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봉교회 김수원 목사님께서 페북에 쓰신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글을 공유합니다.
<말과 행동>
12·3 내란에 가담했던 어느 장군이 법정에서 말하기를,
자신은 내란에 공모한 적이 없고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계엄이 말이 되느냐”고 말하면서도,
대통령이 계엄을 발동했고 자신은 직책상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전 공모가 아니라는 변명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진실을 말하고 있으니
믿어 달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된 마당에 제가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대통령 편을 들겠습니까. 아닙니다.
첫째는 하나님 편이고,
둘째는 국민 편이고,
셋째는 제 동료 군인 편입니다.”
말만 놓고 보면 옳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공모 의혹이 제기된 자리에 배석했고,
결국 명령을 따라 실행했다.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군인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 자리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명백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인식했다면, 그 즉시 올바른 판단과 결단이 뒤따라야 했다.
실제로 그러한 판단을 내린 현장의 몇몇 군인들과 시민들의 용기 있는 처신이 있었기에 계엄은 즉시 해제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그 군사령관의 책임은 과연 가벼운가.
공모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으니 무죄라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예부터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 했다.
의심받을 자리에 서지 않는 것 자체가
책임 있는 자의 처신이라는 뜻이다.
믿는 사람이 말로는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수괴의 편에 서 있었다면, 그것을 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일은 비단 군의 문제만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와 닮은 장면들을 숱하게 본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줄 알면서도 관계와 구조, 이해관계에 얽혀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있다.
내란의 밤과 다르지 않았던 명성의 세습 사태 속에서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우리는 이미 목도했다. 그 군사령관의 처신과 무엇이 다르랴.
말로는 하나님을 앞세우면서 행동으로는 책임을 회피하고 불의한 구조에 편승한다면, 그 신앙은 고백이 아니라 변명이며, 그 변명 또한 결국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질구질한 언어에 불과하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 말은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고백은 진실이 된다.
참된 예수의 교회는 그렇게 지켜져 왔다.
순교자들의 헌신 위에 세워진 이 믿음에 더 이상
먹칠하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의 끈을 동여매 본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