루는 기술의 뿌리는 모두 국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간 자금을 댄 공공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민간기업은 그렇게 국가가 개척하고 위험을 흡수해 놓은 토대 위에서 비로소 상업화에 나섰다.
마추카토의 논점은 단순히 국가가 돈을 댔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국가가 시장의 실패를 사후에 교정하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시장이 갈 방향 자체를 능동적으로 형성하고 새로운 영역을 열어젖히는 적극적 창조자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남 반도체 투자를 둘러싼 논쟁의 구도 자체가 다시 그려진다. "기업이 알아서 따질 일을 국가가 왜 끌고 가느냐"는 비판은, 국가를 기껏해야 길을 비켜주거나 방해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 가두는 낡은 시각에 갇혀 있다.오늘날 미국과중국을 보아도 그것을 그야말로 낡은 시각이다. 팹 1기에만 미들팹이 30조 원에서 메가팹이 60조 원, 클러스터 전체로 1,0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본과 장기간의 회임기간과 막대한 불확실성을 동반하는 이 사업에서, 전력망과 용수 인프라와 인력양성 생태계라는 거대한 토대를 깔아주는 일은 어떤 단일 기업도 홀로 감당할 수 없다. 바로 그 토대를 책임지고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마추카토가 말한 기업가형 국가의 본령이다. 인프라가 없으니 안 된다는 비판은, 사실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다만 마추카토의 이론은 호남 투자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국가가 위험을 떠안아 가치를 창조했다면 그 결실 또한 사회가 정당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은 사회가 지고 이익은 소수가 사유화하는 구조를 그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것은 증권업계일각의 지나친 주주자본주의적 시각에대한 비판이기도하다. 이 통찰을 호남에 적용하면, 국가가 막대한 재정으로 전력과 용수와 인재의 토대를 깔아 기업을 유치한다면 그 과실은 기업의 이윤과 수도권 자본의 배당으로만 흘러가서는 안 되며, 호남의 양질의 일자리와 산업생태계와 균형발전이라는 공공의 가치로 환류되어야 한다. 호남 투자는 시혜도 특혜도 아니라, 국가가 떠안은 위험의 과실을 어떻게 온 사회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마추카토적 질문에 대한 정면 응답이어야 한다.
AI 군비경쟁의 숫자, 그리고 고태봉의 무인화 혁명론
이 논쟁을 한낱 지역개발 사업의 입지 다툼으로 축소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시대의 좌표를 가리키는 숫자들이 그만큼 비상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을 둘러싼 사실상의 군비경쟁에 빨려 들어가고 있고, 그 경쟁의 가장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떠받치는 하드웨어 인프라가 반도체다.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네 곳의 올해 설비투자 규모만 약 1,100조 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5배에 달하며 전년보다 80% 늘어난 수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4년 415테라와트시, 곧 전 세계 전력의 1.5%에서 2030년 약 945테라와트시로 두 배 이상 불어나 일본 전체 전력 소비를 넘어서며, AI 가속 서버 전력은 해마다 30%씩 증가한다. 같은 기관의 최신 갱신본은 데이터센터 전력이 2025년 485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950테라와트시로 두 배가 되고, AI에 집중된 데이터센터 전력은 같은 기간 세 배로 뛴다고 내다본다.
반도체 수요의 숫자는 더 가파르다. 가트너는 AI 반도체 매출이 2028년 1,980억 달러에 이르며 5년간 연평균 30% 성장한다고 보았고, GPU와 AI 가속기 시장은 2024년 800억 달러에서 2029년 2,800억 달러를 넘어선다고 전망했다. AMD는 데이터센터 AI 시장 규모를 2030년 1조 달러 이상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직전에 내놓았던 2028년 5,000억 달러 목표의 두 배다. 메모리 시장 자체가 슈퍼사이클에 들어섰다. 2024년 1,650억 달러였던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2025년 약 2,250억 달러로 커졌고, 트렌드포스는 2026년 약 5,516억 달러로 D램 매출이 전년 대비 144% 뛰며 2027년에는 8,427억 달러에 이른다고 본다.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은 2022년 27억 달러에서 2029년 377억 달러로 연평균 46% 성장하고, 마이크론은 HBM 매출 1,000억 달러 돌파 시점을 2030년에서 2028년으로 앞당겼다. 이 거대한 흐름의 한복판에 한국의 두 기업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합산 점유율은 80%에 이르고, 2026년 1분기 D램 점유율은 삼성 38%, SK 29%, 마이크론 22%이며, HBM은 SK하이닉스가 58%로 압도적 1위, 낸드는 삼성이 29%로 1위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산업재가 아니라 '21세기의 석유'로 불리는 전략 자산이며,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다툼에서 가장 결정적인 길목이다.
