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독립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
매년 광복절이 되면,
공적으로는 대통령, 광복회장, 독립기념관장의 경축사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 독립기념관장의 축사가 독립운동의 가치를 zero화하는 그런 내용으로 더운 여름날 열을 더 받게 합니다.
독립기념관은, 더욱 독립운동의 가치를 높이고, 드러나지 않은 독립운동의 부문들을 알리는 일에 진력해야 하는데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개인적 학술견해를 강변하려면 관장 자리 내놓고 해야 하는데, '장'의 직함에서 나오는 혜택만 잘 누리겠다고 하니...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목숨바쳐 헌신한 '위국헌신 국민본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거취 결정하시기 바라고...
과연, 독립운동은 우리 독립에 기여한 바 없고, 독립운동 없이도 우리 독립이 가능했겠는가?는 우리 모두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본문에 들어가 봅니다. 길더라도 정독해주시기 바랍니다. 독립국가의 국민으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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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조약,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이 최초로, 엄청 비중있게 다룬 것은 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입니다. 그 내용과 배경부터 정리해봅니다.
1.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일본이 패전한 뒤의 전후 질서의 구상은 그래도 연합국의 승리가 확보되어가는 시점에 국제회의가 여러 차례 개최됩니다. 그 첫 출발은 1943년 11월 카이로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국사 공부하면서 늘 배웠지만, 문맥을 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한번 보십시다.
"The several military missions have agreed upon future military operations against Japan. The Three Great Allies expressed their resolve to bring unrelenting pressure against their brutal enemies by sea, land, and air. This pressure is already rising."
"The Three Great Allies are fighting this war to restrain and punish the aggression of Japan.
They covet no gain for themselves and have no thought of territorial expansion.
It is their purpose that Japan shall be stripped of all the islands in the Pacific which she has seized or occupi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first World War in 1914,
and that all the territories Japan has stolen from the Chinese, such as Manchuria, Formosa, and The Pescadores, shall be restored to the Republic of China.
Japan will also be expelled from all other territories which she has taken by violence and greed.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With these objects in view the three Allies, in harmony with those of the United Nations at war with Japan, will continue to persevere in the serious and prolonged operations necessary to procure the unconditional surrender of Japan."
카이로 선언에서는 아-태 지역의 처리 구상이 나와 있습니다.
세 열강은 어떤 영토적 팽창의 야심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
일본은 일차 대전후 빼앗은 태평양상의 모든 섬들을 빼앗기데 된다, 만주 대만 팽호도와 같은 중국으로부터 강탈한 모든 영토를 반환해야 한다,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영토들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까지가 원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한 문장이 추가됩니다.
조선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Korea가 free and independent해져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Korea는 독립국이 되고, the people of Korea는 자유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free and independent의 뜻입니다.
2. 어느 나라가, 어떤 경로를 거쳐, free and independent Korea 문구를 넣었을까?
강대국들은 무조건의 선의에 가득차 조선 독립에 합의한 것은 아닐 것이고 자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중국 측은 아마도 한국을 자신의 영향 하에 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아직 한반도의 전후처리에 확고한 방침이 없던 미국 측에서 일단 자신의 개입근거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in due course’)라는 애매한 조항을 추가하여 결정되었습니다.
이 in due course는 나중에 군정실시, 신탁통치안, 미소공동위원회 등 여러 과정을 거쳐가면서 분단으로 이어지는 지뢰가 됩니다. 그런데 1943년 당시에는 그런 지뢰가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확정적인 것은 한국이 자유.독립이라는 국제적 보장을 확약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매불망,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독립염원 한국인들이 꿈꾸던 한 문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free and independent의 문구는 어떻게 삽입 가능했을까요? 3대국 중에 중국, 장개석 주석이 먼저 제안했다고 합니다.
