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도 성경을 인용한다!” - 해석학적 전쟁터 -
* 누가복음 4장 9-12절
오랫동안 품어 온 나의 질문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바르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당한 세 번째 시험은 아주 독특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충돌한다. 사탄(악마)은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하고,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로 응답하신다. 둘 다 정경(正經)의 말씀이며, ‘기록되었으되’(it is written), ‘이르시되’(it is said)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같은 성경이 어떤 때에는 사탄의 무기가 되고,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검이 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오늘 우리 시대의 신앙을 걸고 싸워야 할 해석학적 전쟁터의 문을 여는 핵심 질문이다.
I. 성전 꼭대기에서 일어난 사건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의 꼭대기에 세운다.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강렬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속삭인다. 문제는 인용 자체가 아니라 해석 방식이다.
1) 사탄의 해석학
시편 91편은 “그가 나를 사랑하므로‘(14절)라는 관계의 언어를 전제로 한 신뢰의 시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 사랑과 신뢰의 맥락을 지우고, 기적적 보호라는 파편만을 끌어내어 자기 과시의 실험대로 만들었다. 사탄은 본문에서 의미를 뽑아낸 것이 아니라, 자기 욕망을 본문 속으로 집어넣는 방식을 택했다. 문맥을 떠난 본문은 언제나 해석자의 욕망의 도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해석학적 범죄이다.
2) 예수님의 반박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기 6장 16절 말씀으로 거부하셨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맛사’에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라며 하나님께 증명을 요구했던 사건(출 17:1-7)을 떠올린다. 예수님의 논리는 명확하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정반대 행위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증명 요구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언약의 핵심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이러한 사탄의 전략을 끊어버리셨다.
2. 예수님의 해석학
1) 관계적 맥락
예수님은 인용은 “주 너의 하나님”이라는 관계적 호칭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래적 논리가 아니라, 인격적 신뢰 안에서만 온전히 해석된다. 사탄은 하나님을 ‘도구’로 취급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뢰할 인격’으로 대한다. 진정한 해석은 인격적 관계의 자리에서 결정된다.
2) 구속사적 맥락
예수님의 순종은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완성한다. 40년의 광야를 40일의 광야에서 재현하셨다.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실패한 옛 이스라엘(광야 세대)의 길을 걷지 않고, 순종하는 참 이스라엘로서의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셨다.
3) 십자가 중심 해석학
예수님은 성전 꼭대기에서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을 단호히 거부하셨다. 손쉬운 기적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 고난과 순종의 길을 택하신 것이다.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시험을 거부하신 예수님은, 후에 십자가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는 동일한 유혹 앞에서도 똑같이 거부하셨다. 예수님은 ‘기적의 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사탄의 해석학은 죽이는 문자의 해석학이었다. 예수님의 해석학은 살리는 영의 해석학이었다. 그분은 사랑과 신뢰, 경외와 순종의 자리에서 말씀을 읽으셨다. 말씀의 최종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오늘도 이단과 사이비 교주들은 성경을 방패처럼 내세우며 사람들을 속인다. 정치적 욕망과 개인적인 야망을 ‘성경적’이라는 이름 아래 교묘하게 포장한다. 그들은 성경을 증명서로 만들고, 말씀을 도구화하며, 하나님을 마치 조종 가능한 존재로 취급한다. 이는 사탄의 해석학을 꼭 닮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경 인용’이 아니다. 더 바른 ‘해석’, 더 깊은 ‘분별’, 그리고 더 겸손한 ‘순종’이다.
* 기도문
말씀이신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소서.
영을 죽이고 율법만을 강조하는 문자주의로부터,
공동체를 떠나 독선적 해석에 빠진 개인주의로부터,
십자가 없는 영광을 약속하는 번영신학으로부터,
하나님 나라를 세상 왕국으로 환원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에게 이를 분별하고 저항할 지혜와 담대함을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