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림으로 빚어낸 거룩한 연대: 최종수 신부님의 ‘동행’을 읽고 - 백승종 님
최 신부님의 시 <동행>은 각박한 효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함께 산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는 따스한 등불과 같습니다. 역사를 연구하며 인간의 발자취를 추적해온 제 눈에도, 이 시가 보여주는 낮은 곳으로의 시선과 타자를 향한 정중한 배려는 깊은 경외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1. 존재의 속도를 맞추는 ‘윤리적 지체’
이 시의 백미는 자신의 보폭을 버리고 “목발에 맞추어 걷는” 행위의 묘사에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변화는 늘 앞서가는 자들이 아니라, 뒤처진 자들의 손을 잡고 속도를 늦춘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시 속의 ‘친구’는 자신의 건강이나 목적을 위해 걷지 않습니다. 대신 타자의 불편함과 고통에 자신의 생체 리듬을 동기화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상대의 실존적 무게를 온전히 나누어 가지겠다는 윤리적 결단입니다.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품격임을 이 시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2. 침묵으로 짓는 ‘공감의 집’
시인은 소란스러운 위로의 말 대신 “작은 숨들이 서로를 기다리는” 고요의 시간을 제시합니다.
언어는 때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타자의 상처를 성급하게 규정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말보다 먼저 서로를 안는” 침묵은 어떤 수식어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갖습니다. 서로의 숨소리를 기다려주는 인내야말로 소통의 본질입니다.
강둑길에서 ‘먹먹한 눈길’로 함께 걷는 풍경은, 역사적 비극이나 개인적 아픔을 목격한 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태도입니다. 그 먹먹함은 무기력이 아니라, 타자의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한 감정입니다.
3. 수평적 포용으로서의 ‘하늘’
시의 후반부에서 제시되는 하늘과 땅의 비유는 이 시가 지향하는 가치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흔히 하늘은 땅을 내려다보는 초월적 존재로 인식되지만, 최신부님의 시에서 하늘은 “아무 말 없이 땅을 오래도록 안고 있는” 존재입니다.
누군가의 ‘하늘’이 된다는 것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를 온통 감싸 안는 배경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의 길을 끝까지 밝혀 준다”는 다짐은 일시적인 도움을 넘어선, 운명적 동반자로서의 선언과도 같습니다.
역사의 길 위에서 띄우는 화답
최 신부님이 열어주신 이 시적 세계는 제가 평생 탐구해온 ‘인간다운 삶’의 역사적 원형과 맞닿아 있습니다. 동학의 평등 정신이나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이 지향했던 지점도 결국은 이 시가 보여주는 것처럼, 낮은 곳에서 서로의 숨을 맞추며 끝까지 함께 걷는 ‘동행’의 문화였을 것입니다.
새벽비에 젖은 초원이 푸르듯, 서로의 목발이 되어주는 이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마다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움트리라 믿습니다. 타자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곁을 묵묵히 지키는 ‘하늘’의 마음을 배우며, 저 또한 그 길 위에서 함께 걷는 한 사람의 동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영성과 문학적 서정으로 길을 밝혀주신 최 신부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백승종 삼가.
최종수 신부님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동행>
새벽부터 내린 비가
초원을 푸르게 적신다
혼자 운동하러 나온 친구,
그는 걸음을 늦추고
목발에 맞추어 걷는다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 사이로
작은 숨들이 서로를 기다리고
침묵은 더 깊어져
말보다 먼저 서로를 안는다
멀리 강둑길에서
먹먹한 눈길로
우리는 함께 걷는다
하늘이
아무 말 없이
땅을 오래도록 안고 있듯이
오늘 우리의 걸음도
누군가의 하늘이 되어
서로의 길을 끝까지 밝혀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