이 시대의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짚어낸 것이 IM증권 리서치를 이끄는 고태봉 센터장이다. 그는 인공지능을 한낱 유행하는 투자 테마로 보아서는 본질을 놓친다고 단언하며, 지금의 변화를 인류 역사에서 처음 마주하는 '무인화 혁명'에 가까운 구조적 전환이라 규정한다. 그의 비유는 인상적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두뇌 역할을 한다면 그 명령을 받아 실제로 움직이는 물리적 기계는 몸의 역할을 하며, 둘을 잇는 신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비유 속에서 거대한 연산을 담당하는 데이터센터는 대뇌에, 고속으로 기억을 다루는 고대역폭 메모리는 소뇌에 해당하고, 두뇌와 몸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이를 잇는 6G나 위성 같은 통신과 신경이 빠짐없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무인화 혁명이 완성된다. 그가 보기에 이른바 물리적 인공지능, 곧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일하는 단계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의 폭발적 수요는 거대한 파도의 첫 너울에 불과하며, 진짜 본류는 아직 당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고태봉의 진단이 호남 논쟁에 주는 함의는 결정적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한철 끓다 식을 거품이라면, 굳이 새 땅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클러스터를 깔 것 없이 기존 설비로 버티자는 비판론의 신중론이 일말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한양대 박재근 교수가 전망하듯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은 2040년에 지금의 두 배 이상이 필요하고 2030년 이후에는 AI 로봇 시대가 본격화한다면, 그리고 고태봉의 말대로 그것이 거품이 아니라 무인화라는 문명사적 전환의 초입이라면, 결론은 정반대가 된다. 생산능력의 대대적이고 신속한 증설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전제가 된다. 삼성전자 평택 5공장은 이르면 2030년, SK하이닉스 용인 공장은 2027년 가동되지만 업계는 이것으로도 부족하다고 본다. 두뇌가 비대해질수록 그것을 떠받칠 몸과 신경의 토대를 어디에 마련할 것인가가 절박해지며, 그 답을 비수도권으로 분산하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가 된다.
사막의 미국, 가뭄의 대만, 내륙의 중국에서 숫자가 증명하는 국제 표준
비판론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은 "그래도 반도체 같은 정밀산업은 여건이 완비된 곳이라야 한다"는 직관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직관을 세계 주요국이 자국의 숫자로 매일 반증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제조를 자국으로 되돌리기 위해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패키지로 묶어 기업을 유치하는데, 그 대표 무대가 사막 한가운데인 애리조나다. 애리조나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건조한 주이며 콜로라도강에 물 공급의 36%를 의존한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은 직접보조금 66억 달러와 대출 50억 달러, 세액공제 25%를 받아 당초 120억 달러였던 투자를 1,650억 달러로 키웠고, 이는 미국 역사상 그린필드 프로젝트 최대의 외국인 직접투자로 불린다. 물이 없는 사막이니 못 짓는다고 했을 자리에 국가는 보조금으로 기업을 불러들였고, 기업은 현재 65%인 물 재활용률을 90%까지 끌어올리는 산업용수 재생 플랜트를 사실상 무방류 수준으로 건설해 결핍을 기술로 메우고 있다. 또 다른 거대 종합반도체 기업 인텔은 78.6억 달러의 보조금으로 기존 클러스터가 아닌 오하이오 컬럼버스에 200억 달러 이상을 새로 투자하고,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에 440억 달러를 투자하며 64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인근 대학들과 인력양성 동맹을 맺었다. 미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건이 갖춰진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가전략이 정한 곳에 여건을 만들어 넣는다.
