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근태 형님, 올해도 마석 형님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형님께 편지를 씁니다.
작년 오늘 여객기 참사가 있었고 그 유족들을 위로하고 국회의 책무를 하기 위해 오늘 저는 무안으로 갑니다.
그렇지만 작년에도 올해도 아니 형님이 가시고 지난 14년 언제나, 제가 서고자 한 민주주의의 길에는 형님이 계셨습니다.
형님과 함께한 시간, 형님이 남긴 뜻이 있어 두 번의 겨울,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었고, 양극화와 불평등의 벽을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갈등과 대결의 벽을 넘어 ‘대화하고 타협하는 용기’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님, 오늘 저는 그곳 마석은 아니어도 한 걸음 더 전진하는 민주주의를 다짐하며 형님과 함께합니다.
사랑하는 근태 형님, 형님은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의 진보, 넘어야 할 것이 많은 길이었습니다. 형님은 가장 선명한 민주주의 투사였지만, 형님이 넘어서고자 한 것은 단지 독재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말씀했던 것처럼, 형님은 우리 사회, 정치에 만연한 불일치, 이성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과 현실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이 어긋나는 모순을 기어코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이분법으로 정직과 진실, 희망의 가치가 포기 당하지 않도록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런 형님을 걱정하고 실망하는 소리도 있었지만 형님이 떠나고 난 뒤에야 김근태가 옳았다고, 형님이 옳았다는 깨우침이 우리의 가슴을 쳤습니다.
비상계엄과 헌정 위기를 극복하고 어느 때보다 사회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은 요즘, 저는 형님이 넘고 또 넘으려고 했던 견고한 현실의 벽들을 자주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때로는 사회적 위선으로, 의심하지 않는 관성으로, 또 거짓희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 진취적으로 미래를 상상하고 실천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성찰과 절제를 잃은 언행과 대립이 정치를 압도하고 그런 속에서 국민들 삶의 문제에 분명한 변화, 전환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국민의 희생과 헌신에 의한 결과물인데 대다수 국민은 만족스럽지 않고 불안한 삶을 삽니다.
이것은 분명히 부조리한 현실입니다. 여기에 굴복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반쪽짜리 민주주의에 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정직한 미래는 사람들이 살아온 삶과 생활 속에 있다.” 형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는 국민의 삶으로 민주주의를 증명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너머의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입니다.
인간의 존엄, 형님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래서 그리 치열하게 싸우고 붙잡았던 바로 그 인간의 존엄과 사람에 대한 예의가 더욱 중요하고 절실해진 시대입니다.
그리로 가는 길이 자주 좁고 가팔라 간혹 우리를 주춤하게도 하지만, 김근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형님, 기억나십니까. 제게 주셨던 100만 원 말입니다. 벌써 25년 전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한 총선에서 하룻밤 새 출마 기회를 뺏기고 크게 낙담했던 그해였습니다.
힘든 마음을 참고 낙하산 후보를 열심히 도왔지만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정책과 태도에 참다 참다 더는 견딜 수 없어 그만 손을 떼려고 할 때, 형님이 자신의 선거 일정을 중단하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한 석이 중요하다는 형님 말씀이 옳고, 대의를 거역할 수 없어 다시 그 후보를 도왔습니다. 당연히 그 후보는 당선됐지만 제 마음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형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여행 다녀오라며 100만 원을 주셨습니다. 형님에게나 저에게나 큰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혼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다닌 길, 풍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다시, 나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이 준 100만 원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형님의 따뜻함은 그렇게 후배들이, 벗들이 자신의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하게 힘을 주는 진심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렇게 형님의 길을 이어가야겠지요.
사랑하는 근태 형님, 정말 보고 싶습니다. 오래전 형님이 병민이, 병준이에게 쓴 편지에 그리움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것이라고 일러준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그리움도 그럴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 한 형님의 당부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형님,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 국회의장 우원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