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람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 지난 2025년 12월 5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강연과 강의를 연이어 한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ree610 2026. 1. 17. 11:41

”사람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

1. 지난 2025년 12월 5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강연과 강의를 연이어 한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1일 한국을 떠나 텍사스로 돌아왔다. 나의 대학에서 2026년 봄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학교의 봄학기는 한국과는 달리 대부분 1월에 시작한다. 도착하자마자 월요일에 위원회 회의, 화요일 두 과목 수업, 수요일 학생과의 만남을 하고, 이제야 거실에 풀어놓은 한국 여행에서의 가방들을 정리한다. 이번 한국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역시 얼굴들과의 만남이다. 강연장에서 그리고 일주일간 진행되었던 집중강의 (intensive course)에서 만난 얼굴들이다.

2. 이번 강연들에서 내 마음에 진하게 남아있는 것들 중 하나는 두 번의 “편지로 된 강사 소개”다. 첫번 ‘편지 소개’는 2025년 12월 16일, 서울,  그리고 2026년 1월 4일 대전 넉점반 책방>에서의 강연에서였다. 수없이 많은 강연을 해 왔는데 이렇게 강연자 소개를 “편지”로 받는 강연자가 한국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나는 참 행운의 사람이다.
오늘은 2025년 12월 16일 행성비 출판사에서 주관한 강연 "행복할 결심: 니체-아렌트와 함께하는 '작심 3일' 축제"에서 림태주 대표가 한 “강남순 소개 편지”를 나눈다.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소중한 강사소개다.

3. 사람은 무엇으로 아름다운가 ◈ (편지-소개)

강남순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 온 말들, 너무 빨리 결론 내려 버린 생각들 앞에 멈춰 서서 묻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질문은 누구의 삶을 비추고, 누구를 지워 왔는지.

강남순이 말하는 ‘질문의 가난’은 지식의 부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관, 불편해지는 것을 피하려는 태도, 이미 주어진 답 안에서만 안전하게 머무르려는 사회 분위기를 말합니다. 강남순의 글은 차분하지만 단호합니다.
논리와 윤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면서도,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의 삶이 있습니다.

강남순은 학자로서 세계를 읽고, 시민으로서 사회를 걱정하며, 한 사람으로서 인간의 존엄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강남순의 질문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 질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내가 믿어 온 상식이 누구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나의 나약한 침묵이 어떤 집단을 이루게 만들고 있는지.

강남순은 사람의 존엄을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다시 묻는 학자입니다. 그는 사회를 설명할 때도, 제도를 말할 때도 언제나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이 구조는 누구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누구의 삶을 밀어내고 있는가. 강남순이 쓴 책들에는 이런 질문이 가장 분명한 문장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강남순은 ‘행복’을 성취나 보상의 언어로 다루지 않습니다. 행복은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요청되는 권리라고 말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들,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난 삶들까지 그의 시선은 멈추지 않습니다.

강남순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책이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먼저 걱정을 해주는 사람, 모든 존재는 예외 없이 행복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 사유의 체온을 전하려 애쓰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당신의 친구여서, 당신 책의 발행인이어서 더없이 행복합니다.
당신은 나의 봄날입니다.

2025년 12월 16일, 림태주 드림

4.  이 “강사 소개편지”에는 두 모습의 강남순이 있다: ‘이미의 강남순 (Namsoon of Already),’ 그리고 ‘도래할 강남순, 아직 아닌 강남순 (Namsoon of Not-Yet, Namsoon-to-Come).’
이 편지소개에서 등장하는 ‘강남순’은 ‘이미의 강남순’만 아니라, 앞으로 누군가에게 “봄날”의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도래할 강남순’으로 소환되고, 또 소환되는 것이다.
강남순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