물이 부족하기로는 대만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세기적 가뭄이 닥치면 남부 농민들이 여러 해에 걸쳐 벼농사를 포기해야 할 만큼 물이 귀한 그 섬에서,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안보 그 자체로 여겨 물과 전기를 최우선으로 배분한다. 수도공사와 전력공사는 신규 팹에 물과 전기 부족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식 약속했고, 경제부는 여러 지역에 담수화 설비를 지어 2031년까지 연간 10억 세제곱미터의 물을 생산해 과학단지 공장에 우선 공급할 계획이다. 더 주목할 것은 분산 배치다. TSMC는 최첨단 2나노 공정을 북부 신주와 남부 가오슝에서 동시에 양산하며, 가오슝에만 1조 5,000억 대만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중부 타이중에는 차세대 1.4나노 거점을 약 490억 달러를 들여 마련한다. 물이 모자란 가뭄의 땅에서조차 국가가 물을 만들어 공급하며 산업을 북·중·남으로 펼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만보다 수자원 사정이 결코 나쁘지 않은 호남을 두고 "물이 없어 안 된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중국은 한층 더 노골적이다. 우한의 메모리 기업 YMTC에는 초기 공장에만 240억 달러의 국가자금이 투입됐고, 허페이의 D램 기업 CXMT는 지방 산업투자펀드가 80억 달러를 출자해 세웠으며, 칭화유니의 내륙 메모리 투자는 약 1,000억 달러에 달한다. 자본비용은 지방정부가 떠안고 기업은 운영에 전념하는 구조 속에서 전력과 용수 인프라를 국가가 건설해 산업을 내륙 도시에 배치한다. 미국이 사막에, 대만이 가뭄지대에, 중국이 내륙에 국가전략으로 반도체를 심는 동안, 유독 한국에서만 "여건이 완비된 수도권에만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첨단 산업정책의 이름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력의 숫자 — 호남은 쓰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 보내는 곳
이제 세 가지 쟁점에 숫자로 정면으로 답하자. 비판론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들어 호남을 부적격지로 몬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전남은 전력을 쓰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 보내는 곳이다.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기준 2024년 전남의 전력자급률은 213.4%로 자기 지역이 쓰고도 곱절 넘게 남기는 전국 2위 수준인 반면, 서울은 10.4%에 그친다. 게다가 전남은 전국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31%를 생산하는 압도적 1위로, 태양광이 전국의 23%인 7.4테라와트시, 신안 해상풍력은 세계 최대 단일 규모인 8.2기가와트에 이른다. 전남에서 허가된 해상풍력 발전사업만 약 14기가와트로 전국 23.6기가와트의 60%에 달한다. 너른 햇빛과 서남해안의 거센 바람이 빚어내는 이 청정 전력은,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협력업체에 사실상 의무로 요구하는 재생에너지 100% 사용, 곧 RE100을 충족할 국내 최적의 조건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반도체 공장이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깨끗한 전기'를 갈구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결정적 강점이다.
역설은 여기서 드러난다. 지금 호남의 문제는 전기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수도권으로 보낼 송전망이 부족해 애써 만든 전기를 버리고 있다는 데 있다. 전남의 태양광 출력제어 일수는 2023년 2일에서 2024년 26일, 2025년 상반기에만 44일로 2년 만에 22배로 폭증했다. 만들어 버리던 전기를 그 자리에서 쓰는 반도체 클러스터야말로 이 역설을 푸는 가장 합리적인 해법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은 부정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그것은 한빛원전의 수명 연장과 액화천연가스 발전, 에너지 저장장치로 보완할 문제이지 입지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16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한 용인 클러스터가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하남시 인허가에 2년째 막혀 표류하는 데서 보듯, 전력을 끌어올 길이 막힌 쪽은 수도권이다. 전력 부족은 호남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의 문제다.
용수와 인력의 숫자 —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았을 뿐
용수도 마찬가지다. 비판론은 영산강 유역이 지금도 물이 빠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지역의 수자원 관리 체계가 농업용수 공급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과, 그 땅에 본래 물이 없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의 연간 수자원 총량은 114억 세제곱미터에 이른다. 다만 호남이 오랫동안 농업 위주로 관리되어 온 탓에 산업용수를 대규모로 끌어 쓸 인프라가 아직 깔리지 않았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자원을 제대로 배치·관리하면 하루 100만 톤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한 것으로 검토됐다며, 세계 1·2위 반도체 기업이 용수가 부족한 지역에 검토도 없이 초대규모 공장을 지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반박했다. 물 부족을 기술로 메우는 길도 이미 검증되어 있다. 용인 클러스터가 수원·화성·평택·오산·용인 다섯 지자체의 하수처리수를 초순수로 되살려 쓰기로 한 것처럼, 하수 재이용과 해수 담수화 같은 대체 수자원 기술은 상용화 단계다. 사막의 미국과 가뭄의 대만이 바로 그 길로 물 문제를 풀었다. 물이 본래 없는 곳에도 국가가 물을 만들어 산업을 돌리는 시대에, 물이 있는 곳을 두고 관리 체계가 아직 없다는 이유로 안 된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주장이다. 한국일보 등이 영산강· 섬진강의 공업용수 가용량 3.1억 세제곱미터가 용인 필요량 3.9억 세제곱미터에 못 미친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현재 미구축 상태를 가리킬 뿐 수자원의 부재를 뜻하지 않는다.
