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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 이명재 목사(김천일보 발행인) ‘빛의 혁명’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ree610 2026. 3. 19. 08:11

“우리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 이명재 목사(김천일보 발행인)

‘빛의 혁명’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먼저 스쳤다.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었다. 분명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지만, 머릿속은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였던 알프레드 노벨(Alfred B. Nobel, 1833~1896)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나도 저렇게 멋진 유언을 남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조건도 갖춰지지 않았거니와 그런 결단력도 없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이너마이트로 큰 부를 이룬 노벨. 어느 날, 프랑스의 한 신문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그런데 그것은 형 루드비그(Ludvig Nobel, 1831~1888)의 죽음이 오보로 전해진 것이었다. 오보보다 더 큰 충격은 사망자를 평가하는 몇몇 신문의 기사 내용이었다. 한 신문은 노벨을 가리켜 “죽음의 상인이 죽었다”(Le Marchand de la mort est mort.)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노벨 스스로도 그 제목 속에 역설적인 진실이 담겨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음의 깊은 찔림이 있었다.

또 다른 신문은 “알프레드 노벨은 누구보다 빠르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 부유해진 사람이었으며, 어제 그가 사망했다”고 썼다. 산업 발전을 위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전쟁과 폭력에 사용된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평가가 나올 만도 했다. 비록 오보였지만, 그 속에는 분명 진실의 일면이 담겨 있었다. “내가 죽으면 나도 저런 평가를 받겠구나.” 깊은 회오와 반성 속에서 노벨상은 비롯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후, 세상을 빛낸 이들을 위한 상이 제정되었다. 1901년, 다섯 개 부문의 상이 그 시작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노벨평화상이다. 세계 평화, 인권, 민주주의 증진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기관)에 수여된다. 누구나 받고 싶어 하는 명예로운 상이다. 그런데 2026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대한민국 시민'이 추천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추천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2025년 7월, 서울에서 국제정치학회 (IPSA) 총회가 열렸다. 12.3 내란 이후 8개월 만이었다. 세계적인 정치학자들은 내란을 겪은 이 나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총회에 참석했다.

당시는 내란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친위 쿠데타의 움직임도 쉽게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윤석열 엄벌’과 ‘윤석열 어게인’을 외치는 목소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총회에 참석한 IPSA 회원들에게는 계엄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시민의 힘으로 막아낸 계엄. 그들은 바로 그 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읽어내려 했다.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대. 이런 상황에서 반헌법적 계엄을 촛불과 응원봉으로 저지한 일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IPSA 지도부는 그 위대함에 답하는 방식으로 노벨평화상 추천을 선택했다. 추천을 주도한 이들은 김의영 서울대 교수, 파블로 오나테 스페인 발렌시아대 교수, 데이비드 파렐 아일랜드 더블린대 교수, 아줄 아구이알 멕시코 과달라하라대 교수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IPSA의 전현직 회장단이며, 서울총회 수석조직위원장이었던 김의영 교수가 산파 역할을 했다. 이들은 12.3 내란을 저지한 시민들의 행동을 ‘빛의 혁명’(Revolution of Light)이라고 규정했다. 무기 대신 응원봉과 촛불을 든 평화로운 저항. 계엄군의 총칼을 응원봉으로 마주하며 유혈 사태를 막아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헌법적 위기를 비폭력적 시민 참여로 극복한 것이다. 시민의 민주주의 역량이 한껏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추천인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이 결코 과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IPSA 추천인들은 추천서에 빛의 혁명의 개요와 배경, 그리고 그것이 지니는 국제적 의의 등을 상세히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노벨위원회가 그 설명의 행간에 담긴 의미까지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를 겪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라는 그럴듯한 구호 아래 국제 질서는 흔들리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IPSA는 한국의 ‘빛의 혁명’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글로벌 표준 가능성을 발견했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그 자체로 큰 영광이고 기쁨이다. 그러나 실제 수상까지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 후보로 추천되는 개인과 기관의 수도 해마다 늘어 2024년 286명, 2025년 338명에 이르렀으며,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본격적인 심층 심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서구 강대국 중심의 편향, 여성 수상자의 저조함, 성과 평가의 시점 등의 문제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여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공동 수상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문제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도 있다. 따라서 개인보다 기관이나 단체가 수상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만약 대한민국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면, 그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IPSA 추천인들도 오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후보를 개인이나 특정 단체로 할 것인지, 아니면 참여 시민 전체로 할 것인지. 숙고 끝에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은 개인이나 단체 이전에 시민들의 하나 된 마음에서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 전체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것은 노벨상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유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다. 특정 기구나 단체가 아닌 ‘대한민국 시민’을 수상 후보로 내세운 점에서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을 감안해 IPSA 추천인들은 ‘대한민국 시민’을 ‘Citizen Collective’(시민 공동체)라는 용어로 지칭했다. Collective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집합적으로 모여 행동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공동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된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25년 노벨상 역사에서 단 두 번의 수상이 말해 주듯, 한국과 노벨상의 인연은 별로 가깝지 않았다. 개인 수상을 공동 또는 단체 수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벨위원회의 의견이 쉽게 모아지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후보로 추천되었고, 결국 해당 국가의 인권단체가 시민들을 대표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 대상을 구체화한 결과였다.

따라서 이번에 ‘대한민국 시민(Citizen Collective)’이 수상 대상으로 결정된다면, 이는 노벨평화상의 새로운 시도이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유혈 사태를 막고 시민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복원했다는 사실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이러한 저력을 보여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IPSA 추천인들도 이 점을 강조했다. 전 지구적으로 독재화의 물결이 팽배해지는 상황 속에서, 내란을 시민의 힘으로 막아낸 ‘수직적 회복 탄력성’(vertical resilience)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4.19 혁명은 이승만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였다. 피로 얼룩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직선제를 관철한 6월 항쟁은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 쟁취의 과정이 뚜렷하다. 또한 국정농단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와 군부 쿠데타를 흉내내다 쫓겨난 윤석열의 12.3 내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투쟁은 시종여일 (始終如一)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비교적 안정적 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어렵게 쌓은 민주주의를 뜬금없는 계엄으로 무너뜨리려 한 것은 지도자가 범할 수 있는 죄 중에도 큰 죄에 해당한다. 국민이 발전시킨 민주주의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대의기관인 국회로 몰려와 내란을 저지한 대한민국 시민을 IPSA 정치학자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K-팝, K-드라마가 세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K-민주주의까지 글로벌 이정표가 된다면, 이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12.3 내란 극복은 대한민국이 평화를 회복하고, 온 세계에 시민의 위대한 힘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시민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갈등과 분열로 흔들리는 세계에 크나큰 전환점을 선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계적인 정치학자들이 12.3 내란에 비폭력으로 저항한 대한민국 시민을 추천한 의미를 다시 새겨 보아야 한다. 지역적 치우침이나 정치적 편견이 다른 부문의 사람들보다 많지 않은 편이다. 그 방면의 전문 학자들로서 일반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어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의 추천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이유이다. 대한민국 시민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것은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 된다. 빠짐없이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상 대상자로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가끔 참석한 나 같은 사람도 제외되지는 않을 것이다. 2026년 말, 우리 대한민국 시민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이 될까!

* 수직적 회복 탄력성(vertical resilience)은 정치학 용어로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저력을 의미한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