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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권시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 이흥용 (전 건국대 교수) 1. 국민주권의 승리 K-Democracy

ree610 2026. 3. 6. 15:49

국민주권시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 이흥용 (전 건국대 교수)

1. 국민주권의 승리 K-Democracy

2022년 통일교와 신천지 등 사이비 종교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윤핵관들 중심의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와 정치문화의 미성숙을 드러내는 시작이었다. 민주적 정당정치의 제도화와 열악한 문화적 조건 속에서 정책수립과 결정 및 집행의 모든 과정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갔다. 여야간의 협의와 타협 및 조정은 기대할 수 없는 경직된 정치행태를 정권 출범과 동시에 드러냈다. 국민과 국가와 민족의 앞날과 치열한 무역경쟁의 국제경제 상황 속에서 미래형성적 아젠다를 통합하고 결정해야 하는 예방 국가적이고도 계획 국가적인 정치기능은 전혀 찿아볼 수 없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잡아넣는 방식의 검찰정치만 반복되었다.

2024년 총선거를 계기로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던 윤석열 정부는 급기야 야당의 탄핵발의와 예산안 감축을 핑계로 반국가세력 운운하며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조정과 타협 및 통합의 정치력이 없다 보니 헌법 제 77조 제1항이 언급하는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 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비로소 보충적으로 불가피하게 선포할 수 있는 계엄을 반국가사범 때문에 국정수행이 어려워 선포한다며 친위 쿠데타 를 일으켰다.

계엄 선포 즉시 민주시민들이 국회 주변으로 몰려나와 군 병력을 가로막았고 그 후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계엄은 해제되었으며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결정과 그후 이어진 대통령 선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윤석열의 반헌법적이고도 반민주적인 personality와  통치 행태 및 부인과 주변 윤핵관을 중심으로 행해진 국정 농단은 주권자 국민과 민주시민의 집단 지성 앞에 무릎을 꿇고 역사적 단죄와 법적처벌 재판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결국 소중한 유리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민주헌정 질서의 민감성과 취약성을 노정함과 동시에 반대로 위기에 드러나는 대한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회복력의 양면성을 유감없이 만방에 드러낸 K-Democracy의 역동적인 드라마였고 승리였다.

2. 국민 주권의 생활화

역시 우리 대한국민은 19세기 말 동학 혁명에서 시작하여 20세기초 3.1운동과 독립항쟁 및 4.19 혁명와 5.18 민주화운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연속 변량적이고 주체적인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배의 착취와 정복의 서사를 썼던 일본이나 서구 열강들과 달리 우리 민족은 인내와 저항과 극복의 서사를 쓰고 있다는 <민사네> 김경집 교수의 표현은 매우 일리있는 말이다.

윤석열 정권의 몰락과 새로운 이재명 정부의 탄생을 거치며 우리 대한국민의 주권의식과 민주 시민의식은 한층 더 고취되었으며, 짧은 시간 내에 근대화를 거친 선진국 진입과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긍심은 더욱 강고한 확신으로 자리잡았다. 민주주의 기본 원리와 원칙들은 언제나 의식화된 주권자 국민들의 정치적 기본권, 즉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통하여 끊임없이 일상생활 속에 분출되어 민주정치 현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되는 생명체와 같다.

위의 네 가지 정치적 기본권은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생존권으로써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및 공공복리에 반하지 않는 한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할 민주시민의 정치적 핵심 권리이다. 이러한 국민의 정치에 대한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투여 기재 (input-channel)와 더불어, 다가오는 6월에 있을 지방선거는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주권자 국민의 투여 기재와 다른, 일정한 기간마다 찿아오는 주기적인 투여 기재 (input-channel)이다.

3. 선거는 바로 국민주권을 표현하는 민주정치의 꽃

18세기 프랑스의 루소 (J. J. Reousseau)가 국민의 자기 지배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직접민주정치 체제를 이상으로 내세웠지만, 세계 각국의 민주정치 발전과정의 역사현실 속에서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 형성 발전과정에 따라 간접민주정치, 즉 대의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대중화된 다원사회로 발전해감에 따라 국민들의 다양한 이념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 다양하게 등장하게 되었고, 다양한 국민의 경험적 의사를 정책적으로 개발해 국가의사로 확정해 집행하는 간접민주정치 정당국가가 오늘날 대다수의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국가들의 정치생활 모습이다.