인력 역시 그냥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고 끌어오는 것이다. 호남에는 이미 양성 거점이 작동하고 있다. 광주과학기술원의 반도체공학과는 삼성전자와 손잡은 채용조건형 5년제 계약학과로 운영되며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전액 지원하고 인턴십과 입사를 보장하고, 영국 Arm은 이곳에 전문 교육 과정을 세워 5년간 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을 양성한다. 전남대와 조선대도 반도체 특성화와 첨단 패키징 전문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그곳에 생기는 것이야말로 인재를 부르는 가장 확실한 자석이다. 대만이 북부에 몰려 있던 반도체를 중·남부로 펼치자 그 지역의 고용과 인구가 늘었던 경험, 삼성디스플레이가 들어선 충남 아산의 인구가 2000년대 중반 약 20만 명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 젊은 도시로 탈바꿈한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더욱이 2026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전남·광주 통합특별법은 통합시장 요청 시 산업부 장관이 반도체 특화단지를 우선 지정하고 전력·용수·도로 같은 기반시설을 국가가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해 신속히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두었다. 인력의 토대 또한 국가가 만들어가는 변수다.
수도권 일극집중이라는 진짜 위기
세 쟁점을 관통하는 더 큰 진실이 있다. 호남이 부적격이라는 비판은 늘 수도권을 암묵적 기준으로 삼지만, 정작 한계에 부딪힌 쪽은 수도권이다. 국토 면적의 약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8%, 경제력의 80%가 몰려 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00년 46.3%에서 2020년 사상 처음 50%를 넘었고 2050년에는 53%에 이를 전망이며, 전국 기초지자체의 약 40%인 89곳이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다. 통계청 국가통계연구원조차 수도권 인구집중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이며 도시화의 집적이익보다 불이익이 더 크다고 분석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토로했듯 수도권에는 더 지으려 해도 땅도 전력도 용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 설비를 해외로 내보낼 수도 없다. 결국 남는 답은 비수도권으로의 전략적 분산뿐이며, 호남·충청에 반도체를, 영남에 물리적 인공지능과 로봇을, 강원에 데이터센터를 배치하는 권역별 다극화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안보의 논리가 더해진다. 한 나라의 핵심 전략산업이 좁은 한 지역에 빽빽이 몰려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취약점이다. 단 한 번의 충격으로 국가의 명운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반도체 강국들이 산업과 안보 양면에서 생산 거점을 여러 곳으로 흩어 위험을 분산하는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고태봉이 짚었듯 무인화 혁명이 대뇌와 소뇌와 신경과 몸을 모두 요구하는 전 영역의 변화라면, 그 각 부분을 국토 전역에 안배하는 분산 전략은 한 시대 전체를 떠받칠 국가의 그릇을 넓히는 일이다. 호남으로의 분산은 균형발전인 동시에 국가 차원의 위험 관리다.
인프라는 만드는 것이다
처음의 명제로 돌아가자. 호남 반도체 투자를 향한 비판은 전력과 용수와 인력이라는 구체적 결핍을 근거로 들지만, 그 근거들은 하나씩 뜯어보면 모두 "지금 그 자리에 인프라가 완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산업입지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국가가 채워 넣어야 할 빈칸이다. 1973년 모래밭의 영일만이 그러했고, 1,650억 달러가 투입되는 사막의 애리조나와 연 10억 세제곱미터의 물을 만들어내는 가뭄의 대만, 1,000억 달러를 쏟는 내륙의 중국이 그러하다. 마추카토가 갈파했듯 가장 큰 위험을 떠안아 새로운 길을 여는 행위자는 언제나 국가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는 온 사회로 되돌아와야 한다. 고태봉이 진단했듯 우리는 무인화 혁명의 초입에 서 있고, 그 혁명을 떠받칠 반도체의 대뇌와 소뇌와 신경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는 더 미룰 수 없는 결단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든 논증은 한 가지 전제 위에서만 완성된다. 국가가 말로만 분산을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송전망과 용수 인프라와 인력양성과 배후도시를 책임지고 만들어내겠다는 구체적인 재정과 로드맵을 내놓을 때라야 비로소 비판은 완전히 무력해진다. 만약 국가가 그 토대를 만들어낼 의지와 계획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비판의 일부는 되살아날 것이다. 따라서 호남 투자를 옹호하는 일은 곧 국가에 그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는 일과 한 몸이다. 인프라는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조건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213.4%의 전력자립도와 114억 세제곱미터의 수자원과 1,400명의 양성 인력이 이미 그 빈칸의 절반을 채우고 있다. 나머지 절반을 국가가 만들어 채우는 것, 그것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걸린 진짜 시험이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