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길

나는 교회 밖 광야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 나는 한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신앙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주일에 교회에 안가고

ree610 2026. 2. 3. 09:20

나는 교회 밖 광야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

나는 한때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신앙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집에서는 꾸중을 들었고, 하루 종일 혹은 일주일 내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주중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학교에 다녔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낚시를 할 수 있는 날은 오직 일요일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한두번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낚시를 다녀오기라도 하면, 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 교회도 안 가고 놀러만 다니는 한심한 아이, 하나님께 벌 받을 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이는 비단 나에게 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도 교회에 다니다가, 낙담하고 낙심하여 잠시 교회 출석을 멈추시곤 했다. 나도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녀 온적이 있는데,  그때 마다 주변의 시선은 시험든 자, 신앙이 흔들리는 자, 믿음이 약하고, 자신만 의로운 이라 여기는 자라는 낙인 찍힌 설교와 교독문 낭독이었다. 나는 미약 하게나마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그 설교가 아버지를 향한 표적 설교임을 일 수 있었고, 예배 시간 내내 그 설교를 오롯이 듣고 아버지의 마음이 헤아려져 도무지 예배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청소년기에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시간에도 주말에는 고향 집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고3때는 입시 준비로 학교 자율 학습과 미술학원 수업으로 목포에 머무는 동안 성광교회라는 곳의 중고등부 교사로 섬겼었다. 이후의   삶에서도 나는 교회와 멀어지지 않았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집 없이 떠돌던 시절에도, 가능하다면 가까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렸다. 군 시절에는 수천명의 장병들 앞에서 찬양 인도를 하고 대표 기도를 하며 군종병 처럼 섬겼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 수많은 예배 속에서 깊은 은혜를 받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어디를 가나 비슷한 깊이의 설교, 비슷한 말들, 비슷한 형식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좋았고, 그곳에 가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십여 년 가까이 교회 안에서, 교회 인근에서, 교회를 상대로, 그리고 교회 관련자들과 비즈니스를 하며 살아온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교회는 썩었다.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모두 다 썩었다.

SNS에서 정의로운 척, 깨어 있는 척 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극우 보수를 자처하며 해괴한 논리를 늘어놓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도무지 발을 디딜 만한 곳이 없다. 교회 생활을 하면 신앙적 안도감, ‘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타인의 인정, 일종의 공증 같은 위안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만난 수백 명의 교회 관련자들 중, 인격적으로 그리고 상도의에 어긋나지 않게 거래한 사람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내가 그런 요구에 부당함을 호소 하거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교회의 이익이나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기 급급했다.
눈앞의 이익 앞에서 성경적 태도도,
신앙인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극소수이지만, 상식밖의 요구를 하지 않거나, 사회에서 통용 될 수 있는 수준의 도의를 지키는분들 과분 할 정도의 환대로 맞아 주시는 분들, 나는 그분들만큼은 인간적인 목사로 인정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은 공짜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거나, 내가 충분히 희생하고 봉사해야만, 당연하고, 그것이 도리이고, 정상적인 관계가 유지되는 듯 행동했다. 내가 정당한 대가와 내 수고에 대한 적정한 이윤을 요구하면, 마치 큰 죄라도 짓는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이는 단순한 상거래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에 만연한 이중성과 위선의 문제였다.

나는 사회에서 살면서 만난 소위 교인들, 성도들의 이중성에도, 목사들의 이중성에도 치를 떨게 되었다. 그런 기억과 경험을 안고서 어떻게 다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어차피 예배 중에 불이 나면 모두 나살려라 하고 도망갈 텐데, 교회라는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과거 다니던 교회에서는 내적 치유 수양회에 참여하기 위해 휴가를 내거나, 심지어 직장을 그만둘 각오를 하거나 잘릴 각오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는 그것을 양육의 최종 시험단계에 통과 하는듯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수양회를 다녀온 사람들이 전인적으로 변화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 조직과 연관 조직이 만들어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곳에서는 울고, 소리 지르고,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연출되지만, 그것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만들거나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결국 일회성 이벤트이거나, 목사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자리로 보일 뿐이었다.

만약 그런 희생과 강요를 통해 사회가 나아지고, 세상이 나아지고, 교회가 정말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교회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회 안에는 높아지고 유명해지려는 욕망의 똥떵이가 가득 쌓여 있다.  

교회가 말하는 가치들은 실체가 아니라 컨셉에 불과하고, 목사의 영향력과 사회적 인지도를 키우기 위한 커리어 관리 수단처럼 보인다. 작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고, 조금의 칭찬에도 언론에 나가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는 구역질이 난다.

이런 조직에 오십 년 넘게 몸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힘들다.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십여 년, 이십 년 알고 지낸 관계를 단절하면서도 SNS에서는 정의롭고 바른 척, 사람들의 호응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다시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만약 단 0.001%의 가능성으로 다시 교회에 간다면, 그것은 정말로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존재하는 교회를 다시 만났을 때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분명히 덧붙이고 싶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내 양심으로는, 도무지 도저히  더 이상 교회에 다닐 수 없다.

나는 광야에서 그분을 만날것이다.
나는 일터와 사회 안에서 그분을 만날 것이다.
나는 교회 안에 갇힌 우상화된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밖에 거리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을 만날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것이다.

이 글이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애쓰시는 사역자 분들에게는 불편 할 것이다. 그러나 ...

나는 교인이란 범주에 묶이기 보다. 내 양심을 거스르지 않는 상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다 갈것이다.
- 가나안 교인 김기호 안수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