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에 관한 소견: 사법 정의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 조성민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정의는 시대의 파고에 따라 때로 지연되거나 가로막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실체적 진실이라는 바다로 흘러가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 범죄의 책임을 어디까지, 언제까지 물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특히 ‘공소시효’라는 법적 장치가 반인권적 범죄자들에게 최후의 도피처가 되는 현실은, 정의의 관점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최근 논의의 배경: 통치 철학적 결단과 시대적 요구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시효 폐지를 강력히 제창하고 나선 것은 단순히 과거사 정리 차원을 넘어선 결단으로 보인다.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정치적 격변 속에서, 공권력이 헌법 질서를 파괴했을 때, 그 책임은 영구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이라고 본다.
대통령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침해했을 때,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국가가 면책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며 ‘권리남용’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권력의 시녀가 되었던 과거의 악순환을 끊고, 공직자들에게 “당신의 결정은 영원히 기록되고 책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는 실천적 조치라 할 수 있다.
역사적 비극과 법률 제정의 진통: 특별법의 당위성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가 폭력과 그에 맞선 처절한 인권 투쟁의 기록이다. 제주 4·3 사건의 무고한 희생,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 등은 국가가 칼날을 거꾸로 쥐었을 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비극을 바로잡기 위한 입법 노력은 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2024년 말 국회를 통과했던 ‘반인권적 국가범죄 시효 특례법’은 당시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다. 반대 측이 내세운 ‘법적 안정성’과 ‘형벌 불소급 원칙’은 법치주의의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 없으나, 그것이 반인권 범죄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때 법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이는 ‘인권 보호’라는 상위 가치가 ‘형식적 시효’라는 하위 절차에 가로막힌 전형적인 불의이다.
사회적 참사와 직무유기: 적극적 가해와 소극적 방임의 경계
여기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난제에 봉착한다. 고문이나 조작과 같은 ‘적극적 국가 폭력’과 달리, 구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직무유기’는 소극적 행위이기에 시효 폐지 논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판·검사나 구조 책임자 등 특정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부여된 ‘역할’은 곧 인권을 보호해야 할 작위 의무를 의미한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생명을 방치한 것은 형상만 다를 뿐, 국가가 직접 생명을 앗아간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권력의 배신’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특별법을 통해,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야기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준 공직자의 중대한 직무유기 역시 시효 폐지의 대상에 포함하는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공직의 무게감을 재확립하는 과정이다.
사법권 남용의 실체: 조작된 진실과 절차적 정의의 붕괴
국가 폭력은 물리적 강제력뿐만 아니라, 법의 이름을 빌린 정교한 ‘사법적 가해’를 통해 완성되기도 한다. 우리는 과거 ‘간첩 조작 사건’이나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의 비극을 통해 사법권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지 목격해 왔다. 수사 단계에서 자행된 고문과 가혹행위를 묵인하는 것을 넘어, 검찰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공판조서를 사실과 다르게 꾸미는 행위는 단순한 직무상의 과실이 아니다. 공판조서는 재판의 과정을 기록하는 유일한 공적 문서이며, 피고인이 상급심에서 다툴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이를 고의로 조작하는 것은 사법 시스템의 심장부를 겨누는 범죄이며, 헌법이 보장한 적법 절차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조작은 ‘직무적 판단’의 범주를 벗어난 명백한 인권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효의 장벽 뒤에서 단죄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다.
가해 당사자 처벌의 당위성: 책임의 개별화와 사법 신뢰의 회복
진정한 사법 정의는 국가가 세금으로 배상금을 지불하는 소극적 책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잘못된 수사와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판사와 검사가 개인으로서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는 ‘무책임의 체제’를 공고히 할 뿐이다. 물론 사법부는 법관의 독립성과 수사의 위축을 이유로 공소시효 폐지에 강력히 반발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법리 해석의 차이나 증거 판단의 미숙함으로 인한 ‘오판’과, 고의적인 증거 조작 및 절차법 위반이라는 ‘범죄’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판사와 검사는 일반 시민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인권 수호 의무를 부여받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 따라서 이들이 그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저버리고 오히려 폭력의 주체가 되었다면, 그 책임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당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정의의 본질이다. 특히 장래에 발생할 권력 남용 범죄부터 이 원칙을 적용하자는 제안은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사법부 종사자들에게 “당신의 결정은 역사가 영원히 감시한다”는 실천적 경각심을 주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가해 당사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전제될 때, 비로소 우리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한 정의의 보루로 거듭날 수 있다.
지체된 정의를 위한 국회 결단의 촉구
과거 ‘반인권적 국가범죄 시효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도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던 아픈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적 분기점이다. 정치권은 ‘선거철’이라는 핑계 뒤로 숨어서는 안 된다. 선거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며, 국민의 지지는 곧 국민이 원하는 정의의 가치를 정치권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번 선거 이전에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국가 폭력에 시효란 없다”는 국민의 준엄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정의가 지향하는 조화로운 사회는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과거에 명확한 책임을 묻는 토대 위에서 건설된다. 공직자, 특히 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들이 인권을 수호해야 할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피해 배상은 국가가 하되, 처벌은 가해 당사자가 받는 이 명확한 원칙이 확립될 때, 비로소 사법 정의의 시계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