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6:1~13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찬송 346장 주 예수 우리를 구하려
Ⅰ.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 (사 6:1-4)
(1)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높이 들린` 그 보좌를 보라. 그 보좌는 다른 보좌들보다 높아 그것들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다른 보좌들 위에 있어 그것들을 다스리기도 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실체인 `여호와`(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고 또 그를 볼 수도 없다)를 본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권인 `아도나이`를 보았다. 그는 주 예수를 본 것이다. 이 환상은 요한복음 12:41에서 이사야가 그리스도의 영공을 보았던 것으로 설명된다. 그는 `보좌에` 앉아 계시다.
(2)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나타난 그의 성전, 곧 세상의 교회를 보라. 그의 `옷자락`, 곧 그의 예복 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다. 즉 온 세상에(왜냐하면 세상은 전체가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이다),
(3) 그의 보좌를 시중드는 빛나고 복된 수행자들을 보라(2절). `스랍들이 모셔 섰는데`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로서 `스랍` 곧 "숯 피우는 자"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기`(시 104:4)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의 영광을 위하는 열심히 그리고 죄를 대적하는 열심히 불타오른다. 그 천사들은 스랍들로서 그들의 빛에 비례하는 열심을 지니고 있고, 거룩한 지식뿐만 아니라 거룩한 사랑도 풍성히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이 그들의 영광이 된다. 그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는데` 그 날개들은, 에스겔이 본 것처럼 들어 펴지지는 않았다(겔 1:11).
(4) 천사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래하는 찬송을 들어 보라(3절). 그들은 열정적으로 열심히 크게 `창화하였다.` 또 그들은 조화를 깨뜨리는, 거슬리는 목소리를 조금도 내지 않고서 `서로 창화하였다.` 그 노래는 네 생물이 부른 것과 똑같았다(계 4:8). 하나님의 권능은 두 번 언급되었으나(시 62:11), 그의 거룩함은 세 번 언급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 말은 삼위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8절에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혹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래에도 계실 그분`을 가리키는 말로 볼 수도 있다.
(5) 이 영광스런 하나님의 환상 때문에 성전에 가득한 두려움의 징표들을 보라(4절). 성전이 흔들렸다.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다시 말해서 백성들을 판단하시려고 반포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로 인하여(시 50:4), 굳게 세워진 `문지방의 터`조차 흔들렸다.
Ⅱ. 환상을 본 결과와 사죄 (사 6:5-8)
(1) 선지자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서 당황하였다(5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행복하도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외친다.
(2) 천사가 그에게 답변한 위로의 말이 그의 두려움을 가라앉혔다(6,7절). 스랍 중의 하나가 그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즉시 그에게로 날아왔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환상을 보고 엎드러진 자들은 그의 은혜를 받고 곧 다시 일어설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스랍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광의 보좌를 잠시 동안 떠나 천사였다. 그는 날아서 이사야에게로 왔다. 우리 주 예수께서 번민하실 때도, `사자가 하늘로부터 주께 나타나 힘을 도왔다`(눅 22:43). 스랍은 이사야의 입술을 정결케 하려고 `단에서 핀 숯을 가지고 날아와서` 그의 입에 대었다. 거룩한 성령께서는 불처럼 역사하신다.
(3) 선지자의 사명이 새로워졌다(8절).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와 대화하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전혀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말씀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숙고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Ⅲ. 이사야의 임무 (사 6:9-13)
(1) 그가 보냄을 받아 찾아가야 할 백성들의 대부분은 그의 설교를 듣지 않을 것이며, 그가 그들에게 알려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는 모든 사실들에 대해서 일부러 눈을 감을 것이다(9절).
(2) 그들은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네 말을 알다 듣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 따라서 너는 `그들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다시 말해서 무감각하고 세속적이게 하며, `그들의 귀가 더 막히게` 하고 `그들의 눈이 더 감기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회복과 회개는 전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라." 더 나빠지게 될 것이다. 일부러 장님 노릇을 하는 자들은 천벌을 받아 정말로 눈이 멀게 될 것이다(10절).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때로는 죄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3) 이렇게 한 결과 그들은 완전히 파멸할 것이다(11,12절). 이사야는 불쑥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고 묻는다. "그 상태가 언제까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니이까 나와 다른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그들 가운데서 헛되이 수고해야 하나이까. 사태가 더 나아질 수 없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의 답변으로, 마침내는 유대 교회와 국가가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성읍들은 거민이 없으며 토지는 경작되지 않고 전폐하게 될 것이라." 영적인 심판은 종종 사람과 장소에 실질적인 심판으로 내려진다.
(4) 그럴지라도 남은 자들이 보존되어서 긍휼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13절).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즉 일정한 수이긴 하지만 불신앙 가운데서 멸망할 대다수와 비교할 때 매우 적은 수인 무리가 `남아 있을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이사야 6: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 제단 숯불로 태우소서
*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댄 스랍(6:6, 7)
이러한 행동은 이사야의 죄를 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죄를 덮지 않는다면 죄를 소멸하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죄를 깨닫고 그 죄로부터 벗어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그루터기의 의미(6:13)
죄인들 속에서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본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남은 자(Ramnnant)사상을 보여주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될 성도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주님!
주의 보혈로 죄를 사하시고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여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