장주석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구체화했을까요. 당시 중국 정부는 일제의 침략과 맞서면서 중경으로 수도를 옯겨 항전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중경에 있었고, 임시정부는 십여년간 중국 정부와 대일 항전에 협력했습니다. 장개석이 카이로로 가기 전에 임시정부는 한국독립의제를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고, 중국은 이를 받아들여 실행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의 독립의지의 확고함에 대해서는 열강에 두루 인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3.1운동, 윤봉길 의거 등은 전세계에 확고한 한국인의 독립의지가 확고함을 강하게 심어주었고요.
흔히 미소 열강의 힘 때문에 한국이 일제로부터 벗어난 것인지, 내외에서 만세부르고 총 몇 번 쏜다고 독립이 되었겠냐는 독립운동의 가치를 폄하하곤 합니다. 순전히 우리의 자력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맞지만, 수십년에 걸친, 전세계에 걸친 독립운동의 피와 땀과 눈물, 통사와 혈사가 없었다면 한국/조선이란 존재도 몰랐을 것이고, 독립이 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립운동 만으로 독립된 것은 아니지만,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한국 독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이겁니다.
3. 만일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어도, free and independent Korea가 가능했을까?
확고한 독립운동이 수십년간 펼쳐지지 못한 다른 지역과 대비하면 분명합니다. 일제는 1820년대에 호카이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고, 1870년대에 유구왕국의 숨통을 끊고 그 땅을 오키나와로 편입했고, 1890년대에 대만을 식민지화했고, 1910년에 한국을 강제병합시켰습니다. 호카이도, 유구지역, 대만이 강고한 독립운동을 했더라면 독립에 가까이 갈 수 있었겠지만 그런 지역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19세기 말 하와이왕국은 미국에 병합되었는데, 1950년대에 약간의 독립운동이 벌어지자 미국의 한 주로 승격시켜 정리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그들 지역에는 안중근 윤봉길이 없었고, 3.1운동이 없었고, 임시정부의 구심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독립운동은, 우여곡절이 있어도, 우리의 독립민주공화국을 이끌어낸 내적, 외적 원동력이라 충분히 말할 수 있습니다.
4. 해방은 도둑처럼, 한밤중에 갑자기 왔을까...오해와 이해
1945년 8월 15일 직전, 직후의 상황과 그에 대한 이해도는 어땠을까요. 평안북도에 있었던 함석헌 선생은 그날이 도둑같이 왔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끌어오자면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랑을 기다리다 지쳐 모두 잠들고 있을 때, 돌연히 왔다는 것입니다.
일제에 굴복, 변절않고 버티던 소수의 민족지사들은 감옥에 있거나, 불안한 피난상황이었습니다. 일제의 패망이 가까이 옴을 아는 소수의 지사들도 일제의 말기적 발악으로 일제히 검거하여 다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들도 그날이 그렇게 돌연히 올 줄 몰랐습니다. 그들 대부분도 해방과 독립은 크게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된 나라에서 죄인이 되고 더 이상 떳떳히 처세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당혹스러운 감정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국제정세를 소상히 알던 중국 중경에 있던 김구 주석에게, 왜적의 항복소식은 마냥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백범일지를 인용합니다. “왜적이 항복한답니다. 내게 이 말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동안 노력한 참전 준비가 모두 헛 일이 되고 말았다. 우리 청년들을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침투시킨 후 조직적으로 공작하게 하려고 미 육군성과 긴밀히 합작하였는데, 한번도 실행해보지 못하고 일본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제의 패망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몫이 없으니, 발언권이 없고, 결국 우리의 운명은 국제정세의 한 종속변수가 될 게 뻔하기에 다가올 험난한 노정을 충분히 예감했던 것이지요.
5. 종합적으로 보면, 해방은 도둑처럼 갑자기 온 게 아닙니다. 독립해방을 추구하는 독립운동의 수십년의 역사, 강대국을 움직이려는 외교독립운동, 독립 희망이 없는 듯이 보이는데도 끝까지 변절않고 탄압받은 애국지사들의 모든 것들이 모여서 해방의 감격을 성취해낸 것입니다. 밑줄치고 정리해보자면
<<한국의 독립은 독립운동 만으로 독립된 것은 아니지만,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한국 독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한인섭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