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다
* 말씀: 민수기 20장 12절
민수기 20장은 모세 생애의 가장 아픈 장면이다. 사십 년을 인도해 온 모세가 약속의 땅 문턱에서 들어갈 자격을 잃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백성은 물이 없다고 원망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민 20:8)고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 앞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그리고 반석에게 말하지 않고 지팡이로 두 번 쳤다.
놀랍게도 물은 나왔다. 백성과 짐승들이 마셨다. 겉으로 보면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순종이라 부르지 않으셨다. 물은 나왔지만, 모세의 분노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린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1. "말하라" 하셨는데, 모세는 쳤다
하나님은 반석에게 "말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쳤다.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반석을 치는 것이 순종이었다. 그러나 민수기 20장에서는 말하는 것이 순종이었다.
믿음은 과거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하라"고 하셨지만, 모세의 감정은 "치라"고 했다. 그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분노와 익숙한 방식을 더 신뢰한 것이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신 이유이다.
2. 분노가 하나님의 자비를 가렸다
모세는 백성을 향해 "반역한 너희여"(민 20:10)라고 말했다. 그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하나님이 드러내려 하신 것은 정죄가 아니라 자비였다. 원망하는 백성에게도 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였다.
시편 106편 33절은 이 사건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해석한다. 모세의 실패는 손의 실패이기 전에 입술의 실패였고, 입술의 실패이기 전에 영혼의 실패였다. 지도자의 지친 마음, 쌓인 분노, 반복되는 실망이 하나님의 자비를 통과하지 못한 채 백성에게 쏟아졌다.
진실을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가릴 수 있다. 분노가 앞서면 진리도 거칠어지고, 자비가 빠지면 거룩도 왜곡된다.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지도자의 교만
모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라고 말했다. 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모세와 아론은 통로일 뿐이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도자의 능력처럼 보이게 할 위험이 있었다. 지도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샘물이 터져나왔지만, 하나님은 그 교만한 방식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성과가 곧 하나님의 승인은 아니다.
바울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라고 말씀한다. 모세는 분노로 반석을 쳤지만, 예수님은 친히 맞으신 반석이 되셨다. 모세는 "반역한 너희여"라고 외쳤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 모세의 교만은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시면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얼굴이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분노와 방식으로 하나님을 가리고 있는가? 우리의 말투, 표정, 결정은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해석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얼굴보다 하나님의 얼굴이 환히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가렸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분노가 주님의 자비보다 앞서지 않게 하소서.
우리 말이 옳음만 주장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도 담게 하소서.
성과보다 말씀을, 능력보다 거룩을 더 사랑하게 하소서.
반석이신 예수님 안에서 생수의 은혜를 마시게 하소서.
오늘 우리 얼굴 너머로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