18세기 루소가 도버 해협 건너 막 성장해 발전해가던 영국의 정당정치와 간접민주정치를 바라보며 '영국 국민들이 선거로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의 주인이라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고 조롱섞인 비판을 했지만, 국가생활 공동체의 다양한 분야에 전문 식견을 가진 인물들을 뽑아 대표자로 선임해 맡기지 않고서는, 전문 식견이 없는 국민 모두가 대규모로 모여 국가의 수많은 개별 정책들을 일일이 결정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루소 말대로 이상적인 국민의 자기지배 원리에 따라 선거 때마다 5천3백만 국민들이, 그중에서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 국민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수백 수천의 국가정책 사항들을 토론하고 의결하고 그 의결된 사항을 공동으로 집행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주권자 국민은 경합하는 여러 대표 후보자들 가운데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표자 한 명을 뽑아 그에게 국가공동체 일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즉 선거제도를 통해 여러 정당들이 표방하는 정당정책, 즉 잠재적인 국민의사를 대표하는 후보자들의 토론을 통한 경쟁 과정을 지켜보며, 그 정책 내용과 실현 가능성 및 이를 표방하는 인물 등을 보고 그중 하나를 대표자로 뽑는다. 이 과정을 통해 대표로 일했던 전임자의 정책수행 결과에 대한 책임도 따져 묻는다.

결국 선거란 주권자 국민을 대신하는 정책수행자에 대한 신임 부여행위요, 책임추궁 제도이다. 국민을 위해 일을 잘하는 대표를 신임하고 또 정책수행 결과에 책임을 묻는 주체는 주권자 국민이다. 이러한 신임정치와 책임정치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은 나라의 주인됨을 관철한다. 따라서 선거제도의 운영과 선거의식의 발현 및 정책과 인물의 선택을 통해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것이기에 선거제도는 민주정치의 꽃이다.

4. 한국의 민주주의

문제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그들에게 중앙정부나 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를 맡겨 통치하게 하는 간접민주정치가 주권자 국민을 만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선거 기간에 내세우는 수백 수천의 정책 사항들, 그대로 된다면 지상 천국을 만들 것 같은 정책들은, 선거 후에 지지부진에 유야무야에 공허한 약속이 되고 만다면, 과거 어느 대통령의 공약사항이 아녔느냐 또는 왜 실천하지 않느냐 따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선거때 무슨 공약인들 못하냐'라며 반문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우리는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다. 민주적인 선거제와 복수 정당제, 공천 제도, 의회정치제 등을 갖추어 국민주권의 헌법 원리와 정신을 실현하려 해도, 국민은 소외감을 느끼고 때로 우롱당하는 느낌을 갖게 되며 국가생활 공동체의 주인이 아니라 타자로 구경꾼으로 취급당하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민주화 과정을 통해 축적해왔고 최근의 윤석열 내란 극복 과정을 통해 스스로 확증하고 또 세계 만방에 입증한 국민의 연속 변량적 주인의식과 국민 주권의식의 K- Democracy를 살려 형식적  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의 외형적 수준을 뛰어 넘는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국민 모두가 합심하여 지혜를 모으고 냉철하고도 엄격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5. 토크빌 (A.Tocqueville)의 명언

바야흐로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물밑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선거를 앞둔 정당들이 전략을 짜며 그에 따른 12ㆍ3 내란의 청산과 시급한 개혁과제들에 임하는 각기 다른 태도와 자세가 국민들 눈에 비춰지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의 세계무역 질서를 흔들며 MAGA 정책을 쓰고 있고, 최근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침략함으로써 국제정치 환경 변화가 국제유가 상승과 더불어 널뛰기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분단국가라는 모순 구조가 강화되고 고착되면서 상존하는 안보위기 속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두 국가론은 파고를 예측하기 어려운 삼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나라의 주인으로서 주권자로서, 모든 국가권력의 형성주체요 정당화 근거로서 어떤 각오와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인가 반복해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18세기 토크빌의 명언을 상기하며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아직도 근본주의적인 종교와 도덕적 맹신 상태에 머물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지, 맹목적인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국제사회 의식이 결여되어 있지 않는지, 아직도 정서적 심연에  배타적 지역 감정에 따라 정치적 생각과 행동을 선택하고 있지 않는지, 유사 신분제적 엘리트 학벌의식에 사로잡혀 인간 불평등 사고 수준에 안주하는지, 계급적 컴플롁스의 사회 적대감을 내면에 폭탄처럼 간직한 채 시달리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모든 병리 현상들은 우리 대한국민 스스로를 국가의 주인답지 못하게 만드는 한계 요인들이 아닌가.

나라의 주인이요 주권자인 국민이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존재가 될 때, 그 나라 민주주의도 건강하게 자라나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6.3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나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수준의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바란다. 평화🤦